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왼쪽)과 극장 로비.
도착한 날 저녁 신주쿠에 위치한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쿄 필)의 특별공연이, 그다음 날 오후에는 바로 옆 신국립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두 공연 지휘는 모두 프랑스 지휘자 베르트랑 드 비이가 맡았는데, 드 비이는 그 직후 내한해 KBS 교향악단의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두 공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6월 11일 탄생 150주년을 맞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R.) 슈트라우스가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도쿄 필은 R. 슈트라우스의 대작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고, 신국립극장은 그의 성숙기 오페라 ‘아라벨라’를 무대에 올렸다. ‘R. 슈트라우스 기념해’에 더없이 어울리는 공연들이었다 하겠다.
먼저 도쿄 필 공연은 프로그램 구성부터 흥미로웠다. 1부에서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연주한 다음, 2부에서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다. 19세기 교향악의 역사를 관통하는 ‘영웅’이라는 주제를 부각한 셈이다.
드 비이는 명쾌하기 그지없는 지휘 동작으로 두 악곡의 세부와 전체를 두루 아우른, 세밀하고도 다이내믹하며 균형감이 탁월한 해석을 선보였다. 도쿄 필은 R. 슈트라우스 음악에 어울리는 사운드의 세련미나 화려함은 부족했지만, 잘 짜인 앙상블로 견실한 연주를 들려줬다. 일본 악단다운 고집스러움마저 엿볼 수 있었던 흥미롭고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일본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아울러 유럽 정상급 오페라 극장들에서 활약해온 드 비이의 노련한 리드도 명불허전이었다. 무대 연출은 지난해 내한해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파르지팔’을 연출하기도 했던 프랑스의 필립 아흘로가 맡았다. 그 특유의 선명한 색감을 앞세운 화려한 무대와 복잡다단한 부수적 장치들이 시종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연들은 만족스러웠지만, 왠지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어지간한 R. 슈트라우스 애호가가 아니라면 접근하기도 어려운 ‘아라벨라’ 같은 작품을 상설 오페라 극장의 정규 레퍼토리로 편성하는 일본의 저력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기념해임에도 작곡가의 대표작 중 대표작인 ‘장미의 기사’는 엄두도 못 내고, 엉뚱한 공연으로 비난을 샀던 모 오페라단의 ‘살로메’에 쓴 입맛을 다셔야 했던 우리 공연계 현실이 아팠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