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김홍도(1745~1806?)의 가짜 ‘묘길상’, 종이에 수묵담채
모든 일이 그렇듯 조금만 의심하면 가짜에 이토록 쉽게 속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우리가 아는 ‘상식’에서 시작하면 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믿기보다 자신의 합리적 사고와 눈을 믿어야 한다. 작품을 좀 더 의식적으로 반복해 관찰하고 한 번이라도 손가락으로 따라 그려보면 절대 엉터리에 속지 않을 것이다.
빨간색 물감으로 도장 그리기도
이제 알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허술한 위조 세계부터 이야기해보자. 도장을 찍지 않고 아예 ‘도장을 그린’ 위조가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묘길상’이 이 경우다(그림1). 미술사가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이 작품을 가리켜 “김홍도의 능숙한 수묵담채의 구사와 필치”라고 칭송했다. 이 작품은 간송미술관 2005년 봄 전시에 출품됐다. 작품 도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엉터리로 그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림2> 강세황(1713~1791)의 가짜 ‘방동기창산수도’에 그려진 도장 ‘첨재(添齋)’ 부분 <그림3> 강세황의 가짜 ‘방심주계산심수도’에 그려진 도장 ‘광지(光之)’ 부분.
누가 봐도 위조 기술치고는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빨간색 물감을 물에 타서 붓으로 그린 도장’은 붓질 흔적과 물감이 뭉친 것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도장을 찍을 때 쓰는 인주는 물과 기름 성분으로 나뉘는데, 조선 후기 서화작품들을 보면 기름 성분 인주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화작품에 찍힌 도장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제 더 이상은 서화작품의 진위감정에서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도장만으로는 작품 진위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에 누구 이름이나 호가 새겨진 도장을 찍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작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짜 유명인 낙관 시중에 나돌아
<그림4> 안중근의 가짜 ‘등고자비’에 찍힌 가짜 손바닥(큰 그림)과 안중근 의사의 진짜 손바닥.
손바닥을 엉터리로 대충 뭉개서 찍는 위조도 있다. 작가가 도장을 대신해 자기 손바닥을 작품에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예기치 않게 작품을 제작하면 대부분 이름만 쓰고 도장을 찍지 않거나, 나중에 보충해 찍는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자기 손가락을 끊어 구국투쟁을 맹세했던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1910년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안 의사는 자신이 남긴 서예작품마다 도장을 대신해 손가락이 잘린 왼쪽 손바닥을 찍었다. 2009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한국서예사특별전 ‘안중근’에 출품됐던 작품 가운데 안 의사의 ‘등고자비’(그림4)는 위조자가 엉터리로 손바닥을 찍은 가짜다.
안중근의 가짜 ‘등고자비’는 글씨에 안 의사의 기백과 글씨 쓰는 습관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짜 작품에 찍힌 손바닥이 엉망이다. 이를 안 의사의 진짜 손바닥과 비교하면 누구나 육안으로 가짜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위조 수준에 속았다면 안 의사의 손바닥을 똑같이 위조한 작품에 속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게 참 어이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