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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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 배출한 인재들… 워매 이렇게 많다냐”

  • 입력2005-09-05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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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은 “만약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고 했고, 조선 후기 학자 매산 홍직필도 “예로부터 호남은 인물의 부고(府庫)라 하더니 과연 그렇다”며 전라도인의 인물됨을 칭찬했다. 하지만 성호 이익은 “전라 충청 지방은 거칠어서 기술은 넉넉해도 유교문화는 찾아볼 수 없다”고 평했고,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팔도인심론’에서 “전라도 사람은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고 간사하므로 그른 일에 마음이 움직이기 쉽다”고 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지난 5년간 ‘고려사’와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사료를 분석한 김정수씨(70)는 “전라도에 대한 편견은 지금까지 누구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전라도를 한번도 답사하지 않은 이중환이 쓴 ‘택리지’가 여전히 전라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김씨는 5년 전 정년퇴임(금호고교 교장으로 퇴임) 후 줄곧 이 문제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전라도 출신 문인 학자 정치가 명장 의인 열사 등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차현(차령산맥) 이남의 인재 등용 금지”를 선언했기에 고려시대에 꼽을 만한 전라도 출신 인재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생각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사’를 조사하면서 통쾌한 체험을 했다. ‘인물의 불모지’라 여겼던 전라도에서 수많은 문인 관료 학자 명장이 배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상 태조 왕건의 아버지에게 송악 남쪽 기슭에 집터를 잡아주고 삼한 통일의 영주(英主)가 출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도선국사도 영암 출신 아니었던가.

    김씨는 도선국사 외에 신숭겸 최지몽 박영규 등 전라도 출신 인재 99명을 찾아 평전형식으로 기록해나갔다. 전라도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정체가 밝혀지고 오해도 풀릴 것이라는 저자의 뜻이 두 권의 책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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