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유명한 노장 지휘자 오코 카무와 ‘시벨리우스 연주의 명가’로 이름난 핀란드 굴지의 악단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왼쪽). 핀란드의 중견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와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는 세밀하고 역동적인 시벨리우스 연주를 선보였다. 사진 제공 · 황장원
그때 들었던 음악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시험을 치르고 서울 종로에 나가서 산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곡이었다. 시벨리우스와 첫 만남은 정경화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통해서였지만,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바로 그 음반을 통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바로 12월 8일이 시벨리우스의 150번째 생일이다.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일본 도쿄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는 오코 카무가 이끄는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시벨리우스 사이클이 진행됐다. 카무는 1969년 ‘제1회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력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노장 지휘자다. 북유럽을 주 무대로 활약해온 그는 ‘시벨리우스 연주의 명가’로 이름난 핀란드 굴지의 악단 라티 심포니를 2011년부터 이끌어오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이 악단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음반(BIS)을 내기도 했다. 이번 도쿄 공연은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핀란드 지방도시 라티에서 열렸던 ‘시벨리우스 페스티벌’ 가운데 교향곡(전7곡)과 협주곡만을 추린 것이었다.
필자는 둘째 날인 11월 27일 공연을 봤는데, 프로그램은 ‘교향곡 3번’과 ‘바이올린 협주곡’(1부), ‘교향곡 4번’(2부)이었다. ‘교향곡 3번’에서 카무의 지휘는 무척 꼼꼼하면서도 호쾌했고,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라티 심포니는 평소 필자가 짐작만 해오던 ‘핀란드의 음향’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들려줬다. 그것은 지난해 두 차례 방문했던 헬싱키와 그 근교의 풍경을 선명하게 환기케 했다. ‘교향곡 4번’은 시벨리우스의 최고 걸작에 속하면서도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데, 필자는 한 번도 실연으로 접해본 적이 없는 곡이어서 유독 기대가 컸다. 카무와 라티 심포니는 세밀하고 유연한 흐름에 깊고 뜨거운 공감이 실린 연주로 필자에게 작품의 이해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귀중한 체험을 안겨줬다.
카무와 라티 심포니가 하루 쉬었던 그다음 날에는 도쿄예술극장으로 향했다. 얼마 전 내한해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을 지휘한 바 있는 오스모 벤스케가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를 지휘하는 시벨리우스 공연이 있었기 때문. 핀란드의 중견 지휘자 벤스케는 라티 심포니를 세계적인 악단으로 키워낸 장본인이고, 현재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맡고 있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 역시 시벨리우스 일색으로, ‘카렐리아 모음곡’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1번’ 등이었다. 서울시향과의 베토벤 ‘교향곡 5번’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벤스케의 지휘는 장기인 시벨리우스 곡들에서도 세밀하고 선명하면서 활기차고 역동적이었다. 다만 그에 대한 악단의 반응도는 서울시향의 그것과 비교할 때 다소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