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 리더냐 학자풍의 지식인이냐.
미국 2000년 대통령 선거의 최대 쟁점은, 전략비축분 석유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세금도 아니다. 8년 민주당 정권을 까뭉개려는 ‘치어 리더’ 조지 W. 부시의 ‘바람 전략’과, 아무리 웃으려 해도 3분만 지나면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앨 고어의 ‘꼬장꼬장한 세련미’의 맞대결, 이것이 이번 미 대통령 선거의 승부를 가린다.
고어의 뻣뻣함은 출발부터 골칫거리였다. 목대를 댄 듯한 빳빳한 목덜미, 풀어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긴장된 인상, 정책 보고서를 읽는 듯한 연설투. 선거전 초기 고어 진영의 참모들이 짜낸 고육책은 ‘고치려 들면 더 어색하다. 뻣뻣함, 이것이 고어다. 그대로 두자. 그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클린턴의 청산유수의 언변도 고어의 재미없는 강의조 연설을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어의 연설은 일취월장을 거듭했고, 마침내 지난 달 로스앤젤레스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의 고어의 수락 연설은 가히 일품이었다는 평을 얻었다. 전국 유세를 다니는 요즈음, 고어의 연설은 여론 조사 결과의 상승세를 업어서인지 선거전 초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부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때부터 고어와 정반대였다. 선거전 막바지인 10월 초인 지금도 부시는 여전히 정반대다. 우선 부시의 억센 서부 텍사스 발음이 청중을 매료시킨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어눌하고 투박한 말투로 남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연설은 시작된다. 고어 스피치의 풍성한 밑반찬인 이슈, 정책, 대안보다는 조국 미국의 장래, 미국인의 이상을 웅변조로 설파한다.
부시 스피치의 단골 메뉴이자 압권은 부통령 고어를 ‘나쁜 사내’로 몰아세우는 ‘고어 때리기’다. 음흉한 워싱턴 정가의 대표적인 무능한 직업 정치인이자, 알량한 지식을 앞세워 아는 체 잘하고 말 뒤집기 잘하는 위선자가 고어라는 것이다.
고어의 최대 무기인 재정 흑자도 부시의 입에 올라가면 난도질을 당한다. “그 돈이 왜 정부의 돈이냐, 그건 시민의 돈이다.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돈이다. 그러니 세금은 내려야 한다. 미국 시민이면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다!”
부시의 제스처 역시 치어 리더 감이다. 유세장에서 부시는 곧잘 두 다리를 좍 벌린 채 버티고 서서 가랑이 사이로 마이크 대를 집어넣고 몸을 기댄 채 열변을 토한다. 그러다가도 순간 그는 남부 특유의 느린 어투로 청중에게 속삭인다. “워싱턴의 입 큰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그는 청중에게 에너지를 주입할 줄 안다. 타고난 ‘선거운동가’(camp aigner)이다. 선거자금 기부자들 앞에서는 텍사스 유전 회사의 ‘회장’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을 ‘미국 회사의 회장’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던 그다. 마이애미에서는 쿠바인들 앞에서 “누가 이깁니까? 우리가 이깁니다. 클린턴-고어는요? 안 되지요, 안 됩니다!!”를 수차례 외치면서 군중의 연호를 이끌어냈다.
부시의 연설에는 깊이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이야깃거리도 많지 않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어렴풋한 생각을 청중과 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고작이다. 진솔함보다는 눈치로 때려먹는 데 일가견이 있고, 때로는 음흉한 구석을 내비치기도 하고, 쇼맨십이 과하며, 코웃음이나 치고, 말실수도 많다. 그러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부시를 ‘멋진 사내, 멋진 대통령감’이라고 불러준다. 고어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는 듣지 못하는 말이다.
부시는 예일 대학의 속칭 68학번이다. 텍사스 출신으로 행세하지만 사실은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 뿌리를 둔 동북부 귀족 출신으로, 대통령의 아들이자 코네티컷 상원의원의 손자이며, 전형적인 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WASP)다. 군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해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는 전혀 딴판으로, ‘진짜 국민을 위한 진짜 계획’(Real Plans for Real People)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미 유권자들을 휘몰아치고 있다. 공화당의 인물 전략이고, 먹히고 있다.
하버드 출신 고어의 정책 위주 선거 전략은, 정책 토론이라는 미 선거 풍토의 훌륭한 토양을 최대한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층에 대한 반감과,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미 유권자들의 높은 벽은 고어의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고어가 티셔츠로 청중 앞에 설 때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어는 가까스로 클린턴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고어는 클린턴을 닮아간다. 클린턴의 슬로건은 ‘국민을 먼저’(Putting People First)였다. 8년 전 클린턴이 ‘잊힌 중산층’을 외쳤을 때의 모습과, 지금 ‘일하는 가족’(working families)을 외치는 고어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한 여론 조사 전략가는 “클린턴-고어 행정부의 제 3기를 유권자들에게 파는 것 같다”고까지 말한다.
