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이 약 1억1600만 파운드(약 2160억 원)에 영입한 플로리안 비르츠. GETTYIMAGES
‘넓고 깊은 스쿼드’ 생존 필수 조건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과 리버풀은 주요 구단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 시즌 연속 준우승에 머문 아스널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2억 파운드(약 3700억 원)가량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마르틴 수비멘디(바이아웃 약 5100만 파운드·약 950억 원)에 이어 크리스털 팰리스의 에베레치 에제(바이아웃 약 6800만 파운드·약 1270억 원) 영입 추진 소식은 스쿼드 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아스널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리버풀도 플로리안 비르츠(약 1억1600만 파운드·약 2160억 원), 제레미 프림퐁(약 2950만 파운드·약 550억 원), 밀로시 케르케즈(약 4000만 파운드·약 750억 원)에 이어 이적료가 최소 6900만 파운드(약 1300억 원)에 이르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수 위고 에키티케 영입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미 두 팀 모두 상당히 많은 돈을 썼음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호드리구(이적료 최소 8600만 파운드·약 1600억 원 예상) 영입을 노리고 있다. 그만큼 전력 보강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이런 움직임의 근본 원인은 선수들이 감당해야 할 살인적인 경기 일정이다. 2024∼2025시즌부터 36개 팀이 경쟁하는 ‘리그 페이즈’로 확대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의 경우 예전보다 경기 수가 크게 늘어났다. 결승까지 진출하는 팀은 최대 17번의 UCL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자국 리그와 컵 대회, A매치를 포함하면 한 시즌 60경기를 훌쩍 넘는 일정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올여름 32개 팀이 참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이 출범하면서 선수들의 부담이 한계에 다다랐다. 한 달간 열린 이 대회는 유럽 최상위 클럽 선수들에게서 여름휴식기를 앗아갔다. 대륙을 넘나드는 이동은 체력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스포츠과학계는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경기 수 증가와 부상률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했다. 나흘 이하 짧은 휴식 후 경기에 나서면 근육 부상 위험이 급증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결국 팀마다 15~18명 핵심 선수만으로는 한 시즌을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넓고 깊은 스쿼드는 축구팀으로선 사치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축구 전술의 고도화도 선수 영입 전략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현대 축구를 풍미하는 고강도 압박 전술은 이제 상위권 팀의 기본 소양이 됐다. 위르겐 클로프 감독이 대중화한 ‘게겐프레싱(gegenpressing)’ 전술이 대표 사례다. EPL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몇 시즌 동안 선수들의 고강도 주행 거리는 30%, 스프린트 거리는 35% 증가했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주전 11명만으로 시즌 내내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효과적인 선수 로테이션이 필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상대에 따라 전술을 유연하게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진 점도 크게 작용했다.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닌 선수를 여럿 보유하는 게 전술적 우위를 점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가 자유계약(FA)으로 영입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GETTYIMAGES
유망주와 뎁스, 갈락티코스
이에 따라 명문 클럽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쿼드 구축 전략을 발전시키고 있다. 첼시의 전략은 ‘유망주 투자’다. 2022년 새 구단주를 맞은 첼시는 14억 파운드(약 2조6000억 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젊은 유망주 수십 명을 수집하다시피 했다. 이스테방 윌리앙 같은 10대 ‘원더키드’가 대표 사례다. 일부 선수라도 ‘대박’을 터뜨리면 비용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전략이다. 또한 첼시는 전망 밝은 유망주를 긴 시간 팀에 잡아두는 성과도 달성했다. 계약 기간이 긴 만큼 유망 선수를 FA(자유계약)로 다른 팀에 빼앗길 위험성이 적은 것도 긍정적 측면이다. 첼시는 2025 FIFA 클럽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이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맨체스터 시티는 ‘지배를 위한 뎁스’를 지향한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라얀 셰르키, 티자니 라인더르스, 라얀 아이트누리를 영입함으로써 22~25명의 최상급 선수로 스쿼드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누가 경기에 나서든 전력 누수가 없게 한 뎁스 전략이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모든 경기에서 선수들의 에너지 레벨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상대마다 전술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영입 전략은 ‘진화된 갈락티코스(은하수)’ 추구다.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갈락티코스 전략을 계승, 발전시킨 노선이다. 최근 마드리드는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FA로 영입하는 등 젊은 유망주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선수를 성장시켜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다니 카르바할처럼 클럽 아카데미 출신 선수를 다시 영입하는 영리한 ‘바이백’ 전략을 썼다. 최근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풀의 이브라히마 코나테를 내년 FA 영입 대상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축구의 ‘선수 수집’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살인적인 경기 일정과 현대 축구의 전술 트렌드 변화로 더 많은 클럽이 선수단 확대 행렬에 동참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인재 영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영입한 유망주를 성장시키기 위한 위성 구단 형태의 멀티 클럽 모델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가성비’ 높은 선수 육성 방식인 유소년 아카데미의 가치도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현대 엘리트 축구의 성공은 더는 베스트 11의 기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 25명이 넘는 선수단 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마련하고 관리하는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