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에서 청주 시내로 들어서는 길가에 도열한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늘 풋풋하고 상큼하다. 어떤 환영 행사보다도 따뜻하고, 어떤 환영객보다도 반갑다. 이제 그 거리엔 낙엽들이, 환영 행렬 뒤로 날리는 색종이처럼, 온통 휩쓸고 있을 것이다.
청주(淸州)에 온 것을 핑계 삼아, 청주(淸酒) 얘기를 해보자. 우리 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종류로 나뉜다. 막 걸러낸 막걸리가 탁주요, 술지게미를 잘 가라앉혀서 용수를 박아 조심스레 걸러낸 맑은 술이 청주요, 탁주나 청주를 증류한 것이 소주다. 옛날 선비들은 청주를 즐겨 마셨는데 이를 약주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주세법을 엄격히 적용하게 되면서 청주는 일본 술을 대표하고, 약주는 조선 술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청주는 일본 술 회사 이름을 따서 정종이라고도 불렀다. 현재까지도 청주와 약주는 법으로 구별하고 있다. 주세법에서 약주는 누룩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청주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청주에는 주정(고구마나 당밀 따위에서 추출한 95도가 넘는 알코올)이 들어가지만 약주에는 주정이 안 들어간다. 약주는 13도 이하인데, 청주는 14도 이상 25도 미만의 술이다. 약주는 주세율이 30%인데 청주는 70%다. 법적으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데, 모두 20세기에 들어서 생겨난 것들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맑은 술 청주(淸酒)가 있다. 대추술이다. 맑긴 하지만 붉다. 붉어서 옅은 커피 색을 띤다. 대추가 들어갔으니 달 듯하지만, 생각한 것만큼 달지는 않다. 누룩 향은 옅은 편인데, 첫맛은 달고 뒷맛은 쌉싸름하다. 16도로 도수가 높진 않으나 술이 진하다. 한 모금 마시니 술이 목젖을 친다. 야릇한 맛이다. 이 술을 제대로 맛보려면 상당산성에 올라야 한다.
상당산성은 조선시대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청주 읍성의 보루이자 청주 주민의 피신처였다. 492m로 해발 고도는 높지 않으나, 도청에서 10km쯤 떨어져 있고 산길로 상당히 높이 올라가야 한다. 백제 시대엔 상당현에 속해 있었던, 접시처럼 오목한 산꼭대기에 에둘러진 산성은 김유신의 셋째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둘레가 4.2km인데 보존 상태가 좋다. 무엇보다도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청주 시가지와 무심천, 멀리 미호천과 증평평야의 전경은 지리산 천왕봉에 우뚝 섰을 때처럼이나 광활하고 무한하다.
상당산성 안에는 산성마을이 있다. 논밭이 있고, 저수지도 눈에 띄는데 현재는 40호 가량이 살고 있다. 그중 31호가 음식점 간판을 달고 있다. 집집마다 전통 음식 시범업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이곳의 전통 음식이라면 토종닭 백숙과 대추술 정도를 꼽는다. 백숙은 어느 시골, 어느 산골을 가도 웬만큼 한다면서 내놓는 음식이니 특별할 것은 없는데, 대추술은 좀 특별하다. 대추술은 산성마을에서 예로부터 빚어왔다. 대추는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쉽게 재배되는 품종인데, 대추술이 굳이 상당산성에서만 맥을 잇고 있으니 신통한 일이다. 그런 대추술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상당산성이 관광지가 되면서였다.
청주 시내 사람들이 구경 삼아 산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초반부터다. 그땐 성으로 들어오는 길도 좁아서 걸어와야 했다. 음식점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산성을 구경하고 난 손님들이 해가 저물어 묵을 곳을 찾으니, 동네 사람들은 통장 집을 소개해 주었다. 통장 집은 마을을 대표해서 그들을 정중히 받아들였다. 하룻밤을 묵게 된 손님들이 마당에서 노는 닭을 보고 저 닭을 잡아서 술상을 봐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닭죽에다가 집에서 빚은 대추술을 내놓았다.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 소문을 내고, 산성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마을이 변하게 되었다. 청주시에서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고 한옥으로 새 단장을 하라고 돈을 융자해줬다.
