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믿을 맨’ 이창호 9단의 실족이다. 국수전 도전1국에서 후배 최철한 9단에게 한 판 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만에서 열린 중환배에서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무너진 데 이어 위빈 9단에게조차 덜미가 잡힌 건 이해하기 어렵다. 1월 한 달 동안 4판을 둬 3판이나 지고 있다는 건 분명 이창호 9단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시적인 슬럼프인가, 아니면 이창호 시대의 내리막을 예고하는 전조인가.
좌상변 백진에 뛰어든 흑▲를 몽땅 잡자고 칼을 빼든 장면. 탈출이 여의치 않자 위빈 9단이 꼬리▲는 떼주겠다며 흑1로 타협안을 제시했을 때, 이때가 문제였다. 평소의 이창호 9단 같았으면 백A로 반쪽을 받아먹으며 계속해서 흑1 한 점을 내몰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날은 장기인 방패술을 버리고 백2 이하 6을 몽땅 잡겠다며 창검술을 택했다. 그러나 흑13으로 덮어오자 오히려 백△넉 점이 곤란한 모습이 아닌가.
백1 이하로 반격했으나 흑4로 키워 죽인 수가 좋았고, 결국 흑12에 이르러 가뿐히 살고 말았다. 가령 백1·3으로 잡으려 들면 흑4·6의 사석을 이용해 12까지 백 넉 점을 잡으며 사는 수가 있는 것이다. 201수 끝, 흑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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