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세황이 1744년 쓴 ‘명구’. 2 강세황이 1756년 쓴 ‘여사잠’. 3 강세황이 1764년 쓴 ‘논서’. 4 강세황이 1772년 쓴 ‘간찰’.
첫 번째 질문부터 답하면 이렇다. 서화 감정을 공부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자신이 꼭 알고 싶은 작가를 한 사람 정한다. 그다음 현재까지 전해오는 그 작가의 작품 도판을 모두 시간 순으로 배열한 뒤, 중요한 작품은 직접 보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작가 생애에서 중요했던 일을 선택해 연도별로 나열한다. 작품 가운데 작가의 창작 스타일과 생애에 맞지 않는 작품은 자세히 검증한다. 한 작가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면, 작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작가들을 같은 방식으로 연구하고 그 시대 서화의 공통된 특징까지 찾아낸다.
한 작품을 감정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보통 3초 안에 끝난다. 보면 바로 안다. 당연히 전문가 이야기다. 하지만 진위 판단에 위험 부담이 있는 작품의 경우, 길게는 한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결정적 근거가 나올 때까지 계속 마음 한편에 담고 간다. 전문가는 정말 많은 방면의 지식이 필요하다. 미술사적 지식은 필수고, 인문학적 지식은 물론 작가, 작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다 알 수 있도록 찾는다. 한 작가에서 한 시대, 한 시대에서 미술사 전체로 공부를 확장한 뒤 큰 관점에서 다시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세밀하게 연구한다.
‘진짜 값’ 받고 올바른 평가
필자가 만난 감정전문가는 모두 하나같이 재력가였다. 작품 진위를 정확하게 보는 ‘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돈을 벌기 때문이다. 감정전문가는 가짜를 직간접적으로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진위를 구별하는 ‘위조자 출신 감정가’와는 다르다. 위조자는 자신이 아는 가짜를 피해서 진짜를 찾아낸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가짜에는 속는다. 또한 서화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듣거나 본 적이 없는 오래된 진짜는 전혀 모른다. 체계적으로 감정을 공부한 전문가처럼 머릿속에 미술사 전체를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작감정가는 가짜를 진짜 값으로 팔지만, 전문가는 가짜를 사지도 팔지도 않는다. 굳이 전문가가 가짜를 살 이유가 있다면 교육 목적이지 판매용이 아니다. 전문가는 진짜가 미술시장에서 ‘진짜 값’을 받고, 미술사에서 올바르게 가치 평가되기를 바란다. 위작감정가는 가짜를 팔려고 그동안 사람들이 ‘진짜로 알고 있는 가짜’를 동원한다. 국공립박물관부터 가짜를 근절하고 진짜를 보호하는 구체적 행동이 없다면 미술시장에서 가짜가 사라지기를 결코 기대할 수 없다.
5 강세황이 1781년 쓴 ‘간찰’. 6 강세황이 1788년 쓴 ‘간찰’. 7 강세황의 가짜 1747년 ‘현정승집도’.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선생 같은 최고 수준의 감정가는 어떻게 고서화를 감정할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림 위에 있는 작가 글씨를 감정한 뒤 그림을 살펴본다. 이처럼 그림 감정에서조차 글씨가 중요한 이유는 그림보다 글씨를 위조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글씨와 그림을 충분히 살펴 작품 진위를 정한 뒤, 맨 마지막으로 작품에 남겨진 도장과 다른 사람의 글씨 등을 참고한다.
최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표암 강세황(1713~1791) 탄신 3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표암 강세황’이 열리고 있다. 전시된 문인화가 강세황의 서화 작품의 진위를 알고 싶다면 먼저 그의 글씨부터 알아야 한다. 문인화가의 그림은 글씨와 똑같은 필력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8 강세황의 가짜 1748년 ‘지상편도’. 9 강세황의 ‘백부분사’.
강세황은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잘 썼고 화공들과 달리 고상하게 그림도 잘 그렸다. 그가 1744년 쓴 ‘그림1’은 문징명 글씨를 통해 조맹부 글씨를 배운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강세황의 1747년 ‘현정승집도’(그림7), 1748년 ‘지상편도’(그림8)는 가짜다. ‘그림1’과 ‘그림7’ ‘그림8’글씨를 비교하면, ‘그림7’ ‘그림8’은 졸렬할 뿐 아니라 필력이 ‘그림1’에 크게 못 미친다.
아는 만큼 정직하게 감정
한때 강세황은 비문의 작은 글씨를 많이 썼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쓴 작은 글씨의 정교함에 깜짝 놀랐다. 전시장에서 그의 1751년 ‘도산도’, 1756년 ‘무이도첩’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작품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함께 전시한 그의 1753년 ‘무이구곡도’를 비교하면, ‘무이구곡도’는 두 작품과 글씨 짜임새가 다르고 그림 수준 또한 크게 못 미친다. 필력 좋은 문인화가의 그림이 아니다.
강세황은 생전에 “지금 사람은 반드시 명나라 사람의 글씨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해오는 강세황의 글씨를 보면, 그는 중국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왕탁(王鐸·1592~1652), 진홍수(陳洪綬·1599~1652)의 글씨도 배웠다. 바로 ‘그림3’은 왕탁, 그의 ‘백부분사’(그림9)는 진홍수를 배운 글씨다.
전문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윤리’다. 미술품 감정전문가는 양심적으로 가짜를 없애고 진짜를 보호해야 한다. 아는 만큼 정직하게 말하면 된다. 우리 미술시장에서 진짜가 ‘진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데는 그동안 진위 감정을 담당한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수많은 가짜를 허용했기에 정작 진짜가 설 곳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