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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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4강 겉으론 ‘환영’ 속으론 ‘찜찜’

미·일·중·러 한반도 정세 긍정 평가…영향력 지속 행사 계산법 골몰

  • 입력2005-06-16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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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4강 겉으론 ‘환영’ 속으론 ‘찜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8월14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온 세계 100여개국의 500여 외교사절에게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이 성공한 사례로 꼽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주창자인 김대통령은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정통성을 갖고 있어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북한에 대한 과감한 포용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매우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왔다”며 “한국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발언은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표명해온 ‘환영’과 ‘기대’의 입장을 거듭 확인한 가장 최근의 사례다.

    그러나 이같은 외교적 수사의 이면에는 갑작스런 남북대화 재개와 이로 인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반도의 화해협력 무드 속에서 미국의 역할이 위축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지는 7월28일자에서 북한이 올해 들어 활발한 외교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이같은 변화는 동북아 지역의 미군 감축과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계획 철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포스트는 또 이날 방콕에서 열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북한 백남순 외무상 간의 사상 첫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미국이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이끌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진전을 따라잡으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올 봄 중국 방문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등으로 한반도에 대한 중-러의 영향력은 한층 증가하고 있다. 또 북-중-러는 미국의 NMD 계획에 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등 3국간 공조가 복원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이같은 상황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무부 실무자들이 미국이 소외된 채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다소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국익 차원에서 볼 때는 남북관계 개선이 미국의 동북아 구상에 도움이 되는 만큼 대 한반도 정책에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될 4자회담의 재개 등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려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물론 11월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민주당 중 어느쪽이 승리하는지에 따라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수는 있으나 기조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리라는 관측이 많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북한분석관은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한이 해결해야지 미국이 앞장설 수 없는 일”이라며 “결국 남북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6월11일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회담은 무산될 것이다. 내일이 되면 북한이 또 어떤 이유를 대서든지 회담을 연기할 게 틀림없다.”그로부터 두 달여 만인 8월21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일본 프레스클럽의 연사로 나섰다. 일본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남북화해가 진전되면 북한은 망하는 게 아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인가.” 8월23일 한국민단이 주최한 연구회가 열렸다.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일본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논설위원이 말했다. “한국은 북한이 망할 것을 전제로 남북협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8월29일 최상용 주일대사가 외신기자클럽 초청 오찬연설을 한 뒤 질문을 받았다. “남북한은 왜 화해를 하려고 하나”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는 것은 잘못 아닌가.”

    요즘 일본의 신문 방송에서 남북관계는 최대의 뉴스거리다. 그러나 관심이 높은 데 비해 균형감각은 부족하다. 이는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는 주요한 포인트다. 일본은 남북화해에 대해 회의적이다. 북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핵개발 의혹, 미사일 발사, 공작선 침투 등으로 분위기가 나쁘다.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은 이런 민심을 무시하지 못한다. 소외감도 한몫 한다. 한반도 주변 4강 중에서 일본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가장 약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쌀을 주면서까지 북-일 교섭에 매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이 기존 4자회담을 일본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도 ‘보험’을 들어두자는 것이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상은 8월30일 중국에서 또다시 6자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도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경제력이다. 북한경제를 재건하는 데 한국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북한도 속으로는 일본의 경제지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돈만 주고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다.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에 참여했던 것처럼. 그래서 일본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일본은 남북화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은 또 다른 문제다. 일본의 영향력이 배제되는 식의 통일은 원치 않는다. 통일이 되더라도 주변 4강이 여전히 힘의 균형을 이루는 구도를 선호한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 증대는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속내다. 한국에 필요한 대일 외교전략은 정치력보다는 경제력을 사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북일교섭을 측면 지원해 일본이 북한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을 통한 간접투자를 권장하는 것이다. 한국이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남북관계에 홀려 일본을 홀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중국-러시아보다 실질적으로 남북화해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남북화해시대를 맞는 중국의 입장은 ‘대환영’이다.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6·15 선언을 발표하자 이례적으로 외교부 성명을 통해 이를 환영했다. 대변인 성명으로 입장을 밝혀오던 관례와는 달리 한 단계 격을 높였다. 이같은 환영 성명은 중국 정부 수립 후 두번째였다는 게 중국 외교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한반도 긴장완화는 중국으로서는 오랜 두통거리가 해소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비중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중국 외교 관계자들의 평가다.

