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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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한결같은 ‘저항’의 발자취

  • 입력2005-06-27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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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한 대형서점이 매장의 시집 배치를 바꿔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동안 출판사별로 배치해오던 시집을 시인 이름 순으로 바꾸었던 것. 그러자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민음사, 세계사, 문학동네 등 꾸준히 시선(詩選)을 내온 출판사들이 발끈했다. “나름대로 독특한 색깔을 유지해온 출판사별 시선집을 무시한 행위”라는 비난과 함께 “출판사별로 중복되는 시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출판사와 서점 사이에 이런 공방이 오갈 만큼 독자들이 시집을 고르는 데는 시인의 지명도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크게 작용한다. 특히 창비시선을 찾는 독자들은 시에 대한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한 편의 시가 음풍농월만 하는 게 아니라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바로 창비시선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초 신경림 시인의 ‘농무’로 시작된 창비시선이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신경림 엮음)로 200권째를 돌파했다. 25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창비시선의 이미지는 ‘저항’이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양성우의 ‘북치는 앉은뱅이’, 문병란의 ‘땅의 연가’, 이종욱의 ‘꽃샘 추위’ 등 6종의 판금시집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타는 목마름’으로 대표되는 저항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창비는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었다. 당시 이 시집에 대해 “창비답지 않은 상업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당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던 386세대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이 책은 지금까지 45만부나 팔려나갔다.

    이번 창비 25년의 결산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는 고은에서 정복여(올해 창비에서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를 냄)까지 시인 88명의 대표작으로 엮여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창비시선에 참지 않은 시인들까지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문화권력 내지는 문학계 파벌주의가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창비가 200권째(25주년) 기념시선집을 내면서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시도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야 신경림 시인의 눈을 빌려 70년대 이후 우리 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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