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서핑 USA’는 종종 비치 보이스를 이해하는 데 족쇄가 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비치 보이스가 한없이 가볍고 철없는 밴드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름이면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젊음을 찬양하는 게 언제나 미덕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빌 포래드 감독의 ‘러브 앤 머시’를 보면 비치 보이스가 서핑이나 찬양하는 가벼운 밴드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러브 앤 머시’는 이 밴드의 음악적 리더 브라이언 윌슨의 삶에 주목하면서, 비치 보이스가 당대 음악을 이끌던 혁신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구분돼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1960년대 20대 초반의 브라이언 윌슨(폴 대노 분)과 80년대 중년에 이른 그(존 큐잭 분)의 삶을 대조한다. 먼저 집중하는 건 창의력이 넘쳐나는 20대의 브라이언을 재현하는 일이다. 그는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새로운 멜로디가, 또 아름다운 시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불안한 건 이때 이미 브라이언이 마약에 중독돼 있다는 점이다. 그 탓일까. 40대의 그는 너무나 변해 있다. 겁먹은 듯 보이고, 도무지 사람이 안정돼 있지 않다. 알고 보니 마약중독, 알코올중독, 폭식 등의 이유로 죽을 위기를 겪고 지금도 정신의학박사(폴 지어마티분)로부터 치료받고 있다. 박사의 치료법이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라 브라이언은 박사 앞에서 벌벌 떨기까지 한다. 육체는 정상을 되찾은 것 같지만, 정신은 박사에게 단단히 구속된 노예처럼 보이는 것이다.
‘러브 앤 머시’는 이 두 남자를 대조한다. 청년 브라이언은 걸작을 빚어낸 뮤지션이지만, 약물중독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점점 잃어간다. 중년 브라이언은 창작자로서의 재능은 거의 잃었지만, 다행히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다. 정상으로의 복귀에는 사랑도 개입된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브라이언 윌슨’이냐는 것이다. 영화는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보다 두 남자를 병렬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 브라이언은 걸작을 남긴 예술가인가, 아니면 정상화된 중년인가. 감독은 이 두 남자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기에 2인 1역을 썼을 것이다. 브라이언의 정체성은 둘 가운데 어느 것일까. 혹은 어느 것을 지지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