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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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진실’ 을 찾아서…

  • 입력2005-08-25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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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진실’ 을 찾아서…
    한-러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치 구한말의 미묘한 상황을 암시하듯 우리의 전통 궁 안에 서양식의 위압적인 석조전이 자리잡았던 그곳. 그래서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어릴 적부터 뜻도 모르고 외웠던 무슨 사자성어같은 말을 떠올리며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문화사적 연결고리 또한 희미하게 더듬어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처럼 슬픈 화려함의 빛깔로 새겨 있는 중세 러시아 이콘(성상화)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나스타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노프 왕조의 아픈 기억, 학창시절 무지하게 긴 이름의 주인공들을 뒤따라가며 고민하게 만들었던 러시아의 소설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썼던 펠트모자,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혁명적 이미지 몽타주에 이르기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블록버스터형 전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같은 방에서 두 사람의 화가, 그것도 러시아의 진실에 평생 가장 가깝게 다가서려고 했던 화가들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로 러시아 리얼리즘의 씨앗과 같은 존재인 이바노프와 러시아의 현실과 정체성을 정확히 직시한 이동파의 사상적 리더였던 크람스코이다.

    이바노프는 19세기 관제 미술아카데미의 미학, 그러니까 현실을 무시한 신화적 소재나 귀족 취향의 고전주의적 미술세계에 대해 구토를 일으켰던 거의 최초로 ‘의식화된’ 화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최고 역작인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1837~57)는 제작기간만도 무려 20년. 이바노프는 이 한 작품을 위해 수백 장의 인물과 풍경 습작을 그렸다. 그리고 이 습작들은 마지막엔 하나의 화면 속에 모자이크되면서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가 조합된 거대한 서사시를 만들어 놓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습작, 알바노의 성 바울 교회의 문 앞의 흙’이라는 소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이런 성격의 작품이다.

    한 화가가 하나의 작품을 수십년 동안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크람스코이는 이바노프의 이런 불꽃 같은 의지와 진보적인 예술혼을 이어받았다. 그는 틀에 박힌 관제 미술아카데미의 매너리즘에 반항하여 1863년 미술아카데미를 탈퇴하고, 일종의‘미술가 공산주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가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농노제 폐지와 자본주의의 악덕을 고발하는 작품을 들고 직접 민중 속으로 들어가 이동 순회전시를 펼치는 소위‘이동파’를 결성(1870)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동파는 러시아근-현대미술의 불꽃이자 러시아 리얼리즘의 광맥이었고, 그 중심에 크람스코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람스코이는 초상화의 대가였다. 그가 그린 대다수의 인물화는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러나 예지에 가득 찬 1860년대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형상을 창출했다. 명상적이면서 슬픈 듯한 눈, 진보적 사상가의 내면과 외면 표현에 탁월했다.

    특히 그는 눈에 주목했는데, 화면 속의 인물은 감상자의 눈을 가만히 응시함으로써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번 전시의 백미 ‘미지의 여인’의 눈을 보라. 바로 여기, 오늘의 우리를 꿰뚫어보면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있지 않은가. 9월30일까지 서울 덕수궁 미술관(이후 광주 대구 부산 순회전). 문의:02-779-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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