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학교생활을 경험하는 1학년 어린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면 그들이 입학하기 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말씀을 새겨듣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집중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단답형 질문에는 원만하게 답하는데도 글의 내용을 분석하거나 예측하는 질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본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읽기 능력’이다. 많은 부모는 ‘읽기’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읽기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하는 것이다. 활동중심언어교육연구소 정태선 소장은 “글을 읽는 것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동적인 사고 과정”이라고 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어떻게 아무런 교육 없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서양에서는 어린이들의 ‘읽기 교육’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관련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되면 학교 안에 상주하는 ‘읽기 전문가(Reading Specialist)’가 단계에 맞게 개별지도를 한다. 우리나라 학교에는 아직 이 같은 언어교육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읽기 문제점을 조기에 찾아내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아이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공부에 흥미를 잃는 건 모든 교과의 기본인 ‘읽기’를 충실히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읽기 지도는 언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읽기’를 ‘문자 읽기’로만 생각하면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라 구체적 조작단계가 시작되는 7세 이상이 돼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고 읽기 능력을 키우는 일이 문자언어를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여러 학자가 검증, 발표했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소리와 감정을 통해 읽기 공부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림책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태아가 8개월만 되면 스토리가 있는 책에 내적인 반응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배 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라
아기는 ‘듣기’를 통해 ‘읽기’를 배운다. ‘엄마’ ‘아빠’ ‘맘마’라는 말을 배울 때부터 소리와 리듬을 통해 읽기 공부를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아기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풍부한 언어환경을 제공하면 자연스럽게 읽기 교육이 시작된다.
아이가 글자를 익히지 못한 시기에는 ‘소리를 통한 읽기’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의 활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국학 분야의 석학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글을 배우기 전에 내게 두 분의 스승님이 계셨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건 동화의 주인공이 여행을 나섰다가 커다란 행운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늦은 밤 길 잃은 동화 속의 어린 주인공을 도와주는 ‘하얀 머리의 요술 할머니!’ 그분은 바로 우리 집 안방에 계셨고, 평생 내 삶을 이끌어주셨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언문 제문을 읊조리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둘은 나의 첫 고전이자, 영원한 고전이다. 내 귀에 들려오던 그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내게 글이며 책이며 문학은 없었을 것이다.”(김열규, ‘독서’)
그는 처음으로 민속학 책을 내며 책머리에 ‘이 한 권의 책, 나의 할머니께’라고 적었다. “훗날 글자를 알고 스스로 글을 읽었을 때의 황홀감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내 읽기(독서)의 기반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와 어머니의 제문 읽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서양의 학교에서도 ‘읽어주기’ 교육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국 학교의 수업 참관을 해보면 담임교사나 사서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소리내 책 읽어주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각 교실을 다니며 책을 읽어주는 모습 또한 흔하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읽기를 완성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부모들이 가정에서 읽기 교육을 도와주도록 안내문도 보낸다. 미국 학교의 경우 읽기 교육에 관한 가정통신문이 매우 상세해 전문가가 아닌 부모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연령별 읽기 교육법]
글 모르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방법
글을 모르는 아이에 대한 읽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를 즐기고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평생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려면 소리내 읽어줄 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어줄 때는 감정을 넣어서 읽어줘야 한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는 과정에, 또 읽고 난 뒤에도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읽기 전에는 ‘책에 어떤 내용이 있을 것 같니?’ 그리고 읽는 도중에는 극적인 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니?’ 같은 예측하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 중요한 단어는 자녀와 같이 읽어보고 그 뜻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책 속의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자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자녀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을 질문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네가 이 책에 등장한다면 누구 역할을 하고 싶니?’ ‘왜 그 역할을 선택했니?’ ‘네가 작가라면 이야기의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가 가장 재미있었니?’ 같은 식이다. 자연스레 자녀의 언어사고력이 높아진다.
초등생에게 책 읽어주기
아이가 글씨를 익힌 뒤에는 경험을 통해 언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동물원이나 식물원, 그리고 호기심을 나타낼 만한 장소에 가서 새로운 낱말과 표현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또 주위에 있는 신문, 간판 등의 글자를 읽게 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는 ‘읽기 교육’이 된다.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는 여러 가지로 분주해진다. 그러나 읽기 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므로 꾸준히 해야 한다. 1, 2학년 어린이들은 아직 스스로 책 읽는 재미를 느낄 만큼 언어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으므로 부모가 함께 도서관에 가고, 책 정리를 하고, 집 안에 들어온 광고지를 읽는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읽기 교육이 될 수 있다. 여름휴가에 가족이 산이나 강가에서 캠핑하며 캄캄한 밤 작은 등불 아래서 무서운 이야기책을 함께 읽는 것 같은 경험은, 자녀가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3학년부터 읽기 교육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가 되면 아이는 책의 의미를 생각하며 읽기 교육을 할 수 있는 ‘의미기’에 도달한다. ‘초등학생의 논증적 글쓰기 지도 방법 연구’라는 논문을 쓴 김세곤 박사에 따르면 3학년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는 ‘직접 경험기’, 4학년은 ‘간접 경험기’, 5학년은 ‘자료 활용기’, 6학년은 ‘논리 형성기’다. 이 시기에는 자녀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 좋다.
