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의 잘생긴 회화나무는 1000원짜리 지폐에도 등장한다. 수령 400년에 키가 20m나 되는 노거수(老巨樹)다. 이 나무의 팔다리가 다 잘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부터 병색이 완연하더니 올해는 가지에 잎 하나 나지 않았다고 서원 사람들은 말했다. 말라죽은 것이다. 그나마 뿌리째 뽑지는 않고 밑동은 남긴 모양이다. 그것은 거목에 깃든 신령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퇴계 선생의 나무 사랑을 차마 잊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지하에서 퇴계 선생은 뭐라 하실까. 도산서원이 우거진 숲에 터를 잡은 데는 선생 나름의 심산이 있었다. 나무 가꾸는 것과 사람 기르는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재목’이니 ‘동량’이니 하는 말도 사람을 나무에 견준 비유다. 선생은 ‘산림학파’의 거두였고, 선생의 연시조 ‘도산십이곡’은 숲에서 탄생했다. 선생이 나무에 퍼준 사랑은 세상이 다 안다. 오죽하면 선생의 마지막 말씀이 “저 매화에 물 줘라”였을까. 물 주는 데 게을렀던 후학들은 회화나무 밑동에다 머리를 찧어야 할 판이다.
‘양지의 영광보다 음지의 미덕’ 그런 정치인이 그리워
서원 안에 하필 회화나무를 심은 속내도 심상치 않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선비를 상징한다고 알려졌다. 서양에서도 ‘중국학자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선비를 기르는 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라 탁견이다. 4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스러진 ‘유가(儒家)의 나무’가 딱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왕조가 저물면서 선비의 맥이 일찌감치 끊어진 것을 생각한다면, 도산서원 회화나무의 생애는 그나마 장한 셈이다.
유가에 회화나무가 있을진대 불가(佛家)에도 유서 깊은 나무가 없겠는가. 싯다르타가 성불한 곳이 보리수 아래였고 열반에 든 곳이 사라수 숲이었다니, 그 나무들이 불가의 상징이 될 법하다. 보리수와 사라수는 지혜와 생명의 나무로 불린다. 하지만 국내 사찰에서 이들 나무는 찾을 길 없다. 사찰 주변을 뒤덮은 수풀은 오히려 전나무들이다. 실제로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전나무 아홉 수가 전국의 사찰로 퍼져나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로써 전나무와 한국 불교의 관계가 상고(詳考)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사찰 숲의 우점종(優占種)이 전나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절집에 이르는 숲은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그곳에는 나무 나이 반(半) 천년에다 키 또한 20m를 넘기는 전나무들이 빼곡하다. 방문객은 누구라도 다 맞겠다는 듯 이 전나무들은 환호작약하며 도열해 있다. 한낮에도 숲 속은 어둑한 고요가 맴돈다. 그 길을 따라 걷노라면 신성(神性)의 서늘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숲으로 간 사상가 헨리 소로는 “숲에서 마시는 아침 공기는 만병통치 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나무가 뿜어내는 입김을 깊숙이 들이켜면 몸속의 오장육부는 기쁨으로 반색한다.
전나무의 덕성은 음지에서 인내하는 데 있다. 소나무와 비교할 때 전나무의 인내는 눈물겹다. 두 나무는 똑같이 ‘늘 푸른 바늘잎 큰 키 나무’에 속한다. 그러나 옛 문인들의 사랑은 소나무가 독차지했다. 우리나라 한시에 등장하는 소재 중에서 나무를 노래한 시가 20%라고 한다. 거기서 소나무는 단골 소재였고, 전나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세찬 바람을 맞고 서 있는 소나무는 의기에 찬 문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알맞다. 거기다 소나무는 수적으로도 우세하다.
그러나 소나무는 햇볕이 없으면 맥을 못 춘다. 빛이 있는 쪽으로 가지를 뻗는 소나무는 양수(陽樹)다. 저보다 키 큰 나무가 곁에 있으면 도통 자라지 못한다. 소나무에게 그늘은 독이다. 전나무는 어떤가. 그는 가지를 그늘로 뻗는 음수(陰樹)다. 춥고 축축한 곳에서 전나무는 그늘에 있기를 자청하면서 곧고 긴 줄기를 키워낸다. 나무들 사이라고 생존경쟁이 없을까.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영양분을 조금이라도 더 섭취하기 위해 그들끼리 치르는 다툼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몇 개월만 햇볕을 쬐지 못하면 휘청거리는 소나무는 전나무의 강단이 부럽기만 하다.
키 큰 나무의 그늘 밑에서 수십, 수백 년 견뎌내는 전나무는 자연상태에서 양수들이 다 자라고 난 뒤 비로소 기지개를 켠다. 음지에서 묵묵히 인내하는 미덕이 전나무의 진면목인 것이다. 숲 속에서 가장 늦게 자라면서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크게 자라는 그는 또한 양지의 영광보다 음지의 봉사를 택한다. 봉사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희생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양지의 명예를 갈망하지 않는 데 있다. 그렇게 보면 ‘불가의 나무’인 전나무는 ‘정가(政街)의 나무’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인다. 전나무의 덕성을 지닌 정치인이 그립다. 전나무 같은 지도자를 찾아 나는 기꺼이 내 한 표를 행사하련다.
