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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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광기… ‘현실과 꿈’ 넘나들다

  •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입력2002-11-27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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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사의 광기… ‘현실과 꿈’ 넘나들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영화 ‘해안선’은 소재나 주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무척이나 파격적이다. 일단 장동건이라는 톱스타를 기용한 것부터가 색다르다. 스타의 이미지보다는 캐릭터의 개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김감독이 이번에는 스타성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김감독은 이 영화에서 스타성마저 자기 식대로 비틀었다. 그에게 일찍이 영웅적 주인공은 없었다. 장동건은 ‘친구’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작에서 악역에 가까운 반영웅적 역할을 맡아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스타지만 ‘해안선’에선 극단으로 치닫는 역할을 맡았다. ‘친구’에서는 비록 야비한 중간 보스였을망정 낭만성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죽음에는 비장미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해안선’에선 그런 낭만성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철책으로 가로막힌 낯선 공간 속에는 비정한 기운만이 감돌기 때문이다.

    김감독의 영화들은 어느 정도 자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는 전작 ‘수취인불명’에서도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크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인물 군상들이 감독 주변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김감독 자신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해병대 출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안선’에서 묘사되고 있는 상황들을 곧이곧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영화적 허구의 극단을 추구한다.



    다만 ‘해안선’은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을 작품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분단의식을 반전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흔치 않은 영화다. 분단으로 인한 철책선이 남과 북, 즉 아군과 적군 사이에만 가로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남, 민과 군 사이에도 쳐져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한반도에 긴장이 존재하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결정적 동기였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김감독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 한 편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김감독은 이제껏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금단의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했지만, 아직은 꿈으로밖에 길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영화 바깥의 현실이 아직도 차갑기 때문에 그는 악몽을 꿀 수밖에 없고,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초반에 리얼리즘적인 냉정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돌연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전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감독의 자기 검열의 소산이다. 영화를 폄하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감독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누구보다도 군복무에 충실했던 민족주의자였기에 냉정한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꿈의 영역으로 도피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즉 현실과 꿈 사이에 또 하나의 철책선이 쳐진 셈이다.

    유달리 군인정신에 투철한 강한철 상병(장동건)은 복무중에 간첩 잡는 게 목표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강박관념으로 변하면서 화를 자초하고 만다. 민간인 출입 금지의 철책선 안쪽에서 정사를 벌이던 마을 청년을 간첩으로 오인 사살하게 된 것. 위험한 정사의 동반자였던 마을 처녀는 실성하여 성적 노리갯감으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상병은 포상휴가를 받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혀 서서히 미쳐간다. 그러다 동료들을 하나씩 사살하는 극한적 광기에 빠져든다. 아!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냉전적 시각으로 대하면 ‘해안선’은 무척이나 불편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의 군인들이 적 대신 같은 아군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장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이 오히려 불온함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액션의 과잉은 차가운 현실을 팬터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감독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팬터지 속에서 잠시 몸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그 바깥의 엄연한 현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영화 ‘해안선’은 또한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적 세계의 정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것은 그의 장기이자 단점이다. 남성적 정서의 과도한 발산 속에서 날것 그대로의 신선한 영상체험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 그 도가 지나쳐 여성 평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감독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이 수평주의자임을 강조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비판은 부당하다는 것. 이제 관객들이 직접 확인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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