미국 초등학교의 경우 3학년부터는 어린이들이 읽을 책을 픽션과 논픽션으로 분류하고 픽션으로는 현대소설, 공상, 판타지, 역사소설, 유머, 미스터리, 과학소설을, 논픽션으로는 자서전, 시, 과학책 등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발달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 맞는 책을 스스로 찾게 도와줘야 한다. 4학년 담임교사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읽기 능력’에 크게 차이가 나서 지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3학년까지의 읽기 교육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다양하게 읽도록 꾸준히 노력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회복이 가능하다.
[연령별 독후 활동법]
유아~초등학교 저학년
독후 활동으로 글쓰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후감을 강조하다 보면 글쓰기 싫어 책 읽기까지 싫다 하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 독후 활동은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력뿐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력도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하는 게 좋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긴 글을 쓰는 것보다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는 책 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후 활동이 된다. 대화가 끝난 뒤에는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을 그리게 해도 좋다.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 그림이며, 왜 이것을 그렸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독서 효과가 한층 높아진다.
독서저금통을 만드는 것도 권하고 싶다. 자녀가 읽은 책의 제목 혹은 주인공의 이름을 쓰거나 관련 그림을 그려서 저금통에 넣어두는 것이다. 저금통이 가득 차면 온 가족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잔치를 하며 자녀를 격려한다. 이런 잔치는 아이에게 책 읽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달력 아래쪽에 공간을 만들고 그날 자녀가 읽은 책의 제목, 간단한 줄거리나 느낌, 등장인물 등을 적어넣는 독서달력 만들기도 재미있다. 이것은 부모에게는 자녀의 독서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자녀에게는 자신의 독서량을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녀의 방에 독서 마라톤 코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활동을 하려면 먼저 자녀와 올 한 해(또는 한 학기)에 몇 권의 책을 읽을지 정해야 한다. 만일 100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면 마라톤의 종착점에는 100권이라고 적는다. 또 20권, 50권, 70권 등 코스 중간 중간에 자녀가 좋아하는 이벤트를 마련해둔다. 정해진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온 가족이 모여 축하 행사를 열자. 이때 자녀가 좋아하는 친척들에게 이런 소식을 알려 그들이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격려하게 하면 더욱 효과가 크다.
초등학교 고학년
4학년 이상이 되면 같은 책을 읽은 친구나 가족과 독서토론을 할 수 있다. 토론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남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는 좋은 독후 활동이다.
책표지를 만드는 활동도 좋다. 책표지를 만들려면 그 책의 내용을 대표할 만한 제목을 써넣고 그림을 그리고, 뒷면에 추천의 글이나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책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도 스스로 쓰게 하면, 아이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글로 쓰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독서신문을 만드는 것도 권할 만하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만들 수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할 수도 있다. 신문의 기법을 활용해 읽은 책에 대한 소개, 서평, 만화나 만평, 작가 소개, 광고 등을 고루 담으면 책의 내용을 적용하고 분석해 또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는 기쁨까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쓸 때는 한 번 쓰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본 뒤 내용이 부족한 부분이나 틀린 곳을 수정하고, 친구나 부모, 교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 번 수정한 뒤 완성된 글을 정서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다. 이것을 모아 자신만의 독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간다면 ‘읽기 능력’이 크게 향상됨은 말할 것도 없고 포트폴리오 또한 커다란 재산이 될 것이다.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인 요로 박사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뭔가를 ‘안다’는 건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암 선고와 같은 것”이라는 특이한 말을 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는 세상이 그 이전과 달라 보이듯 “안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뜻하며,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교육목표 중에는 ‘하버드대 학생들은 인류 최대 문화유산인 책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녀에게 읽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읽기 능력’이다. 많은 부모는 ‘읽기’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읽기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하는 것이다. 활동중심언어교육연구소 정태선 소장은 “글을 읽는 것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동적인 사고 과정”이라고 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어떻게 아무런 교육 없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서양에서는 어린이들의 ‘읽기 교육’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관련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되면 학교 안에 상주하는 ‘읽기 전문가(Reading Specialist)’가 단계에 맞게 개별지도를 한다. 우리나라 학교에는 아직 이 같은 언어교육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읽기 문제점을 조기에 찾아내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아이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공부에 흥미를 잃는 건 모든 교과의 기본인 ‘읽기’를 충실히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읽기 지도는 언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읽기’를 ‘문자 읽기’로만 생각하면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라 구체적 조작단계가 시작되는 7세 이상이 돼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고 읽기 능력을 키우는 일이 문자언어를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여러 학자가 검증, 발표했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소리와 감정을 통해 읽기 공부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림책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태아가 8개월만 되면 스토리가 있는 책에 내적인 반응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배 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라
아기는 ‘듣기’를 통해 ‘읽기’를 배운다. ‘엄마’ ‘아빠’ ‘맘마’라는 말을 배울 때부터 소리와 리듬을 통해 읽기 공부를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아기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풍부한 언어환경을 제공하면 자연스럽게 읽기 교육이 시작된다.