빚내서 집을 지으니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마을 사람들은 새집에 음식점 간판을 달았다. 대추술도 그냥 담아 팔았다. 그러다가 밀주 단속이 나와 잡혀가고 벌금 물고 난리가 났다. 장사를 안할 수는 없고, 사람들은 술을 찾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관공서에 진정서를 내고 탄원서를 냈다. 그러다가 민속주 규제가 풀린 이듬해인 1991년에 동네 사람 22명 이름으로 대추술 제조 허가를 받았다. 교통부로부터 전통 민속주 지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여럿이 하는 일이라 규모를 키우기가 어려웠다.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허가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조합원인 서정만씨(55) 혼자서 사업을 도맡게 되었다.
서정만씨는 5대조부터 산성 마을에 살면서 가양주(家釀酒)로 대추술을 빚어왔다. 그는 어머니 정옥남씨(3년 전 작고)와 아내 강정자씨와 함께 산성마을 안에서 서너해 술을 빚다가, 지금은 산성에서 2km쯤 떨어진 낭성면 현암리에서 술 공장(043-258-0873)을 운영하고 있다.
허가받고 대추술을 빚는 곳은 전국에 이곳밖에 없다. 산성마을에서 대추술을 빚게 된 동기를 물었으나, 특별히 전해오는 내력은 없었다. 다만 대추가 몸에 좋고, 다른 음식이나 약재와 조화를 잘 이루고, 또 이웃한 보은군에서 좋은 대추가 생산되므로 대추술을 빚게 되었다고 서정만씨는 설명했다.
대추술은 누룩과 찹쌀, 멥쌀, 대추, 솔잎을 재료로 해 만든다.
찹쌀은 주모(酒母)를 만들 때 술이 잘 삭으라고 사용한다. 전체로 따지면 누룩과 쌀은 2대 8의 비율로 들어가고, 찹쌀과 맵쌀은 3대 7의 비율로 들어간다. 대추는 발효 과정에 통째로 넣으면 맛이 우러나지 않기에, 압력식 중탕기에 2시간 가량 고아서 사용한다. 쌀 100kg 기준으로 대추가 7kg 들어간다. 대추 달인 물 때문에 술은 발그레한 대추빛이 돈다. 솔잎은 통상 고두밥을 찔 때 넣는다.
민속주 재료 중에서 누룩과 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솔잎이다. 왜 솔잎을 넣느냐고 안주인 강정자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독특한 견해를 피력했다.
솔잎을 고두밥을 찔 때, 주모를 담글 때, 밑술할 때, 덧술할 때 다 따로 넣어보았으나 크게 술맛이 달라지지는 않더라고 했다. 솔잎의 어떤 성분 때문에 넣는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솔잎 향은 발효 과정에서 다 빠져나가 버린다고 했다. 그녀는 용수(술을 거를 때 쓰는 대나무 용기)를 박을 때 술지게미가 뻑뻑하여 술이 잘 안 걸러지는데, 솔잎이 있으면 용수와 지게미 사이에 틈새를 만들어주어 잘 걸러진다고 했다. 그 때문에 솔잎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하는데, 수긍이 가는 견해였다.
대추술 공정은 주모를 만드는 데 5일 걸리고, 밑술 숙성시키는 데 하루, 덧술 숙성시키는 데는 20일 가량 걸린다. 대추 달인 물은 덧술 단계에서 넣는다. 두 차례 여과하고 나서, 냉동 창고에 10일 동안 저장하여 술에 남아 있는 미세한 찌꺼기를 모두 가라앉힌다. 75도에서 5초 동안 살균 처리한 뒤 병에 술을 담는다.
술값은 375ml 한 병에 소비자가격이 3500원 하고, 산성마을의 음식점에서는 5000원 한다. 아주 저렴한 편이다. 1ℓ짜리 선물용 도자기병에 담긴 술은 1만9500원 한다.
