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여우가 되어라 에리카 베너 지음/ 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640쪽/ 2만2000원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냉혹한 권모술수의 주창자’이자 ‘군주제 옹호론자’라는 주장은 오독이라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마키아벨리야말로 뼛속까지 공화주의자이며, 부패하고 독재를 휘두르는 군주에 맞서 인민과 법률에 의해 통치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예찬론자라는 것이다. 특히 그의 다른 저서인 ‘로마사 논고’나 ‘피렌체사’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옥스퍼드대와 예일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쳐온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과연 피렌체공화국의 실질적 군주인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로에게 헌정된 ‘군주론’이 군주를 위한 것일까.
마키아벨리와 동시대를 산 비판론자들은 ‘군주론’이 군주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혹하려고 쓰여진 것이라고 봤다. 충직한 조언자라는 가면을 쓰고 군주들을 함정에 빠뜨려 몰락시키려는 의도에서 썼다는 것이다. ‘군주론’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현실 정치에서 써먹은 영국 헨리 8세나 토머스 크롬웰은 실제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반면 당대 옹호론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의도가 군주들의 통치가 얼마나 괴팍하고 삐뚤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같은 발표 초기의 논란이 ‘군주론’의 진실을 더 잘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최근 연구에선 마키아벨리가 전쟁과 내전으로 분열된 피렌체를 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고, 그가 폭력과 위선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목적은 선(善), 즉 국가적 목적을 위해서였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저자는 이 주장에도 의문을 품고 있다. 명철한 논리로 무장했을 것 같은 ‘군주론’의 글을 촘촘히 따져보면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부정하는’ 모순과 모호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주는 내키는 대로 약속을 뒤집어도 괜찮은 것처럼 칭찬하다, 뒤에서는 ‘정의로움을 존중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며 반대 논리를 편다.
그래서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진심과 의도가 진정 무엇이었는지 풀어보고자 바로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로 들어갔다. ‘군주론’뿐 아니라 그가 쓴 외교문서, 희곡, 시, 편지 등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아이러니를 통해 높은 도덕적 기준과 법치주의를 옹호한 인물’로서 마키아벨리를 재구성했다. 마키아벨리는 실제 ‘사람들은 왜 공허한 미사여구와 번지르르한 외모에 잘 속아 넘어가는가’ ‘승자일수록 정의로움과 공평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수의 권력자가 다스리고 거대한 불평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깜짝 놀랄 대답을 내놓았다. 저자의 결론이 무엇이든 순수하게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다면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유행가는 역사다 : 노래로 읽는 한국현대사
이영훈 지음/ 휴앤스토리/ 308쪽/ 1만4000원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거울이자 민초의 애환과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그릇이다. 그래서 ‘유행가’라고 부른다. 저자는 동학농민운동부터 6·25전쟁, 베트남전 파병,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세월호 침몰 사고 등 현대사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유행가 28곡을 ‘노래와 역사의 만남’이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윤심덕 정사 사건, 지강헌 인질 사건,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등에 얽힌 노랫말 사연을 읽노라면 그 시절의 애잔함과 고단함이 전해진다.
이욱연의 중국 수업
이욱연 지음/ 휴머니스트/ 248쪽/ 1만4000원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로 시장경제를 일군 세계 유일의 나라이며, 현 지구상에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혐오와 폄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중국에 대해 18개 주제로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특히 ‘3부 중국 사회는 무엇을 고민할까’에 나오는 젊은 세대가 싫어하는 중년 여성 세력 ‘다마’, 농업과 농민의 나라에서 차별받는 ‘농민공’ 등은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흥미롭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윤선현 지음/ 인플루엔셜/ 220쪽/ 1만3000원
한국에서 ‘정리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처음 만든 윤선현의 에세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국 2000여 집을 정리하고 경험하면서 깨달은ㅌ 것들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물건의 쓰임새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물건에 부여한 ‘관념’ 때문이다. 선물 받은 거라서,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서, 언젠가 쓸 거라서…. 저자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물건만 가져야 더 평온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리란 미니멀리즘의 실천이 아닌, 각자 인생에 어울리는 지속가능한 질서를 찾는 여정인 것이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리링 지음/ 장창호 옮김/ 글항아리/ 528쪽/ 2만2000원
‘손자병법’과 ‘논어’에 대한 심층적 해석으로 주목받은 중국 고문학자 리링의 산문집. 표제는 이백의 한시 ‘달 아래 홀로 마시다(月下獨酌)’의 첫 구절이다. 시인이 달과 자신의 그림자 등 셋이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내용을 현 중국에 대한 풍자로 풀었다. 시인은 중국, 달은 서양의 현대화, 그림자는 중국의 현대화라면서 그 원천인 서양을 얕보고 그림자에 불과한 중국의 현대화가 대단한 양 뻐긴다는 것. 서양 근대전쟁사에 대한 품평, 일상에 대한 촌평, ‘사기’의 사마천과 근대 초기 학자 왕국유에 대한 인물론에서 남다른 식견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