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된 11월25일 밤, 노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당을 떠난 K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축하한다. 복당하겠다”는 K의원의 말에 이 측근은 연신 ‘OK’를 연발했다. 그와 전화를 끊은 직후 또 다른 탈당파 인사는 “탈당파 인사들이 복당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를 전해 들은 노후보는 “그래야지요”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플레이오프를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노후보 주변에는 변화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이전의 흐름이 패배주의가 깔린 무기력증이었다면 지금은 “할 만하다”는 충만한 자신감이다. 25일 오전 민주당 선거대책위 회의, 한화갑 대표를 비롯해 김상현 김근태 고문, 한광옥 최고위원 등 노후보와 일정 거리를 두었던 당직자들이 대부분 참석, 100여 좌석이 꽉 찼다. 노후보 의전팀 한 관계자는 “6·3 지방선거 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盧, 패배주의 무기력증 극복 “할 만하다”
한때 ‘소 닭 보듯 하던’ 일부 당직자들이 먼저 스킨십을 제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5일 오전 당사를 찾은 노후보는 평소 거리를 두던 한 의원이 손을 내밀자 멈칫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특유의 웃음으로 그를 감싸 안았다. 노후보가 “국민경선으로 후보를 단일화하자”고 제안했을 때 “저 불뚝 성질 때문에 다 망한다”며 고개를 흔들던 모 당직자도 노후보에게 어색한 악수를 청했다. 노후보는 이런 작은 변화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플레이오프를 거친 노후보의 경쟁력은 불과 며칠 사이에 너무나도 달라졌다. 모든 언론이 제2의 노풍을 예고한 데서 이미 단일후보의 힘이 느껴진다. 20%대 초반에 머물던 지지도는 단일화 작업을 거치며 이회창 대세론을 오차범위 내에서 따돌렸다. 노후보 주변에서는 “이 흐름을 12월19일까지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부패정권 청산을 부르짖는 한나라당에 맞설 노후보의 승부수는 세대교체론이다. 새 정치와 낡은 정치의 극적 대비를 통해 젊은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복안이다. 이 구도가 정착되면 ‘귀족 대 서민’이란 대립구도도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란 판단이다. 여기에 후보단일화를 통해 생성된 시너지 효과라는 날개를 장착할 계획이다. 종으로, 횡으로 연결된 이런 예각의 종착점은 ‘반(反)이회창’ 단일 전선이다.
이후보와 관련해 장남 정연씨 병역 문제, 호화빌라, 기양건설과 한인옥씨의 10억 수수 의혹설 등 네거티브 현안도 조용히 동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을 긴장시키는 것은 ‘시너지’ 부분이다. 이후보의 L특보는 “시너지로 인한 상승 기간은 일주일”이라면서 “만약 그 이상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대단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11월25일 민주당 선대위에 참석한 당직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왼쪽부터 김상현 고문, 한화갑 대표).
진로가 막혀버린 후보단일화협의회(이하 후단협) 인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후보단일화 이후 정균환 원내총무, 박상천 최고위원 등 반노, 비노 세력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반노, 비노 세력의 행보 중단을 곧 친노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아무래도 색깔이 다른 데서 오는 갈등과 이질감을 밑바닥부터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후단협 소속 한 인사의 설명대로라면 후보단일화 작업이 조금만 늦었어도 이들의 ‘반란’은 현실화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후단협 소속 한 인사는 “역선택 문제 등으로 여론조사가 되풀이될 경우 일부 인사들이 정몽준 후보 지지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보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태세다. 낯선 영역이지만 포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김상현 김원기 고문의 깨우침이 노후보를 변화시킨 것이다. 정대철 선대위원장과 김원기 김상현 고문 등은 이미 노후보의 동의하에 반노, 비노 그룹을 포용하기 위한 물밑작업에 나섰다. 고개 숙인 이인제 의원에게도 활동 공간과 명분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의원은 최근까지 “노후보와는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해왔다. 노후보 측근들은 “그를 안아야 민주당이 진정된다”며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권한다. 고사 위기에 몰린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후보가 그런 이의원을 유혹한다. 충청권 표심을 끌어들일 구체적인 방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노후보로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는 상황이다.
노후보는 25일 정몽준 의원과 만나 공동선대위 구성에 합의했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풍에 정풍을 싣고 ‘곱셈의 행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된 셈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위력을 발휘한 DJP 공조와 유사한 양태의 선거 흐름이 생길 수도 있다. 양 진영은 역할 분담에 대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협상중이다. 노후보측은 국민통합21측이 제시한 분권형 대통령제 등을 통해 정의원측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 외부에 양측의 공동선대위를 구성할 시간과 비용이 충분치 않다. 따라서 민주당 선대위에 통합21의 선대위가 흡수되는 방안이 차선책으로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정의원이 민주당에서 열리는 회의를 주재하는 어색한 분위기를 피할 수 없다.
노후보의 정치적 고향은 부산이다. 태어난 곳은 경남 김해 진영이다. 민주당 후보지만 부산·경남에 확실한 연고를 갖고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충남이 고향이다. 노후보측은 부산·경남에 승부수를 걸 예정이다. 노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이 지역 유권자들의 기대치도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후보측은 선대위의 일부 기능을 이미 부산으로 이전, 교두보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단일후보로 거듭난 도박사 노무현과 대세론으로 무장한 이회창의 건곤일척 대회전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모든 국민들의 눈과 귀가 여기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