청주에 오면 상당산성에 올라보고, 상당산성에 오르면 대추술을 한잔 맛봐야 한다. 그 옛날, 산성을 지키던 장졸들이 멀리 청주 들판과 증평 평야를 바라보면서 마셨던 대추술에 몸을 실어보는 것도, 앞으로 청주 나들이 일정에 포함시키도록 하자.
청주(淸州)에 온 것을 핑계 삼아, 청주(淸酒) 얘기를 해보자. 우리 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종류로 나뉜다. 막 걸러낸 막걸리가 탁주요, 술지게미를 잘 가라앉혀서 용수를 박아 조심스레 걸러낸 맑은 술이 청주요, 탁주나 청주를 증류한 것이 소주다. 옛날 선비들은 청주를 즐겨 마셨는데 이를 약주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주세법을 엄격히 적용하게 되면서 청주는 일본 술을 대표하고, 약주는 조선 술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청주는 일본 술 회사 이름을 따서 정종이라고도 불렀다. 현재까지도 청주와 약주는 법으로 구별하고 있다. 주세법에서 약주는 누룩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청주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청주에는 주정(고구마나 당밀 따위에서 추출한 95도가 넘는 알코올)이 들어가지만 약주에는 주정이 안 들어간다. 약주는 13도 이하인데, 청주는 14도 이상 25도 미만의 술이다. 약주는 주세율이 30%인데 청주는 70%다. 법적으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데, 모두 20세기에 들어서 생겨난 것들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맑은 술 청주(淸酒)가 있다. 대추술이다. 맑긴 하지만 붉다. 붉어서 옅은 커피 색을 띤다. 대추가 들어갔으니 달 듯하지만, 생각한 것만큼 달지는 않다. 누룩 향은 옅은 편인데, 첫맛은 달고 뒷맛은 쌉싸름하다. 16도로 도수가 높진 않으나 술이 진하다. 한 모금 마시니 술이 목젖을 친다. 야릇한 맛이다. 이 술을 제대로 맛보려면 상당산성에 올라야 한다.
상당산성은 조선시대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청주 읍성의 보루이자 청주 주민의 피신처였다. 492m로 해발 고도는 높지 않으나, 도청에서 10km쯤 떨어져 있고 산길로 상당히 높이 올라가야 한다. 백제 시대엔 상당현에 속해 있었던, 접시처럼 오목한 산꼭대기에 에둘러진 산성은 김유신의 셋째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둘레가 4.2km인데 보존 상태가 좋다. 무엇보다도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청주 시가지와 무심천, 멀리 미호천과 증평평야의 전경은 지리산 천왕봉에 우뚝 섰을 때처럼이나 광활하고 무한하다.
상당산성 안에는 산성마을이 있다. 논밭이 있고, 저수지도 눈에 띄는데 현재는 40호 가량이 살고 있다. 그중 31호가 음식점 간판을 달고 있다. 집집마다 전통 음식 시범업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이곳의 전통 음식이라면 토종닭 백숙과 대추술 정도를 꼽는다. 백숙은 어느 시골, 어느 산골을 가도 웬만큼 한다면서 내놓는 음식이니 특별할 것은 없는데, 대추술은 좀 특별하다. 대추술은 산성마을에서 예로부터 빚어왔다. 대추는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쉽게 재배되는 품종인데, 대추술이 굳이 상당산성에서만 맥을 잇고 있으니 신통한 일이다. 그런 대추술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상당산성이 관광지가 되면서였다.
청주 시내 사람들이 구경 삼아 산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초반부터다. 그땐 성으로 들어오는 길도 좁아서 걸어와야 했다. 음식점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산성을 구경하고 난 손님들이 해가 저물어 묵을 곳을 찾으니, 동네 사람들은 통장 집을 소개해 주었다. 통장 집은 마을을 대표해서 그들을 정중히 받아들였다. 하룻밤을 묵게 된 손님들이 마당에서 노는 닭을 보고 저 닭을 잡아서 술상을 봐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닭죽에다가 집에서 빚은 대추술을 내놓았다.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 소문을 내고, 산성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마을이 변하게 되었다. 청주시에서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고 한옥으로 새 단장을 하라고 돈을 융자해줬다.
