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 흥행보증수표로 통하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왼쪽)가 12월 18일 내한공연에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슈만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아DB
예르비는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지휘자 수업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활발한 리코딩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지휘자 네메 예르비. 과거 예르비는 ‘네메의 아들’로 통했으나, 이제는 아버지의 명성과 입지를 훌쩍 넘어 국제무대에서 가장 각광받는 지휘자 가운데 한 명으로 등극했다.
젊은 시절 예르비는 스웨덴 말뫼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을 이끌며 주로 북유럽을 기반으로 경력을 쌓았다.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으면서부터. 그는 10년간 이 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며 미국 굴지의 악단으로 격상시켰다.
이후 그의 전성시대가 열렸고, 한때 그는 신시내티 심포니 외에도 DKPB,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파리 오케스트라 등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진 교향악단 4개를 동시에 이끌기도 했다. 게다가 에스토니아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고문까지 겸했으니 정말 대단한 정력가라고 할 수밖에.
다만 최근 들어 지나치게 분망해 보였던 보직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신시내티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이미 물러났고, 파리에도 내년 여름까지만 머물 예정이다. 그 대신 올해부터 일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부임해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듯한 모습이다. 유럽에서의 포스트는 DKPB, 오직 한 곳만 남겨뒀다.
12월 18일 예르비와 DKPB가 세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2013년 이들 콤비의 첫 번째 내한공연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이틀간 베토벤 교향곡을 선보였는데, 첫째 날과 둘째 날 서로 상반된 연주 스타일을 구사하면서 관객들을 경탄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것. 브람스 교향곡과 협주곡을 들고 왔던 두 번째 내한공연도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역시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다.
이번 내한공연 프로그램은 슈만 일색이다. 이들은 3년 전 슈만 교향곡(전 4곡) 음반과 영상물을 내놓아 호평받은 바 있는데, 이번 공연은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메인 레퍼토리는 슈만 교향곡 중 가장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제4번 d단조’이고, 얼마 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Accentus)을 발매해 조성진, 임동혁과 함께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김선욱이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슈만이 아내 클라라를 위해 작곡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르비와 DKPB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변화무쌍한 연주가 슈만의 뜨거운 열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해줄 것으로 예상되며, 일찍부터 슈만 연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김선욱의 피아노 연주도 각별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