지하에서 퇴계 선생은 뭐라 하실까. 도산서원이 우거진 숲에 터를 잡은 데는 선생 나름의 심산이 있었다. 나무 가꾸는 것과 사람 기르는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재목’이니 ‘동량’이니 하는 말도 사람을 나무에 견준 비유다. 선생은 ‘산림학파’의 거두였고, 선생의 연시조 ‘도산십이곡’은 숲에서 탄생했다. 선생이 나무에 퍼준 사랑은 세상이 다 안다. 오죽하면 선생의 마지막 말씀이 “저 매화에 물 줘라”였을까. 물 주는 데 게을렀던 후학들은 회화나무 밑동에다 머리를 찧어야 할 판이다.
‘양지의 영광보다 음지의 미덕’ 그런 정치인이 그리워
서원 안에 하필 회화나무를 심은 속내도 심상치 않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선비를 상징한다고 알려졌다. 서양에서도 ‘중국학자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선비를 기르는 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라 탁견이다. 4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스러진 ‘유가(儒家)의 나무’가 딱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왕조가 저물면서 선비의 맥이 일찌감치 끊어진 것을 생각한다면, 도산서원 회화나무의 생애는 그나마 장한 셈이다.
유가에 회화나무가 있을진대 불가(佛家)에도 유서 깊은 나무가 없겠는가. 싯다르타가 성불한 곳이 보리수 아래였고 열반에 든 곳이 사라수 숲이었다니, 그 나무들이 불가의 상징이 될 법하다. 보리수와 사라수는 지혜와 생명의 나무로 불린다. 하지만 국내 사찰에서 이들 나무는 찾을 길 없다. 사찰 주변을 뒤덮은 수풀은 오히려 전나무들이다. 실제로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전나무 아홉 수가 전국의 사찰로 퍼져나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로써 전나무와 한국 불교의 관계가 상고(詳考)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사찰 숲의 우점종(優占種)이 전나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절집에 이르는 숲은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그곳에는 나무 나이 반(半) 천년에다 키 또한 20m를 넘기는 전나무들이 빼곡하다. 방문객은 누구라도 다 맞겠다는 듯 이 전나무들은 환호작약하며 도열해 있다. 한낮에도 숲 속은 어둑한 고요가 맴돈다. 그 길을 따라 걷노라면 신성(神性)의 서늘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숲으로 간 사상가 헨리 소로는 “숲에서 마시는 아침 공기는 만병통치 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나무가 뿜어내는 입김을 깊숙이 들이켜면 몸속의 오장육부는 기쁨으로 반색한다.
전나무의 덕성은 음지에서 인내하는 데 있다. 소나무와 비교할 때 전나무의 인내는 눈물겹다. 두 나무는 똑같이 ‘늘 푸른 바늘잎 큰 키 나무’에 속한다. 그러나 옛 문인들의 사랑은 소나무가 독차지했다. 우리나라 한시에 등장하는 소재 중에서 나무를 노래한 시가 20%라고 한다. 거기서 소나무는 단골 소재였고, 전나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세찬 바람을 맞고 서 있는 소나무는 의기에 찬 문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알맞다. 거기다 소나무는 수적으로도 우세하다.
그러나 소나무는 햇볕이 없으면 맥을 못 춘다. 빛이 있는 쪽으로 가지를 뻗는 소나무는 양수(陽樹)다. 저보다 키 큰 나무가 곁에 있으면 도통 자라지 못한다. 소나무에게 그늘은 독이다. 전나무는 어떤가. 그는 가지를 그늘로 뻗는 음수(陰樹)다. 춥고 축축한 곳에서 전나무는 그늘에 있기를 자청하면서 곧고 긴 줄기를 키워낸다. 나무들 사이라고 생존경쟁이 없을까.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영양분을 조금이라도 더 섭취하기 위해 그들끼리 치르는 다툼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몇 개월만 햇볕을 쬐지 못하면 휘청거리는 소나무는 전나무의 강단이 부럽기만 하다.
키 큰 나무의 그늘 밑에서 수십, 수백 년 견뎌내는 전나무는 자연상태에서 양수들이 다 자라고 난 뒤 비로소 기지개를 켠다. 음지에서 묵묵히 인내하는 미덕이 전나무의 진면목인 것이다. 숲 속에서 가장 늦게 자라면서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크게 자라는 그는 또한 양지의 영광보다 음지의 봉사를 택한다. 봉사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희생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양지의 명예를 갈망하지 않는 데 있다. 그렇게 보면 ‘불가의 나무’인 전나무는 ‘정가(政街)의 나무’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인다. 전나무의 덕성을 지닌 정치인이 그립다. 전나무 같은 지도자를 찾아 나는 기꺼이 내 한 표를 행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