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여권 인사인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동아DB]
국민의힘 한 관계자가 지방선거 직후인 6월 2일 “결국 더 많은 표를 들고 오는 후보가 최고 아닌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확장성 있는 인물이 하나 둘 당 얼굴로 자리매김하는 양상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승리하면서 정국 장악력을 급속히 높이고 있다.
오세훈·안철수, 지선 최대 수혜자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는 오세훈 시장과 안철수 의원이다. 1961년생인 오 시장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여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꺾으며 ‘첫 4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오 시장은 6월 2일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차기 대권 도전은) 나로서는 굉장히 사치스러운 생각”이라고 일축했지만, 그가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는 데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그는 차기 대권 경쟁자인 안 의원을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꺾은 전력도 있다.
‘스타 변호사’ 출신인 오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의원 시절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개혁 3법(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2006년 45세 젊은 나이로 서울시장이 돼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0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시장직을 내걸고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최종 투표율 25.7%를 기록해 개표 불가능하게 되자 약속대로 중도 사퇴했다. 10여 년 암흑기를 보낸 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복귀했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서 입지가 더 탄탄해지고 있다. 다만 선거에서 260만여 표를 얻어 279만여 표를 획득한 지난해 보궐선거 결과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득표율(59.05%)은 높았으나 전체 투표율(53.2%)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탓이다.
윤심 업은 원희룡, 리더십 증명 이준석
5년 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한 안철수 의원의 차기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1962년생인 안 의원은 경기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서 62.5% 득표율을 얻으며 민주당 김병관 후보(37.49%)를 큰 차이로 이겼다. 그간 안 의원은 선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 시장에게, 올해 대선에서도 윤 대통령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유로 한 발 물러섰다.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안 의원이 차기 대권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여권에서는 안 의원이 향후 국민의힘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안 의원의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만큼 차기를 도모하기에 앞서 지지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 시장에게 패한 전력이 있으나, 안 후보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그는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19대 대선에서 699만 표(득표율 21.41%)를 득표하며 당시 거대 양당 후보였던 문재인, 홍준표 후보와 3강 구도를 만들었다. 1월 20대 대선 기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10%를 넘긴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선 구도에 파장을 일으켰다.
원희룡 장관 역시 떠오르는 잠룡 중 한 명이다. 1964년생인 원 장관은 대선 당시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처하며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검증에 앞장섰다. 당시 복잡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대장동 열풍을 등에 업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4강(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에 진입했다.
원 후보는 대선 기간 가장 적극적으로 윤 대통령을 도운 사람 중 한 명이다.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정책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이끌었다. 대선 이후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에 이어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으며 입각에 성공했다. ‘윤석열의 사람’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원 장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1985년생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가 가능한 이준석 대표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이 대표는 임기 중에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사실상 리더십을 증명했다. 이 대표가 ‘탄핵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보수 정당을 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6월 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감사하고 두려운 성적”이라며 “(국민이) 우리에게 주신 큰 권한과 신뢰를 절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들겠다”고 말했다.
“유권자 부러움 대상 지지해”
당 밖에서도 대권 잠룡의 존재감이 관측된다. ‘한동훈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한동훈 장관이 대표적이다. 1973년생인 한 장관은 최근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드후니’ 등 팬덤까지 생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앞으로 법무행정 등 국정운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에 따라 법무부에서 인사 검증 기능을 수행하면서 이 같은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일처리로 윤 대통령의 오랜 신뢰를 받고 있다.이미 야권에서는 한 장관을 ‘소통령’이라고 부르며 견제에 나섰다. 한 장관이 향후 정치권으로 나아갈지 여부는 미지수다. 다만 평생 업으로 여긴 검사직을 포기하고 정무직 장관을 맡은 만큼, 정계 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 내 세대교체가 대선을 거치며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당내 주류 세력이 사실상 초토화됐다”며 “윤석열이라는 당 외 인사가 당 얼굴이 되면서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지지 양태 변화가 최근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교수는 “지금 유권자들에게는 정치인의 내러티브 전략이 예전만큼 통하지 않는다”면서 “이전에는 불우한 옛 기억을 되살려 공감을 이끌어낸 후보를 유권자들이 뽑았지만, 지금은 비전·능력 등을 갖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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