    남북간의 오랜 대립은 중국의 대한반도 외교를 ‘기형’으로 만들었다. 중국으로서는 남북한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감싸기도 비난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황장엽 망명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황씨는 관례를 깨고 결국 주중 대사관을 통한 ‘망명 1호’를 기록했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미지는 악화되고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다. 한국 또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남북한 쌍방이 대화를 통해 자주-평화적으로 해결할 것’과 ‘중국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해 왔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전격 방문한 것이나 그 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는 이같은 중국의 역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최근 중국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금강산 및 개성 경제특구 개방 결정도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조언으로 성사되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당초 김위원장은 신의주를 개방할 생각이었으나, 주총리는 “경공업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노리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 휴전선 부근에 특구를 만들어 한국과 함께 세계로 나가라. 한국은 기술이 있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및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주변지역, 특히 한반도의 안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남북 긴장은 동북아지역에서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이미 일본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을 구실로 군비증강이 급류를 타기 시작했으며, 미-일 동맹도 강화되는 추세였다. 이같은 주변의 움직임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다. 나아가 한국이 미-일동맹에 적극적이 되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같은 시점에서 성사된 남북한의 화해는 미-일동맹 강화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한국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더 나아가 중국 전문가들은 향후 통일된 한반도에 반중국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않도록 하는 장기적인 ‘예방주사’를 놓은 것으로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화해는 중국 내부에서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때 ‘인민일보’ 인터넷 토론사이트인 ‘강국논단’에서는 중국인들의 다양한 관심과 시각들이 쏟아졌다. “남북이 화해하면 한국이 북한에 투자해 대 중국 투자는 줄어들 것 아닌가” “남북의 힘이 강해지면 중국에 위협이 되는 것 아닌가” 등등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남북화해시대를 보는 중국의 시각은 이처럼 겉으로는 환영 일색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견제의 눈초리도 담겨 있다.



    “한반도 주변 4강 중에서 러시아는 최근 전개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입장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의 한국-몽골과장인 유리 바닌 교수의 분석이다. 바닌 교수는 지난 6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지만 이를 지켜보는 주변 4강의 입장은 복잡하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은 예상 못할 정도로 빠른 변화에 당혹해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북한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중국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 속에서 ‘북한 카드’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르다.”

    이러한 분석은 러시아의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최근 한반도의 변화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관심을 높이기 시작한 것과 맞아떨어졌다. 푸틴은 지난 10여년 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면서 잃어버린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이익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여러 분야에서 남북한의 협력이 이뤄지면 러시아에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의선과 경원선의 복원에 주목하고 있다. 남북한이 철도로 이어지면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는 ‘철(鐵)의 실크로드’가 된다. 러시아 철도부의 한 관계자는 “궤도나 기관차의 동력 차이(TSR는 전철) 같은 ‘기술적 문제’는 장애가 될 수 없으며 러시아가 앞장서 이를 해결할 준비도 되어 있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극동 러시아의 안보가 보장된다고 보고 있다.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이 지역에 군사력을 강화하거나 군사적으로 개입할 처지가 못 되는 러시아로서는 무력분쟁에 ‘반대’다. 미국이 추진하는 NMD에 완강히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한편으로 “극동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7월 중국과 북한을 방문하고 블라고베시첸스크에 들른 푸틴은 “정신차리지 않으면 수십년 안에 이 지역 주민들이 일어 중국어 한국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1930년대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한인들이 최근 연해주 지역으로 돌아오려는 움직임이다. 한인들은 국내 종교단체 등의 지원으로 우수리스크 등 여섯 군데에 정착촌을 세웠거나 추진 중이다. 지난해 140여 가구가 이주하는 등 이미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한인들이 3000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러시아가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강경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내에서도 카네기센터 모스크바 분소의 드미트리 트레닌 부소장같이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 진출을 유도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한인동포의 정착을 돕고 있는 한 한국인 선교사는 “한인 정착촌 문제는 러시아측의 불필요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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