빚내서 집을 지으니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마을 사람들은 새집에 음식점 간판을 달았다. 대추술도 그냥 담아 팔았다. 그러다가 밀주 단속이 나와 잡혀가고 벌금 물고 난리가 났다. 장사를 안할 수는 없고, 사람들은 술을 찾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관공서에 진정서를 내고 탄원서를 냈다. 그러다가 민속주 규제가 풀린 이듬해인 1991년에 동네 사람 22명 이름으로 대추술 제조 허가를 받았다. 교통부로부터 전통 민속주 지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여럿이 하는 일이라 규모를 키우기가 어려웠다.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허가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조합원인 서정만씨(55) 혼자서 사업을 도맡게 되었다.
서정만씨는 5대조부터 산성 마을에 살면서 가양주(家釀酒)로 대추술을 빚어왔다. 그는 어머니 정옥남씨(3년 전 작고)와 아내 강정자씨와 함께 산성마을 안에서 서너해 술을 빚다가, 지금은 산성에서 2km쯤 떨어진 낭성면 현암리에서 술 공장(043-258-0873)을 운영하고 있다.
허가받고 대추술을 빚는 곳은 전국에 이곳밖에 없다. 산성마을에서 대추술을 빚게 된 동기를 물었으나, 특별히 전해오는 내력은 없었다. 다만 대추가 몸에 좋고, 다른 음식이나 약재와 조화를 잘 이루고, 또 이웃한 보은군에서 좋은 대추가 생산되므로 대추술을 빚게 되었다고 서정만씨는 설명했다.
대추술은 누룩과 찹쌀, 멥쌀, 대추, 솔잎을 재료로 해 만든다.
찹쌀은 주모(酒母)를 만들 때 술이 잘 삭으라고 사용한다. 전체로 따지면 누룩과 쌀은 2대 8의 비율로 들어가고, 찹쌀과 맵쌀은 3대 7의 비율로 들어간다. 대추는 발효 과정에 통째로 넣으면 맛이 우러나지 않기에, 압력식 중탕기에 2시간 가량 고아서 사용한다. 쌀 100kg 기준으로 대추가 7kg 들어간다. 대추 달인 물 때문에 술은 발그레한 대추빛이 돈다. 솔잎은 통상 고두밥을 찔 때 넣는다.
민속주 재료 중에서 누룩과 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솔잎이다. 왜 솔잎을 넣느냐고 안주인 강정자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독특한 견해를 피력했다.
솔잎을 고두밥을 찔 때, 주모를 담글 때, 밑술할 때, 덧술할 때 다 따로 넣어보았으나 크게 술맛이 달라지지는 않더라고 했다. 솔잎의 어떤 성분 때문에 넣는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솔잎 향은 발효 과정에서 다 빠져나가 버린다고 했다. 그녀는 용수(술을 거를 때 쓰는 대나무 용기)를 박을 때 술지게미가 뻑뻑하여 술이 잘 안 걸러지는데, 솔잎이 있으면 용수와 지게미 사이에 틈새를 만들어주어 잘 걸러진다고 했다. 그 때문에 솔잎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하는데, 수긍이 가는 견해였다.
대추술 공정은 주모를 만드는 데 5일 걸리고, 밑술 숙성시키는 데 하루, 덧술 숙성시키는 데는 20일 가량 걸린다. 대추 달인 물은 덧술 단계에서 넣는다. 두 차례 여과하고 나서, 냉동 창고에 10일 동안 저장하여 술에 남아 있는 미세한 찌꺼기를 모두 가라앉힌다. 75도에서 5초 동안 살균 처리한 뒤 병에 술을 담는다.
술값은 375ml 한 병에 소비자가격이 3500원 하고, 산성마을의 음식점에서는 5000원 한다. 아주 저렴한 편이다. 1ℓ짜리 선물용 도자기병에 담긴 술은 1만9500원 한다.
청주에 오면 상당산성에 올라보고, 상당산성에 오르면 대추술을 한잔 맛봐야 한다. 그 옛날, 산성을 지키던 장졸들이 멀리 청주 들판과 증평 평야를 바라보면서 마셨던 대추술에 몸을 실어보는 것도, 앞으로 청주 나들이 일정에 포함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