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 ‘Rabbit’, 104.1 x 48.3 x 30.5cm, 1986.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거리가 번쩍번쩍합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마련해 꼬마전구를 감고, 반짝이는 장식을 달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종교의식에 쓰는 제구가 광택 나는 귀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은 신성한 영적 깨달음을 상징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중세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시 광택 나는 물건에 집착했죠.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현대 상업주의에 맞게 재해석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제프 쿤스(54)입니다. 2007년 뉴욕 메이시백화점 근처 상공을 날던 토끼를 기억합니까? 공중에 둥둥 떠다니던 이 토끼는 마일러 풍선에 헬륨가스를 주입해 만들었는데요. 제프 쿤스는 어린 시절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던 마일러 풍선을 이용해 토끼는 물론, 강아지, 튤립, 사파이어 반지까지 만들어냅니다. 모든 대상이 일상에서 흔히 보는 오브제이고 풍선의 운명이 그러하듯 부풀 대로 부풀어져, 갖고 놀거나 착용하는 등 오브제의 원래 속성을 잃어버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가 만든 오브제들은 마일러 풍선의 형태를 띠지만, 실제로는 고광택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뤄졌다는 사실이죠. 깃털처럼 가볍고 터지기 쉬운 풍선이 복사기만큼 무겁고 견고한 재질로 바뀌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는 더 자극적이고 철저한 쾌락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보석가게 앞에서, 혹은 크롬으로 도금된 갓 뽑은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갖는 심정으로 그의 작품 앞에 서게 된다는 거죠. 종교의식이 수행되던 성당이 상업주의라는 ‘물신’을 섬기는, 현대라는 무대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눈부신 표면에 비친 ‘관객 자신’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1980년 그는 진공청소기를 강화유리로 만든 상자에 잘 모셔두고 조명까지 설치한 뒤 ‘작품’이라 선언했는데요. 먼지 빨아들이는 기능의 진공청소기를,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강화유리 상자에 밀폐한 후 ‘예술품’이라고 주장한 거죠. 이로써 그는 ‘상업주의와 매스미디어의 결합’이라는 팝아트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작품이 상상을 초월한 가격으로 팔린 것은 물론이고요. 당근을 먹는 이 토끼(사진)는 지난해 한 경매에서 8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00억원에 낙찰됐습니다. 이쯤 되면 “돈 잘 버는 비즈니스야말로 진짜 최고의 예술”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이해가 되겠죠? 작가가 되기 전 주식중개인이었던 제프 쿤스는 대중의 기호와 하이아트의 경계를 흐리며 ‘무엇이 오늘날 예술을 만드는가’의 핵심을 잘 짚어내, 스스로 예술계 ‘초우량주’로 등극했습니다. 2010년 1월17일까지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리는 ‘Pop Life’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New Exhibition
| 존 발데사리 & 수잔 더져스 특별전 존 발데사리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국 개념미술 선구자로 사진, 회화, 영화,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시각과 인식의 문제를 건드려왔다. 영화와 광고 이미지에서 모티프를 얻은 그의 작업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미학적 성과도 이뤄냈다. 수잔 더져스는 카메라 없이 사진을 찍는 ‘포토그램’으로 자신의 우주관을 표출해내는 영국 작가. 이번 전시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사람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2월19일까지/ 조현화랑/ 02-3443-6364 표지화여담展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 김용준, 이규상, 이중섭, 장욱진, 백영수 등 한국 근대화가가 그린 책의 표지와 삽화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또한 북아티스트 김나래가 소장한 최근의 북프레스 작업 100여 점도 소개된다. 2010년 1월17일까지/ 환기미술관/ 02-391-7701제프 쿤스, ‘Rabbit’, 104.1 x 48.3 x 30.5cm, 198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