“유권자들이 인물 위주가 아닌 이슈를 위주로 생각해야 고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민주당 선거전략가의 말은 고어라는 인물의 상품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어는 이에 대해 고어답게 논리로 맞선다. “나는 국민을 흥분시키는 정치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여러분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여러분을 깔보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8년 전인 1992년의 선거에서 클린턴이 지금의 조지 W. 부시 같은 치어 리더였다면, 당시의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고어였다. 존 F. 케네디, 레이건도 치어 리더였다. 클린턴과 맞붙었던 보브 돌과 부시는 모두 신중하고 엄격하고 근엄한 후보였고, 선거전의 패배자였다.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치어 리더 역이 바뀌었다. 우연의 결과로 보기는 힘들다. 민주당의 8년 정권에 식상할 대로 식상한 보수파 유권자들의 심리를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이 읽지 못했을 리 없다. 결국 부시라는 인물은 치밀히 계산된 후보다. 더구나 공화당은 매케인, 엘리자베스 돌, 파월 등 다양한 색채 속에서 부시를 내세웠다. 브래들리와 고어라는 한정된 선택지에서 고어를 내세운 민주당과는 달랐다.
고어와 부시의 승부처는 10월 초에 시작되는 텔레비전 토론이다. 정책 토론을 주무기로 몰고나갈 고어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 대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부시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 구사에도 문제점이 많은 부시가 텔레비전 토론 시청률이 높기를 바랄 리는 없다. 부시는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로 처음 텔레비전 토론이 시작된 이래 시청률이 낮기를 바라는 미국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토론은 예전 같이 인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시청률도 예전만 못하다. 1992년 클린턴과 부시의 텔레비전 토론을 본 시청자는 9000만명이었다. 4년 후인 1996년 그 숫자는 반으로 줄었다. 올해 민주`-`공화당의 전당대회 시청률도 방송사를 울렸다.
텔레비전 토론 시간대에 ‘백만장자 되기’ 등 다른 인기 프로그램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시청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모든 방송 네트워크가 동시에 TV 토론을 내보내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경우, 고어가 점수를 딸 기회는 그만큼 많아진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는 시청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부시에게는 유리하다. 고어를 상대로 토론을 벌이는 그를 보지 않은 시청자는 투표 당일 부시에게 표를 던질 확률이 높다.
미국 2000년 대통령 선거의 최대 쟁점은, 전략비축분 석유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세금도 아니다. 8년 민주당 정권을 까뭉개려는 ‘치어 리더’ 조지 W. 부시의 ‘바람 전략’과, 아무리 웃으려 해도 3분만 지나면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앨 고어의 ‘꼬장꼬장한 세련미’의 맞대결, 이것이 이번 미 대통령 선거의 승부를 가린다.
고어의 뻣뻣함은 출발부터 골칫거리였다. 목대를 댄 듯한 빳빳한 목덜미, 풀어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긴장된 인상, 정책 보고서를 읽는 듯한 연설투. 선거전 초기 고어 진영의 참모들이 짜낸 고육책은 ‘고치려 들면 더 어색하다. 뻣뻣함, 이것이 고어다. 그대로 두자. 그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클린턴의 청산유수의 언변도 고어의 재미없는 강의조 연설을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어의 연설은 일취월장을 거듭했고, 마침내 지난 달 로스앤젤레스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의 고어의 수락 연설은 가히 일품이었다는 평을 얻었다. 전국 유세를 다니는 요즈음, 고어의 연설은 여론 조사 결과의 상승세를 업어서인지 선거전 초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부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때부터 고어와 정반대였다. 선거전 막바지인 10월 초인 지금도 부시는 여전히 정반대다. 우선 부시의 억센 서부 텍사스 발음이 청중을 매료시킨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어눌하고 투박한 말투로 남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연설은 시작된다. 고어 스피치의 풍성한 밑반찬인 이슈, 정책, 대안보다는 조국 미국의 장래, 미국인의 이상을 웅변조로 설파한다.
부시 스피치의 단골 메뉴이자 압권은 부통령 고어를 ‘나쁜 사내’로 몰아세우는 ‘고어 때리기’다. 음흉한 워싱턴 정가의 대표적인 무능한 직업 정치인이자, 알량한 지식을 앞세워 아는 체 잘하고 말 뒤집기 잘하는 위선자가 고어라는 것이다.
고어의 최대 무기인 재정 흑자도 부시의 입에 올라가면 난도질을 당한다. “그 돈이 왜 정부의 돈이냐, 그건 시민의 돈이다.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돈이다. 그러니 세금은 내려야 한다. 미국 시민이면 누구나 그럴 권리가 있다!”
