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계열사 고위 임원 A씨는 최근 기자에게 “요즘 어디 가서 함부로 명함도 꺼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우를 망치게 한 장본인이라는 말없는 질책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해온 30년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도 참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김우중 전 회장이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고급 주택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과거 자기 밑에서 일하던 임직원들이 금융감독원 산하 대우 감리반에 불려다니고 이 가운데 일부는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마당에 자기 혼자만 외국에서 편히 지낸다니 솔직히 배신감이 들더군요.”
A씨의 말은 모든 책임을 김우중 전 회장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을 받을 법한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이 임원의 얘기는 대다수 대우 임직원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임원은 “차라리 김우중 전 회장이 자진 귀국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생기겠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부실 처리를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지금까지 20조9000억원.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총액 109조6000억원(회수·재투입분 포함)의 19%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대우자동차 매각 차질에 따른 금융권 부담 증가 및 서울보증보험 출자 등으로 7조원 가량이 추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재정경제부의 추산이다.
일각에서는 대우차 매각 실패로 추가 투입금액이 7조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우차 매각이 쉽게 결말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포드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이후 벌써부터 ‘헐값 매각’ 시비가 일고 있는데, 이는 대우차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감정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결국에는 이런 여론 때문에 대우차 채권단이나 정부가 움츠러들어 대우차 매각이 지연되면 대우차 채권단의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대우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상 대우 부실에 책임있는 전현직 임직원들에 대한 민형사상 조치는 당연한 수순. 금융감독원은 이런 차원에서 ㈜대우 등 대우 계열 12사의 분식회계 조사-감리를 위한 특별반을 설치해 작년 말부터 올 8월 말까지 이들 회사의 분식회계 여부를 조사해 허위 재무제표 작성 공시에 책임있는 김우중 전 회장 등 임원 21명에 대해 형사고발했다.
그러나 대우 임원들은 사석에서는 이 조사에 대해 승복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 임원은 “대검 중수부가 9월 말 대우 분식회계 수사에 착수하면서 김 전 회장에게 자진귀국을 종용한다고 했지만 대우 내에서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우 부실의 ‘몸통’인 김 전회장에 대해서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채 ‘깃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대우 임직원들은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인사들까지도 김 전회장의 귀국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김 전회장이 행여 ‘폭탄선언’이라도 하면 정치권 전체가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중진 K의원은 “김 전회장이 과거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반의 예상처럼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오히려 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우 부실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과거 고위 임원들이 금감원 형사고발 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금감원 대우 감리반의 조사가 97, 98회계연도 재무제표에만 한정됐기 때문. 그러다보니 ‘불행하게도’ 당시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던 임원들이 주로 형사고발 또는 검찰 통보 대상이 됐다.
대우중공업의 한 임원은 “97년과 98년에 대표이사를 맡았던 임원들은 대부분 위기에 처한 그룹을 살리기 위해 나름대로는 고생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재수없이 하필 그때 대표이사나 회계 담당 임원을 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곤욕을 치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어 “90년대 초반부터 대우전자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형사고발 대상에서 빠지고 검찰 통보 대상이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대우감리반 안희성 팀장은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리에 관한 법률상 과거 3년 이전의 재무제표 분식에 대해서는 처벌하기 힘든 데다 97, 98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과거 분식도 그대로 누적돼 있기 때문에 두 해의 재무제표만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안팀장은 배순훈 전 장관에 대해서는 “필요한 사람들은 검찰에 통보했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배순훈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대우 분식회계와 관련, 검찰 통보 대상이 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우전자 분식회계에 책임이 없다는 뜻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했다.
금융권에서는 결과적으로 대우 부실을 ‘방조한’ 정부 당국자들이 오히려 칼을 휘두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98년 말부터 대우 부실을 우려한 투신권 등 일부 금융기관이 대우 관련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대거 회수하자 작년 6월 무렵 정부에서 회수 비율만큼 다시 대우 회사채를 인수하도록 해 대우 부실을 키웠다는 것. 당연히 당시 정책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성대 무역학부 김상조 교수도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이라는 논문에서 “시장은 대우그룹의 문제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대우에 워크아웃을 적용하면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문제 해결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좀더 일찍 대우를 정리했다면 그만큼 대우 부실이 적었을텐데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에 대우 부실 처리를 위한 사회적 비용만 늘어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실적 배당 상품인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해 대우 부실로 인한 손실 분담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공적자금 투입 규모를 늘리게 한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작년 대우사태 이후 수익증권 환매를 제한하면서 개인과 법인에 대해 90일 간격으로 대우 무보증 채권 원본의 50%→80%→95%를 보장해주었는데, 이는 총선을 앞두고 투자자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것. 결국 공적자금으로 수익증권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준 셈이었다.
한편 고유가와 반도체값 하락에 따른 주식시장 폭락 등 최근 다시 드러난 우리 경제의 취약성도 정부가 대우 사태를 잘못 처리한 데 그 뿌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작년 대우사태 이후 간간히 터져나온 금융시장 대란설을 근본적으로 잠재우기 위해서는 구조 개혁을 착실히 진행했어야 했는데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남발하면서 위기관리에만 치중했고, 결국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외생변수의 변화로 최근 다시 ‘경제 위기론’이 나오게 됐다”고 분석했다.
