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지음/ 보림 펴냄/ 96쪽/ 1만2800원
이 시는 그 자취의 하나다. 전쟁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진을 보면 누구나 한 편의 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이 철모의 주인공은 번쩍이는 무기의 공격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인을 잃은 철모는 썩어가면서도 꽃을 피운 것이다.
천 마디 말보다도 이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의 상흔을, 그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강하게 일깨운다. 인간의 눈을 자극하는 임팩트는 이렇게 강렬한 것이다. 그래서 사진작가 김아타는 “현전(現前)의 매체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사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이다.
책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을 비롯해 ‘울지 마, 꽃들아-최병관 선생님이 들려주는 DMZ 이야기’에는 서쪽 임진강 어귀에서 동해 모래밭까지 이어진 249.4km의 산과 들을 남북으로 나눈 철조망, 끊어진 철길, 사라진 마을, 널린 총탄, 이름 없는 무덤 등 가슴 아픈 전쟁의 상흔이 담겨 있다.
또 산등성이 곳곳 초소에 불을 밝히고 서로를 감시하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긴장감, 철조망에 가로막히고 지뢰에 뒤덮인 채 50년 넘게 사람 발길이 끊긴 그곳에 철 따라 어김없이 찾아드는 자연의 숨소리가 들리는 60여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아이들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며 생각을 적어보라면 어떨까. 어떤 자료보다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최병관은 1997년부터 2년 가까이 국방부 위촉 DMZ 사진작가로 선정돼 DMZ를 세 차례나 왕복하며 10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은 사진집 ‘휴전선 155마일 최병관의 450일간 대장정’으로 출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책은 한 출판기획자가 작가를 설득해 어린이 책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비주얼 시대인 오늘날 사진은 피사체를 단순히 복제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인간의 관념마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과거에는 회화만이 할 수 있던 영역이었다. 나는 이 사진집을 보면서 구형 카메라로 찍은 단순한 사진들이 아니라 인간의 수많은 관념을 표현한 회화작품이라 생각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제각기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사진집이 아니라 그림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디지털 기술이 벌이는 ‘관념의 유희’의 흔적이 아닌 역사의 현장이 맨얼굴로 드러나는 것들이다. 역사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그 모습은 펄펄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다름없었다. 유서를 써놓고 떠날 만큼 목숨을 건 2년간의 대장정 끝에 생명의 숨결마저 오롯이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지뢰를 밟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적의 총구를 보고 섬뜩하기도 했고 지프차가 굴러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이 나온 뒤 나는 난생처음 출판기념회를 핑계로 DMZ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그곳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대성동초교에서 학생들의 독후감도 들어볼 수 있었다.
불과 70m 앞에 북한 초소가 있고, 개성공단이 가까이 바라보이는 팔각정에서 남북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우리의 주요 모순을 알려줄 책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DMZ는 60년 전에 벌어졌던 전쟁의 상처를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일 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땅으로 거듭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역사유산일 뿐 아니라 평화와 생명을 기원하는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온 가족이 이 책을 읽으면서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작가의 바람처럼 비무장지대를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어 가치를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보존, 인류 문화유산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평화는 사람과 자연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