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착수 한달을 넘긴 옷로비의혹사건 특별검사팀은 새로운 물증을 잇따라 확보하며 난마처럼 얽혔던 사건의 진실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가 드러날수록 특검팀이 밝혀내야 할 의문점도 추가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
특검팀은 연씨가 호피무늬 반코트가 전달된 날짜를 12월19일이 아닌 12월26일로 해달라고 구체적인 압력을 넣었는지를 우선 밝혀내야 한다.
지난 22일 특검팀에 출두한 배정숙씨측은 ‘사직동 최초 보고서를 연정희씨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폭로했다. 연씨가 ‘세 여인의 입맞추기’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정일순 라스포사사장도 이미 자신의 구속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청문회를 앞두고 연씨가 코트 전달 날짜를 19일이 아닌 26일로 해달라고 요구해 허위 증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조사 전 강인덕 전 통일원장관의 부인 배정숙씨와 통화한 김정길 정무수석의 부인 이은혜씨 역시 ‘(연씨를 포함한) 언니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나도 따를 수밖에 없다’ 고 진술한 바 있다. 또 라스포사 정일순사장의 남편인 정환상씨도 연씨가 모피코트를 보유하고 있었던 기간을 줄여주고 연씨를 보호하기 위해 매출 장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런 일련의 증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배정숙-연정희-정일순씨 등 3인의 ‘입맞추기’의 한가운데에 연정희씨가 놓이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입맞추기를 누가 주도했느냐는 것이다.
특검팀이 연씨에 대해 위증 교사 혐의를 적용하려는 것은 연씨가 이 모든 조작극을 주도한 것이라는 시각을 깔고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씨의 남편 정환상씨는 장부 조작에 대해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연씨도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연씨의 주도 사실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건 유출 경로, 사정체계 뒤흔들 뇌관
또 하나의 문제는 배정숙씨측이 공개한 세 종류의 문건을 사직동팀에서 누가 어떤 경로로 연정희씨측에 전해줬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배씨의 사위집에서 발견된 사직동 문건에 적혀 있는 ‘친한 기자로부터’라는 메모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연씨측이 이 사람으로부터 문건을 직접 받았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경유해서 받았는지가 의문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한 사실이 밝혀지면 사직동팀에서 문건이 어떻게 유출되어 연씨측으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를 통해서 이 문건이 유출되었든 청와대 하명 사건만을 조사하는 사직동팀의 비공식 보고서가 조사를 마친지 이틀만에 조사 대상자의 손에 그대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사정 체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배정숙-연정희-정일순씨간의 위증 교사 및 압력 여부는 옷로비의혹사건에 국한된 것이지만 이 문건의 유통 경로를 둘러싼 논쟁은 일개 사건의 법위를 훨씬 뛰어넘어 국가 사정 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숨은 뇌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