대우 부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대우가 망하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면서 구조조정보다는 ‘버티기’로 일관한 김우중 전 회장에게 있다. 대우 문제 처리를 지연시킴으로써 대우 부실을 키웠던 정부도 감독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애매한 대우 임원들만 또다시 검찰에 불려가는 수모를 당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최근 김우중 전 회장이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고급 주택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과거 자기 밑에서 일하던 임직원들이 금융감독원 산하 대우 감리반에 불려다니고 이 가운데 일부는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마당에 자기 혼자만 외국에서 편히 지낸다니 솔직히 배신감이 들더군요.”
A씨의 말은 모든 책임을 김우중 전 회장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을 받을 법한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이 임원의 얘기는 대다수 대우 임직원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임원은 “차라리 김우중 전 회장이 자진 귀국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생기겠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부실 처리를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지금까지 20조9000억원.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총액 109조6000억원(회수·재투입분 포함)의 19%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대우자동차 매각 차질에 따른 금융권 부담 증가 및 서울보증보험 출자 등으로 7조원 가량이 추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재정경제부의 추산이다.
일각에서는 대우차 매각 실패로 추가 투입금액이 7조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우차 매각이 쉽게 결말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포드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이후 벌써부터 ‘헐값 매각’ 시비가 일고 있는데, 이는 대우차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감정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결국에는 이런 여론 때문에 대우차 채권단이나 정부가 움츠러들어 대우차 매각이 지연되면 대우차 채권단의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대우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상 대우 부실에 책임있는 전현직 임직원들에 대한 민형사상 조치는 당연한 수순. 금융감독원은 이런 차원에서 ㈜대우 등 대우 계열 12사의 분식회계 조사-감리를 위한 특별반을 설치해 작년 말부터 올 8월 말까지 이들 회사의 분식회계 여부를 조사해 허위 재무제표 작성 공시에 책임있는 김우중 전 회장 등 임원 21명에 대해 형사고발했다.
그러나 대우 임원들은 사석에서는 이 조사에 대해 승복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 임원은 “대검 중수부가 9월 말 대우 분식회계 수사에 착수하면서 김 전 회장에게 자진귀국을 종용한다고 했지만 대우 내에서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우 부실의 ‘몸통’인 김 전회장에 대해서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채 ‘깃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다.
대우 임직원들은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인사들까지도 김 전회장의 귀국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김 전회장이 행여 ‘폭탄선언’이라도 하면 정치권 전체가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중진 K의원은 “김 전회장이 과거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반의 예상처럼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오히려 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우 부실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과거 고위 임원들이 금감원 형사고발 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금감원 대우 감리반의 조사가 97, 98회계연도 재무제표에만 한정됐기 때문. 그러다보니 ‘불행하게도’ 당시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던 임원들이 주로 형사고발 또는 검찰 통보 대상이 됐다.
대우중공업의 한 임원은 “97년과 98년에 대표이사를 맡았던 임원들은 대부분 위기에 처한 그룹을 살리기 위해 나름대로는 고생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재수없이 하필 그때 대표이사나 회계 담당 임원을 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곤욕을 치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어 “90년대 초반부터 대우전자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형사고발 대상에서 빠지고 검찰 통보 대상이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대우감리반 안희성 팀장은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리에 관한 법률상 과거 3년 이전의 재무제표 분식에 대해서는 처벌하기 힘든 데다 97, 98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과거 분식도 그대로 누적돼 있기 때문에 두 해의 재무제표만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안팀장은 배순훈 전 장관에 대해서는 “필요한 사람들은 검찰에 통보했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배순훈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대우 분식회계와 관련, 검찰 통보 대상이 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우전자 분식회계에 책임이 없다는 뜻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했다.
금융권에서는 결과적으로 대우 부실을 ‘방조한’ 정부 당국자들이 오히려 칼을 휘두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98년 말부터 대우 부실을 우려한 투신권 등 일부 금융기관이 대우 관련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대거 회수하자 작년 6월 무렵 정부에서 회수 비율만큼 다시 대우 회사채를 인수하도록 해 대우 부실을 키웠다는 것. 당연히 당시 정책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성대 무역학부 김상조 교수도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이라는 논문에서 “시장은 대우그룹의 문제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대우에 워크아웃을 적용하면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로 문제 해결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좀더 일찍 대우를 정리했다면 그만큼 대우 부실이 적었을텐데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에 대우 부실 처리를 위한 사회적 비용만 늘어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실적 배당 상품인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해 대우 부실로 인한 손실 분담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공적자금 투입 규모를 늘리게 한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작년 대우사태 이후 수익증권 환매를 제한하면서 개인과 법인에 대해 90일 간격으로 대우 무보증 채권 원본의 50%→80%→95%를 보장해주었는데, 이는 총선을 앞두고 투자자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것. 결국 공적자금으로 수익증권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준 셈이었다.
한편 고유가와 반도체값 하락에 따른 주식시장 폭락 등 최근 다시 드러난 우리 경제의 취약성도 정부가 대우 사태를 잘못 처리한 데 그 뿌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작년 대우사태 이후 간간히 터져나온 금융시장 대란설을 근본적으로 잠재우기 위해서는 구조 개혁을 착실히 진행했어야 했는데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남발하면서 위기관리에만 치중했고, 결국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외생변수의 변화로 최근 다시 ‘경제 위기론’이 나오게 됐다”고 분석했다.
대우 부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대우가 망하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면서 구조조정보다는 ‘버티기’로 일관한 김우중 전 회장에게 있다. 대우 문제 처리를 지연시킴으로써 대우 부실을 키웠던 정부도 감독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애매한 대우 임원들만 또다시 검찰에 불려가는 수모를 당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