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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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유령 뮤직비디오 낸 NCT WISH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10-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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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비디오에 유령이 로맨틱한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학교에서 발견된 이 인물은 흰 천에 어설프게 눈 구멍 2개를 뚫어 뒤집어쓰고 있다. 유령이지만 만질 수도 있어서 멤버들이 옷을 입히기도 하고, 손을 잡아끌기도 한다. 말하자면 평범하고 귀여운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유령일 뿐이다. 사실 정체도 불분명하다. 녹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일어나 멤버들과 함께 춤출 것 같은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배경이 남학교처럼 보이기도 하니 남학생이어도 놀랍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아무튼 유령으로 간주하기로 한 그런 존재다. NCT WISH가 9월 24일 내놓은 첫 미니앨범 ‘Steady’ 뮤직비디오 이야기다.

    NCT WISH가 첫 미니앨범 ‘Steady’를 내놓았다. [NCT WISH 공식 X(옛 트위터)]

    NCT WISH가 첫 미니앨범 ‘Steady’를 내놓았다. [NCT WISH 공식 X(옛 트위터)]

    ‌NCT WISH는 2월에 정식 데뷔한 신인 6인조 보이그룹으로, 한일 양국에서 동시 활동과 유달리 부각되는 소년미를 특징으로 삼으며 주목받고 있다. 그런 그들이 어쩌다 성별도, 바이탈(생체징후)도 불분명한 존재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게 됐을까. 몇 가지 맥락이 있다. 예외도 많지만 K팝 뮤직비디오 속 로맨틱한 상대는 모호하게 표현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진다. 뒷모습이나 발목만 등장하거나, 뿌연 사진으로만 나타나는 식이다. 핵심 콘텐츠인 아이돌 이외에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뚜렷한 인물의 존재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Steady’의 경우로 보자면 천을 덮어씌워 정체가 불분명한 편이 낫다는 얘기다.

    흥미롭고 귀여운 호러 기호

    K팝과 호러의 관계 면에서도 이 작품은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K팝에서 호러 기호는 아주 극단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나 한정적으로 쓰이곤 했는데, 점차 ‘별난 사랑스러움’의 표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데뷔 초기부터 기괴한 시각요소들을 적극 활용한 레드벨벳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모두가 ‘별날’ 수는 없기에 이를 참조한 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뉴진스의 ‘Ditto’와 ‘OMG’는 호러 영화의 기호를 끌어들여 모호하고 아련하며 로맨틱한 세계를 구축한 전범을 제시했다. ‘Steady’는 이를 이어받아 유령에게 상당한 귀여움을 성공적으로 부여하고 멤버들과 노래의 서사를 사랑스럽게 감싼다. 그래서 이 공간은 분명 부조리하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러나 역시 환상인 그런 묘한 달콤함을 제공한다.

    UK 개라지(UK Garage)에 기반한 비트는 날렵한 속도감을 잘 발휘한다. 장르적 전통 위에서 악기와 음향 사이에 걸친 다양한 디테일 사운드가 여기저기에 덧대어 있는데, 그 양상은 마치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존재의 표현처럼 들린다. 후렴 보컬 모티프는 단음 위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정신없이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한결같으려(Steady) 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 코드에서는 잘 어울리는 음이 다른 코드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단음 위주의 멜로디는 종종 화성 진행과 충돌하곤 한다. 보컬의 머무름이 맥락의 변화와 함께 매혹적인 화성적 텐션을 일으키는 것은 작곡가 켄지(KENZIE)의 장기이기도 하다.

    노래가 말하는 ‘이대로만 가자’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세계와의 마찰을 전제한다. 인간도, 관계도 환경 변화와 무관할 수 없고, 어느 순간에는 적확하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어긋남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곡은 화성을 통해 그것마저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설득하려는 것 같다. 이 역시도 유령의 모습처럼, 환상과 현실 사이에 걸쳐지는 로맨틱한 주장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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