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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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찡한 애니메이션 계속된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호주의 박세종 감독 … “한국 정서 듬뿍 담아 전 세계 감동시킬 터”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05-02-03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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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찡한 애니메이션 계속된다”

    1월26일 심야인터뷰 중인 박세종 감독

    호주 교포 박세종(38) 감독이 6·25전쟁 고아의 비극적인 꿈을 한국적 영상으로 담아낸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祝生日)’로 마침내 큰일을 저질렀다. 한국인 최초로 제77회 아카데미영화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른 것.

    1월26일 자정 무렵 후보작이 발표된 뒤 호주 TV들은 하루 종일 미국 주재 특파원들을 연결해 박세종 감독의 쾌거를 전하면서 박 감독과의 인터뷰, 후보작 ‘버스데이 보이’의 주요 장면을 방송했다. 그는 26일 하루 동안 호주 국영방송국인 ABC-TV를 비롯해 무려 6개 TV와 인터뷰했고 호주의 유력 일간지 ‘시드니모닝해럴드’ 등을 비롯해 모두 20여 차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은 마침 호주의 건국 기념일이어서 박 감독의 경사가 더욱 빛났다. 그의 집 근처에 위치한 달링하버에서 경축 행사의 일환으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 것. 군중의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간동아’와의 심야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날 밤 10시경 시작돼 자정 넘어서까지 이어진 인터뷰는 한국 언론매체와 한 유일한 직접 인터뷰였다.

    외롭고 힘겨운 제작 과정 극복

    첨단기술과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애니메이션 제작 특성을 감안할 때 ‘버스데이 보이’ 제작 과정은 외롭고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박 감독이 ‘원맨 밴드’가 되어 거의 혼자 만들다시피 했기 때문. 호주국립영화학교는 무명에 가깝던 박 감독의 영화 제작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다가 작업이 중반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작품이 심상치 않다’며 전면 지원에 나섰다.

    이후 작업은 대체로 순탄했다. 특히 국립영화학교의 인력과 장비를 무료로 사용해 30만 호주달러(약 2억4000만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대신 영화의 지적소유권은 박 감독이, 영화 자체의 소유권은 호주국립영화학교가 갖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버스데이 보이’는 각종 영화제에 호주 영화로 출품됐다.



    “가슴 찡한 애니메이션 계속된다”

    아들 가람과 포즈를 취한 박 감독

    국립영화학교는 제작비만 댄 게 아니다. 2년 남짓한 제작 기간 동안 박 감독에게 생계비까지 지원했다. 물론 박 감독이 특별대우를 받은 건 아니다. 한 학과에 4명 정도의 소수정예만 선정하는 이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영화 제작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생계비 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 2년 과정의 학생 한 명을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비용보다 더 많이 든단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 소속의 국립영화학교는 한동안 이어진 호주 영화산업의 부진 때문에 한때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그 위기를 단 ‘한방’에 끝낸 주인공이 바로 박 감독이다. ‘버스데이 보이’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자 보브 카 주정부 총리가 학교를 직접 방문해 900만 호주달러라는 거액의 학교 지원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카 총리는 “이런 작품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더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슴 찡한 애니메이션 계속된다”

    2005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작에 오른 ‘버스데이 보이’의 스틸 컷들

    박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며 35개 각종 국제영화상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이는 이 학교가 만든 작품 가운데 최대 수상기록. 그러나 박 감독은 “각종 영화제에 영화를 배급하는 학교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학교에 공을 돌렸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영화배급을 맡고 있는 루스 샌더스는 “박 감독은 늘 겸손해하지만 사실 박 감독 작품을 출품해달라는 e메일이 밀려들어와 내 컴퓨터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감독은 이미 애니메이션계의 세계적 스타”라며 “아카데미 후보 선정은 한국과 호주의 큰 영광이며, 특히 박 감독의 모국인 한국에 축하 인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샌더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박 감독의 수상 경력을 보면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4년 8월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시그라프에서 대상을 받았다. 제51회 시드니필름페스티벌에서는 요람 그로스 어워드(대상)를 거머쥐었다. 더욱이 이 상은 같은 호주 작품으로 2004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하비 크럼펫의 ‘아담 엘리엇’과 인기 절정의 ‘풋 노트’를 제쳤다는 점에서 박 감독의 성가를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됐다.

    첫 타석서 ‘대박’ … 호주에서 활동 예정

    박 감독은 올해도 영화제 참석과 심사위원 위촉, 수상 결정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2월12일엔 이미 후보에 오른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가하며 3월 열리는 시드니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2월24일 열리는 일본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미국 아카데미상 일정과 겹쳐 참가가 어려울 것 같다.

    11년 전 멜버른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르네 레고는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객인 박 감독과 한집에 세 들어 살다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 둘은 7년 전 결혼했고, 현재 만 두 살짜리 아들 가람이를 두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남편에 대해 르네는 “불만이 없다”고 말한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해외여행도 실컷 할 수 있으니 행복할 따름이에요.”

    시드니에 정착한 박 감독은 생활비를 벌 목적으로 전화번호부를 뒤져 찾아낸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 취직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호주 최고의 주간 시사잡지 ‘블리튼’의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었다. 그는 존 하워드 호주연방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표지 일러스트를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5년 동안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던 박 감독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던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호주국립영화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몇 편의 시험작품을 만든 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요량으로 ‘버스데이 보이’를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첫 타석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가슴 찡한 애니메이션 계속된다”

    6·25전쟁 중 고아가 된 한 어린이가 폐허가 된 마을에서 전쟁 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박 감독은 앞으로도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로 호주에서 활동할 생각이다. 아들에게 아빠의 고국과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박 감독의 이런 정신은 작품세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을 믿으며 동양의 정서가 듬뿍 담긴 애니메이션으로 동서양을 모두 감동시키겠다는 것. 이런 그의 소망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버스데이 보이’를 통해 이룬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온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갈수록 애니메이션에 코미디 및 동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는데, 나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가 건네준 테이프를 들고 집에 돌아와 감상했다. ‘9분 남짓한 단편에, 장편에 어울릴 듯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평가만큼이나 ‘큰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한 편의 서정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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