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과 한화갑. 두 사람은 40년 가까이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해온 동교동계의 핵심인물이다. 부부도 함께하기 어려운 오랜 세월을 두 사람은 ‘형님’과 ‘아우’로서 같은 길을 걸어왔다. 두 사람은 김대통령의 앞에 놓인 고난과 가시밭길도 함께 걸었고, 97년 김대통령 당선의 영광도 함께 누렸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각자에게 예비된 다른 길을 걷기 위해 여장을 챙기고 있다. 8월30일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두 사람이 각기 걸어야 할 갈림길의 초입쯤으로 보면 정확할 것 같다. 한 사람은 지명직으로, 한 사람은 선출직 1위로 함께 최고위원이 됐지만 두 사람의 앞에 놓인 길은 상당히 다르다.
97년 한보사건 이후 3년 만에 당 중심으로 복귀한 권 최고위원은 ‘킹 메이커’로서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 뛰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김대통령의 ‘분신’이다. ‘분신’에겐 자신의 운명이 없다. ‘몸체’의 명운에 조용히 동행할 뿐이다. 권위원 스스로도 “나는 김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DJ 분신-계승자, 결코 뗄 수 없는 관계
그의 정치 시계는 김대통령이 퇴임하는 2003년 2월25일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 연령으로도 그렇다. 그의 나이 올해 일흔. 3년 뒤면 73세가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임무가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여당 후보를 발굴해 정권재창출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한 최고위원의 길은 다르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60년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독자적인 세력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합법적인 계승자로서 작게는 당권, 크게는 대권까지 꿈을 키워가야 할 상황이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2위인 이인제 후보와 큰 표 차로 1위로 당선된 것은 정치인 한화갑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8월30일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한위원은 ‘영원한 장형’이라고 불러온 권위원을 향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공격했다. 한위원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 권위원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비판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누가 봐도 경선에서 ‘이인제-안동선-정대철’을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던 권위원을 지칭한 것이었다. 한위원측은 한 발 더 나가 ‘보이지 않는 손’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문건을 작성해 공개하려다 막판에 철회했다.
하지만 권위원측은 이인제 후보 지원설에 대해 펄쩍 뛰었다. 오히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아랫사람들 말만 듣고 ‘이인제 지원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몹시 서운해했다. 권위원측은 한위원측의 공세를 ‘음해’라고 규정하고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확전(擴戰)은 피하자’는 쪽으로 최종 정리했다.
두 사람은 ‘보완’과 ‘대체’라는 두 가지 모순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대체의 관계에 있는 듯하지만 보완관계가 없으면 대체가 불가능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대체’의 의미는 권위원이 이끌어온 동교동계의 고삐를 한위원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다.
권위원으로서도 ‘김대통령 이후’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고 당내에서 일정 부분 ‘대체’의 기류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대통령이 동교동계의 대표로 한위원을 경선에 내보낸 것이나, 문희상 설훈 배기선 등 동교동계 의원들은 물론 김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까지 막판에 한위원 캠프에 가담한 것은 동교동계의 무게중심이 권위원에서 한위원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권위원의 도움, 즉 상호 ‘보완적 관계’가 무시된다면 한위원의 승계 작업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위원의 입지는 아직 김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위원은 김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소통 채널을 마련하지 못한 듯하다.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권위원이나 김옥두 사무총장,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정도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완관계로 가는 데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한위원의 야심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위원의 지향점이 ‘킹’과 ‘킹 메이커’ 중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권위원은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호남 출신 후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위원이 지금 당장 차기대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긴 힘들지만 당세(黨勢)가 한위원 쪽으로 쏠릴 경우 그 역시 크고 작은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만일 한위원이 대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낼 경우 권위원은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비호남 후보 쪽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권위원이 이인제 최고위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온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권위원 본인이 ‘사심’(私心)을 갖는 경우다. 동교동 내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한위원에 대해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드러낼 경우 오히려 권위원이 수세에 몰릴 수 있고, 동교동계는 급속한 분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양갑(兩甲) 갈등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의 관계나 역할에 일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김대통령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사람 관계의 최종 심판자는 김대통령이다. 한위원을 동교동계 대표로 경선에 내보낸 것도 김대통령이고, 이인제 위원이 당에 착근할 수 있도록 권위원에게 울타리역을 맡긴 것도 김대통령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두 사람의 관계는 김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달라질 수 있다”며 “분란이니, ‘양갑의 갈등’이니 하는 것은 순간의 바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달리 적어도 김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호남에 상당 기간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김대통령의 가신 출신에, 호남 출신인 두 사람이 김대통령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각자에게 예비된 다른 길을 걷기 위해 여장을 챙기고 있다. 8월30일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두 사람이 각기 걸어야 할 갈림길의 초입쯤으로 보면 정확할 것 같다. 한 사람은 지명직으로, 한 사람은 선출직 1위로 함께 최고위원이 됐지만 두 사람의 앞에 놓인 길은 상당히 다르다.
