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다. 만만한 팀도 없지만, 못해볼 팀도 없다. 얼마나 철저하게 전략을 세우고 준비하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의 키워드는 상대의 약점을 꿰뚫는 ‘맞춤형 전략’이다. 이는 누구보다도 허정무 감독이 잘 알고 있다. 그는 조 추첨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팀도 없지만, 못해볼 팀도 없다. 남은 6개월 동안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전략으로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정무호’가 가다듬을 맞춤형 전략을 미리 들여다봤다.
# 그리스, 고집불통 레하겔을 읽어라
독일 출신의 ‘고집불통’ 오토 레하겔(71) 감독을 이해해야 그리스 축구를 알 수 있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오른 1994년 미국월드컵 때 단 1골도 못 넣고 10골을 내준 뒤 탈락한 그리스는 유럽 축구의 ‘동네북’으로 불리던 최약체였다.
그러나 2001년 레하겔 감독이 부임한 이후 성큼성큼 내딛더니 유로2004(200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포르투갈, 체코, 프랑스 등을 연거푸 꺾고 돌풍 우승을 거머쥐었다. 수비 위주의 전술에다 역습 한 방에 의존하는 매력 없는 축구지만, 레하겔의 전법에 걸리면 세계 강호들도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측면 공격에 이은 헤딩 역습이 얼마나 매서운지 알면서도 당한다. 그는 “이기는 게 가장 현대적인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레하겔 축구의 변치 않는 패턴이 있다. 그는 공격 때 반드시 키 크고 강한 2명의 공격수를 중앙 수비와 경쟁시킨다. 사마라스(셀틱·193cm), 카리스테아스(뉘른베르크·191cm) 등이 모두 장신이다. 중앙 수비수 키르지아코스(리버풀·193cm)와 파파도풀로스(올림피아코스·188cm)의 세트피스 가담도 위협적이다. 힘과 높이에서 밀리지 않고 중앙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레하겔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유행한 리베로 시스템(일자 수비라인 뒤에 한 명의 수비수를 더 배치하는 전술)을 여전히 애용한다. 그리스의 리베로를 무너뜨리려면 포스트플레이를 펼칠 타깃맨도 중요하지만, 2선에서 개인 기술로 돌파할 수 있는 박지성(맨유), 박주영(모나코), 이청용(볼턴)의 역할이 크다. 스페인은 유로2008 때 빠르고 정확한 2대 1 패스로 그리스를 4대 1로 깼다. 허정무팀이 좀더 세밀한 패스워크를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결국 그리스의 기계적인 축구를 깨려면 관운장의 ‘청룡언월도’처럼 상대를 일거에 무너뜨릴 묵직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