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지음/ 컬처그라퍼/ 268쪽/ 1만3500원
“한 인간이 태어나서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을 ‘웰빙(well-being)’이라고 한다면, 그가 인간적 존엄과 품위를 갖추고 행복한 인생 마무리를 하는 것은 ‘웰다잉(well-dying)’이다. 잘 살고 잘 죽기. 이 둘은 서로 반대된 개념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순환 고리다.”
의사인 저자는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일찌감치 이별의 아픔을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중1 때 저자의 누나가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불쌍한 누나는 가족과 차분하게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소년은 화장실에서 눈물을 쏟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대 본과 4학년 때 만난 40대 중반의 바르나바(세례명) 아저씨도 위암 말기였다. 바르나바 아저씨의 고통과 임종 순간을 지켜본 저자는 누나를 떠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저자는 이제 환자 앞에서 울지 않는다. 환자 눈물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최선의 의료적 선택을 하기 위해서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의미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내가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의사도 조력자일 뿐 스스로에게 희망을 투약하는 건 온전히 환자 자신의 용기와 선택이다. 그래서 지금, 삶에 대한 허무로 시달리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권하고 싶다. 희망하다 떠나시라고.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또 다른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말기암 사망자가 연간 7만 명에 이르는 우리 현실에서 죽음은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부딪히는 고통을 줄여주고, 그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언제까지 그 모든 것을 가족과 개인 책임으로 미룰 수는 없다.
저자가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에 남다른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질병의 마지막 과정과 사별 기간에 겪는 당사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전인적인 의료 서비스라고 강조한다. 우리의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연간 말기암 환자 10% 정도만 이런 혜택을 받고 세상을 뜬다. 인구 대비 병상보유율은 30%에 그친다. 편안하게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가서 몸을 누일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 살리기도 힘든 판국이나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는 일은 환자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가족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환자 한 명 때문에 가족 간 불화가 생기고,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을 겪는 가정도 한둘이 아니다.
지금 막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삶이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고, 남은 사람이 “당신이 있어 우리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품위 있는 마무리가 된다. 아름다운 이별은 남은 사람의 세상살이에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