97년 한보사건 이후 3년 만에 당 중심으로 복귀한 권 최고위원은 ‘킹 메이커’로서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 뛰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김대통령의 ‘분신’이다. ‘분신’에겐 자신의 운명이 없다. ‘몸체’의 명운에 조용히 동행할 뿐이다. 권위원 스스로도 “나는 김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DJ 분신-계승자, 결코 뗄 수 없는 관계
그의 정치 시계는 김대통령이 퇴임하는 2003년 2월25일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 연령으로도 그렇다. 그의 나이 올해 일흔. 3년 뒤면 73세가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임무가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여당 후보를 발굴해 정권재창출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한 최고위원의 길은 다르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60년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독자적인 세력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합법적인 계승자로서 작게는 당권, 크게는 대권까지 꿈을 키워가야 할 상황이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2위인 이인제 후보와 큰 표 차로 1위로 당선된 것은 정치인 한화갑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8월30일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한위원은 ‘영원한 장형’이라고 불러온 권위원을 향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공격했다. 한위원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 권위원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비판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누가 봐도 경선에서 ‘이인제-안동선-정대철’을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던 권위원을 지칭한 것이었다. 한위원측은 한 발 더 나가 ‘보이지 않는 손’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문건을 작성해 공개하려다 막판에 철회했다.
하지만 권위원측은 이인제 후보 지원설에 대해 펄쩍 뛰었다. 오히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아랫사람들 말만 듣고 ‘이인제 지원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몹시 서운해했다. 권위원측은 한위원측의 공세를 ‘음해’라고 규정하고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확전(擴戰)은 피하자’는 쪽으로 최종 정리했다.
두 사람은 ‘보완’과 ‘대체’라는 두 가지 모순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대체의 관계에 있는 듯하지만 보완관계가 없으면 대체가 불가능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대체’의 의미는 권위원이 이끌어온 동교동계의 고삐를 한위원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다.
권위원으로서도 ‘김대통령 이후’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고 당내에서 일정 부분 ‘대체’의 기류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대통령이 동교동계의 대표로 한위원을 경선에 내보낸 것이나, 문희상 설훈 배기선 등 동교동계 의원들은 물론 김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까지 막판에 한위원 캠프에 가담한 것은 동교동계의 무게중심이 권위원에서 한위원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권위원의 도움, 즉 상호 ‘보완적 관계’가 무시된다면 한위원의 승계 작업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위원의 입지는 아직 김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위원은 김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소통 채널을 마련하지 못한 듯하다.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권위원이나 김옥두 사무총장,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정도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완관계로 가는 데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한위원의 야심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위원의 지향점이 ‘킹’과 ‘킹 메이커’ 중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권위원은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호남 출신 후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위원이 지금 당장 차기대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긴 힘들지만 당세(黨勢)가 한위원 쪽으로 쏠릴 경우 그 역시 크고 작은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만일 한위원이 대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낼 경우 권위원은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비호남 후보 쪽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권위원이 이인제 최고위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온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권위원 본인이 ‘사심’(私心)을 갖는 경우다. 동교동 내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한위원에 대해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드러낼 경우 오히려 권위원이 수세에 몰릴 수 있고, 동교동계는 급속한 분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양갑(兩甲) 갈등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의 관계나 역할에 일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김대통령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사람 관계의 최종 심판자는 김대통령이다. 한위원을 동교동계 대표로 경선에 내보낸 것도 김대통령이고, 이인제 위원이 당에 착근할 수 있도록 권위원에게 울타리역을 맡긴 것도 김대통령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두 사람의 관계는 김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달라질 수 있다”며 “분란이니, ‘양갑의 갈등’이니 하는 것은 순간의 바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달리 적어도 김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호남에 상당 기간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김대통령의 가신 출신에, 호남 출신인 두 사람이 김대통령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