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안병기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위’와 ‘폰’을 만들면서 한국 호러 영화계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아왔다. 재미있는 건 안병기에게 기대를 건 많은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이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이 아리송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마음에 안 들고 예술적인 가치도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그만큼 이 장르에서 꾸준히 양질의 영화들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종호의 장편소설 ‘모녀귀’를 각색한 안병기의 세 번째 영화 ‘분신사바’는 과연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는가? 솔직히 아니다. 아마 위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신사바’는 그의 단점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드러나 있지만 발전은 거의 없는 영화다.
영화는 일단 게으르다는 느낌을 준다. 작은 시골마을에 전학 온 한 소녀가 분신사바 주문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학생들을 막으려 한다는 도입부부터가 ‘여고괴담’의 잔해다. 그 뒤에 등장하는 머리 긴 29번 귀신을 보고 사다코를 연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29번 유령의 사연이 밝혀지는 동안 점점 ‘링’을 닮아갈 때는 한숨부터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활자 매체에서 영화로 옮겨졌으니 어쩔 수 없이 모방과 표절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영화는 이를 창의성으로 커버하는 대신 허겁지겁 이야기만 따라가는 데 급하다. ‘분신사바’는 분명한 리듬감이 없는 지루한 페이스로 닳고 닳은 공포 효과들을 남발하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이건 한국 호러 영화의 대표주자에게 기대할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이제 슬슬 자신의 방법론을 재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차라리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인형사’가 더 그럴싸한 호러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칭찬만 하기는 어렵다. 올해 나온 국내 호러 영화치고 드물게 사다코가 덜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수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는 그냥 가끔씩 인형들을 움직여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중간 중간에 드라마틱한 죽음을 삽입하는 것으로 공포 효과를 주는 데 만족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들의 의도는 가끔 먹힌다. 그것만 계산해도 이 영화는 ‘분신사바’보다 조금 낫다.
‘인형사’의 내용은 고립된 미술관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 명씩 복수심에 가득 찬 인형들에게 살해된다는 것인데, 구체관절인형의 괴기한 분위기에서 힌트를 얻은 이 설정은 끝까지 완전한 설득력을 얻지는 못한다. 더 심한 문제는 구체관절인형을 더 잘 알수록 영화의 설정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것. 결국 영화는 어느 쪽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나칠 정도로 ‘장화, 홍련’을 모방한 듯한 미술관의 분위기 역시 개성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벌써 여름 시즌의 중반을 넘어섰고 네 편이나 되는 한국 장르 호러 영화들이 소개되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제대로 된 영화가 한 편이라도 나와주지 않는다면 2004년 호러 영화 붐은 2000년 호러 영화 열풍을 뛰어넘는 거품 현상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종호의 장편소설 ‘모녀귀’를 각색한 안병기의 세 번째 영화 ‘분신사바’는 과연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는가? 솔직히 아니다. 아마 위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신사바’는 그의 단점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드러나 있지만 발전은 거의 없는 영화다.
영화는 일단 게으르다는 느낌을 준다. 작은 시골마을에 전학 온 한 소녀가 분신사바 주문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학생들을 막으려 한다는 도입부부터가 ‘여고괴담’의 잔해다. 그 뒤에 등장하는 머리 긴 29번 귀신을 보고 사다코를 연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29번 유령의 사연이 밝혀지는 동안 점점 ‘링’을 닮아갈 때는 한숨부터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활자 매체에서 영화로 옮겨졌으니 어쩔 수 없이 모방과 표절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영화는 이를 창의성으로 커버하는 대신 허겁지겁 이야기만 따라가는 데 급하다. ‘분신사바’는 분명한 리듬감이 없는 지루한 페이스로 닳고 닳은 공포 효과들을 남발하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이건 한국 호러 영화의 대표주자에게 기대할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이제 슬슬 자신의 방법론을 재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차라리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인형사’가 더 그럴싸한 호러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칭찬만 하기는 어렵다. 올해 나온 국내 호러 영화치고 드물게 사다코가 덜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수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는 그냥 가끔씩 인형들을 움직여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중간 중간에 드라마틱한 죽음을 삽입하는 것으로 공포 효과를 주는 데 만족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들의 의도는 가끔 먹힌다. 그것만 계산해도 이 영화는 ‘분신사바’보다 조금 낫다.
‘인형사’의 내용은 고립된 미술관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 명씩 복수심에 가득 찬 인형들에게 살해된다는 것인데, 구체관절인형의 괴기한 분위기에서 힌트를 얻은 이 설정은 끝까지 완전한 설득력을 얻지는 못한다. 더 심한 문제는 구체관절인형을 더 잘 알수록 영화의 설정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것. 결국 영화는 어느 쪽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나칠 정도로 ‘장화, 홍련’을 모방한 듯한 미술관의 분위기 역시 개성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벌써 여름 시즌의 중반을 넘어섰고 네 편이나 되는 한국 장르 호러 영화들이 소개되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제대로 된 영화가 한 편이라도 나와주지 않는다면 2004년 호러 영화 붐은 2000년 호러 영화 열풍을 뛰어넘는 거품 현상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