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했을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드제너러스. [뉴시스]
영대 아, 종영했군요.
현모 마지막 굿바이 인사할 때 넘 슬퍼서 저도 같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답니다.
영대 ㅠㅠ 저는 차마 못 보겠네요.
현모 지금까지 무려 19개 시즌, 3200여 회를 함께한 프로듀서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데, 그때 백발의 프로듀서 얼굴이 화면에 잡혔거든요.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뭉클했어요. 마지막엔 첫 회 오프닝 때처럼 TV 앞 소파에 앉은 채 커튼이 닫히면서 끝나요. 분명 같은 사람인데 얼굴에 19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고요. 결국 그도 울먹였고요.
영대 쇼를 그렇게 장기간 이어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19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시간인데.
현모 상상이 안 가요. 저는 ‘가톨릭 비타꼰’이라는 월간지에 7년이나 글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6월호를 끝으로 폐간이 결정됐어요. 종간호 원고를 보내니 좀 섭섭하더라고요.
영대 에구, 그거 현모 님이 굉장히 애정을 갖고 해오신 일인데, 안타깝네요. 참, 저는 반대로 지금 새로운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현모 오, 어떤 거예요?
영대 롤링스톤코리아가 론칭하는 ‘롤링팟’이라는 프로예요. 문화계 다양한 인물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의 팟캐스트랍니다.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작가와 뮤지션들이 등장할 예정이에요.
현모 오호 재밌겠네요! 혹시 그러면 ‘Rolling Pod’? 팟캐가 굴러가나요? ㅎㅎㅎ
영대 맞아요. ㅎㅎㅎ 제가 지은 건데, 쉴 새 없이 바쁘게 구르는 사람들을 만나 굴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에요. ㅋㅋㅋ 맞다. 영어 속담 중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뜻이 좀 잘못 알려진 거 아세요?
현모 그게 한국에서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고 해서 부지런함, 성실함을 미덕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해석되는데, 사실은 한자리에 진득하게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영대 역시 정확히 알고 계시군요! ㅋㅋㅋ 저도 어릴 때 운 좋게 영어 과외교사가 알려줘서 제대로 알게 된 건데, 바삐 움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이리저리 방황하면 돈이나 성과를 모을 수 없다는 의미더라고요.
현모 맞아요. 옛날에는 얼핏 돌에 ‘이끼’가 낀다는 게 안 좋은 건가 싶었는데, 실은 좋은 의미였던 거죠.
영대 그런 비슷한 예가 많은 거 같아요. 번역이라는 게 워낙 쉽지 않으니, 요즘 드라마로도 화제가 된 ‘파친코’의 원작 소설 역시 첫 문장이 좀 의아하게 다가왔어요. 원문이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인데, 한글로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옮겨놓았더라고요. ‘망치다’보다 ‘저버렸다’ 정도가 적절할 거 같은데 말이죠.
현모 흠… 저도 그게 나은 거 같네요. ‘망쳐놨다’는 훨씬 극단적인 거 같아요.
영대 한국어와 영어가 언제나 일대일로 매치되는 건 아니니까, 매번 정확한 뉘앙스를 설명하기가 힘들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긴 해요. 특히 책보다는 노래나 영화가 더 함축적이어야 해서 훨씬 어려운 거 같아요.
현모 그럼요. 특히 자막은 길이도 짧아야 하고, 제목 역시 이중적이거나 중의적일 땐 옮기기가 까다롭죠.
영대 하긴 ‘다이 하드’ 시리즈의 경우도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어지간해선 절대 안 죽으니까 당연히 ‘목숨이 질긴, 생명력이 강한’이라는 뜻이지만, 캐릭터가 성격적으로도 ‘완고한, 고집을 꺾지 않는’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걸 이래저래 딱 떨어지는 우리말로 바꾸기가 힘들다 보니 원어 그대로 ‘다이 하드’로 바꾼 건 잘한 일인 듯요.
현모 ㅎㅎㅎ 요새는 웬만해선 외국어를 그대로 갖다 쓰니까 쉬운데, 과거엔 그러지도 못하고 일일이 바꿔야 했으니 웃긴 것도 많았잖아요. 수입 과정에서 일부러 원제보다 묘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옮기는 일도 흔했던 거 같고요.
영대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의 명작 ‘귀여운 여인(Pretty Woman)’도 요즘 같으면 그냥 ‘프리티 우먼’이라고 발음 나는 대로 썼을 텐데, 당시 우리말로 ‘예쁜 여인’이라고 하지 않고 ‘귀여운’으로 약간 바꾼 건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현모 하는 짓이 정말 귀엽잖아요. ㅋㅋㅋㅋ
영대 그리고 진짜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제목은 소방관들을 소재로 한 스릴러 ‘분노의 역류’! 원제가 화재 용어 가운데 하나인 ‘Backdraft(역류)’인데, 단순히 ‘역류’라고 했으면 왠지 불충분하고 괜히 역류성 식도염만 떠오를 뻔했지만 극중 분위기에 맞게 ‘분노의 역류’로 옮기는 바람에 관객들한테 확 와 닿았죠.
현모 난 ‘분노의 질주’밖에 못 봤는데. ㅎㅎㅎ
영대 원작 소설과 영화 제목, 우리말 제목이 셋 다 전혀 다른 경우도 있어요. 존 그리셤의 소설 ‘The Firm’은 내용상 법무법인, 즉 ‘로펌’을 가리키는 건데, 그때만 해도 한국에 ‘로펌’이라는 용어가 흔치 않았고, 그렇다고 ‘회사’ ‘법인’은 밋밋하니까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라는 다소 길고 엉뚱한 제목으로 바꿨죠. 영화는 심지어 ‘야망의 함정’으로 개봉했고요.
현모 저는 제일 헷갈리는 게 영화 ‘콘택트’하고 ‘컨택트’예요. ‘콘택트’는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1997년 영화고,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7년 개봉작 ‘컨택트’는 원제목이 ‘Arrival(도착, 도달)’이에요. 둘이 하도 비슷해서 혹자는 ‘컨택트’가 ‘콘택트’의 리메이크작인 줄 착각했다잖아요.
영대 한국 영화 중에도 ‘The Contact’가 있는 거 아시죠? 바로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유명한 영화 ‘접속’. 하지만 이것도 ‘contact’는 접속이 아니라 접촉이라는 게 함정….
현모 ㅋㅋㅋ 아으, 복잡해.
영대 게다가 영화 ‘접속’의 줄거리는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출연한 ‘유브 갓 메일’과 똑같다는 사실!
현모 그죠. 하지만 ‘접속’이 1년 먼저 나왔어요.
영대 시나리오가 한 바퀴 돌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거의 동일한 거처럼요.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뉴스1]
영대 ㅎㅎㅎ 그것도 둘이 각기 다른 작품, ‘헤어질 결심’이랑 ‘브로커’로~!!
현모 그러니까요. 아니, 어마어마한 일인데 이제는 국민이 별로 놀라지도 않아요. ㅋㅋㅋ 진짜로 대단한 나라!
영대 한류, K-콘텐츠 시대가 진정 열린 듯해요.
현모 그뿐 아니라 얼마 전 손흥민 선수의 EPL 득점왕도 그렇고, 요새 대한민국에 기쁜 뉴스가 마를 날이 없네요.
영대 덕분에 우리 이야기꽃도 마를 날이 없군요~. ^^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