부시의 제스처 역시 치어 리더 감이다. 유세장에서 부시는 곧잘 두 다리를 좍 벌린 채 버티고 서서 가랑이 사이로 마이크 대를 집어넣고 몸을 기댄 채 열변을 토한다. 그러다가도 순간 그는 남부 특유의 느린 어투로 청중에게 속삭인다. “워싱턴의 입 큰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그는 청중에게 에너지를 주입할 줄 안다. 타고난 ‘선거운동가’(camp aigner)이다. 선거자금 기부자들 앞에서는 텍사스 유전 회사의 ‘회장’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을 ‘미국 회사의 회장’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던 그다. 마이애미에서는 쿠바인들 앞에서 “누가 이깁니까? 우리가 이깁니다. 클린턴-고어는요? 안 되지요, 안 됩니다!!”를 수차례 외치면서 군중의 연호를 이끌어냈다.
부시의 연설에는 깊이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이야깃거리도 많지 않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어렴풋한 생각을 청중과 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고작이다. 진솔함보다는 눈치로 때려먹는 데 일가견이 있고, 때로는 음흉한 구석을 내비치기도 하고, 쇼맨십이 과하며, 코웃음이나 치고, 말실수도 많다. 그러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부시를 ‘멋진 사내, 멋진 대통령감’이라고 불러준다. 고어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는 듣지 못하는 말이다.
부시는 예일 대학의 속칭 68학번이다. 텍사스 출신으로 행세하지만 사실은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 뿌리를 둔 동북부 귀족 출신으로, 대통령의 아들이자 코네티컷 상원의원의 손자이며, 전형적인 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WASP)다. 군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해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는 전혀 딴판으로, ‘진짜 국민을 위한 진짜 계획’(Real Plans for Real People)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미 유권자들을 휘몰아치고 있다. 공화당의 인물 전략이고, 먹히고 있다.
하버드 출신 고어의 정책 위주 선거 전략은, 정책 토론이라는 미 선거 풍토의 훌륭한 토양을 최대한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층에 대한 반감과,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미 유권자들의 높은 벽은 고어의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고어가 티셔츠로 청중 앞에 설 때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어는 가까스로 클린턴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고어는 클린턴을 닮아간다. 클린턴의 슬로건은 ‘국민을 먼저’(Putting People First)였다. 8년 전 클린턴이 ‘잊힌 중산층’을 외쳤을 때의 모습과, 지금 ‘일하는 가족’(working families)을 외치는 고어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한 여론 조사 전략가는 “클린턴-고어 행정부의 제 3기를 유권자들에게 파는 것 같다”고까지 말한다.
“유권자들이 인물 위주가 아닌 이슈를 위주로 생각해야 고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민주당 선거전략가의 말은 고어라는 인물의 상품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어는 이에 대해 고어답게 논리로 맞선다. “나는 국민을 흥분시키는 정치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여러분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여러분을 깔보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8년 전인 1992년의 선거에서 클린턴이 지금의 조지 W. 부시 같은 치어 리더였다면, 당시의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고어였다. 존 F. 케네디, 레이건도 치어 리더였다. 클린턴과 맞붙었던 보브 돌과 부시는 모두 신중하고 엄격하고 근엄한 후보였고, 선거전의 패배자였다.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치어 리더 역이 바뀌었다. 우연의 결과로 보기는 힘들다. 민주당의 8년 정권에 식상할 대로 식상한 보수파 유권자들의 심리를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이 읽지 못했을 리 없다. 결국 부시라는 인물은 치밀히 계산된 후보다. 더구나 공화당은 매케인, 엘리자베스 돌, 파월 등 다양한 색채 속에서 부시를 내세웠다. 브래들리와 고어라는 한정된 선택지에서 고어를 내세운 민주당과는 달랐다.
고어와 부시의 승부처는 10월 초에 시작되는 텔레비전 토론이다. 정책 토론을 주무기로 몰고나갈 고어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 대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부시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 구사에도 문제점이 많은 부시가 텔레비전 토론 시청률이 높기를 바랄 리는 없다. 부시는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로 처음 텔레비전 토론이 시작된 이래 시청률이 낮기를 바라는 미국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토론은 예전 같이 인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시청률도 예전만 못하다. 1992년 클린턴과 부시의 텔레비전 토론을 본 시청자는 9000만명이었다. 4년 후인 1996년 그 숫자는 반으로 줄었다. 올해 민주`-`공화당의 전당대회 시청률도 방송사를 울렸다.
텔레비전 토론 시간대에 ‘백만장자 되기’ 등 다른 인기 프로그램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시청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모든 방송 네트워크가 동시에 TV 토론을 내보내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경우, 고어가 점수를 딸 기회는 그만큼 많아진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는 시청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부시에게는 유리하다. 고어를 상대로 토론을 벌이는 그를 보지 않은 시청자는 투표 당일 부시에게 표를 던질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