아이가 글자를 익히지 못한 시기에는 ‘소리를 통한 읽기’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의 활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국학 분야의 석학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글을 배우기 전에 내게 두 분의 스승님이 계셨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건 동화의 주인공이 여행을 나섰다가 커다란 행운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늦은 밤 길 잃은 동화 속의 어린 주인공을 도와주는 ‘하얀 머리의 요술 할머니!’ 그분은 바로 우리 집 안방에 계셨고, 평생 내 삶을 이끌어주셨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언문 제문을 읊조리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둘은 나의 첫 고전이자, 영원한 고전이다. 내 귀에 들려오던 그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내게 글이며 책이며 문학은 없었을 것이다.”(김열규, ‘독서’)
그는 처음으로 민속학 책을 내며 책머리에 ‘이 한 권의 책, 나의 할머니께’라고 적었다. “훗날 글자를 알고 스스로 글을 읽었을 때의 황홀감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내 읽기(독서)의 기반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와 어머니의 제문 읽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서양의 학교에서도 ‘읽어주기’ 교육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국 학교의 수업 참관을 해보면 담임교사나 사서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소리내 책 읽어주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각 교실을 다니며 책을 읽어주는 모습 또한 흔하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읽기를 완성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부모들이 가정에서 읽기 교육을 도와주도록 안내문도 보낸다. 미국 학교의 경우 읽기 교육에 관한 가정통신문이 매우 상세해 전문가가 아닌 부모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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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읽기 교육법]
글 모르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방법
글을 모르는 아이에 대한 읽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를 즐기고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평생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려면 소리내 읽어줄 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어줄 때는 감정을 넣어서 읽어줘야 한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는 과정에, 또 읽고 난 뒤에도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읽기 전에는 ‘책에 어떤 내용이 있을 것 같니?’ 그리고 읽는 도중에는 극적인 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니?’ 같은 예측하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 중요한 단어는 자녀와 같이 읽어보고 그 뜻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책 속의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자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자녀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을 질문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네가 이 책에 등장한다면 누구 역할을 하고 싶니?’ ‘왜 그 역할을 선택했니?’ ‘네가 작가라면 이야기의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가 가장 재미있었니?’ 같은 식이다. 자연스레 자녀의 언어사고력이 높아진다.
초등생에게 책 읽어주기
아이가 글씨를 익힌 뒤에는 경험을 통해 언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동물원이나 식물원, 그리고 호기심을 나타낼 만한 장소에 가서 새로운 낱말과 표현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또 주위에 있는 신문, 간판 등의 글자를 읽게 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는 ‘읽기 교육’이 된다.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는 여러 가지로 분주해진다. 그러나 읽기 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므로 꾸준히 해야 한다. 1, 2학년 어린이들은 아직 스스로 책 읽는 재미를 느낄 만큼 언어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으므로 부모가 함께 도서관에 가고, 책 정리를 하고, 집 안에 들어온 광고지를 읽는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읽기 교육이 될 수 있다. 여름휴가에 가족이 산이나 강가에서 캠핑하며 캄캄한 밤 작은 등불 아래서 무서운 이야기책을 함께 읽는 것 같은 경험은, 자녀가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3학년부터 읽기 교육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가 되면 아이는 책의 의미를 생각하며 읽기 교육을 할 수 있는 ‘의미기’에 도달한다. ‘초등학생의 논증적 글쓰기 지도 방법 연구’라는 논문을 쓴 김세곤 박사에 따르면 3학년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는 ‘직접 경험기’, 4학년은 ‘간접 경험기’, 5학년은 ‘자료 활용기’, 6학년은 ‘논리 형성기’다. 이 시기에는 자녀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 좋다.
미국 초등학교의 경우 3학년부터는 어린이들이 읽을 책을 픽션과 논픽션으로 분류하고 픽션으로는 현대소설, 공상, 판타지, 역사소설, 유머, 미스터리, 과학소설을, 논픽션으로는 자서전, 시, 과학책 등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발달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 맞는 책을 스스로 찾게 도와줘야 한다. 4학년 담임교사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읽기 능력’에 크게 차이가 나서 지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3학년까지의 읽기 교육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다양하게 읽도록 꾸준히 노력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회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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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독후 활동법]
유아~초등학교 저학년
독후 활동으로 글쓰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후감을 강조하다 보면 글쓰기 싫어 책 읽기까지 싫다 하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 독후 활동은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력뿐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력도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하는 게 좋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긴 글을 쓰는 것보다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는 책 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후 활동이 된다. 대화가 끝난 뒤에는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을 그리게 해도 좋다.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 그림이며, 왜 이것을 그렸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독서 효과가 한층 높아진다.
독서저금통을 만드는 것도 권하고 싶다. 자녀가 읽은 책의 제목 혹은 주인공의 이름을 쓰거나 관련 그림을 그려서 저금통에 넣어두는 것이다. 저금통이 가득 차면 온 가족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잔치를 하며 자녀를 격려한다. 이런 잔치는 아이에게 책 읽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달력 아래쪽에 공간을 만들고 그날 자녀가 읽은 책의 제목, 간단한 줄거리나 느낌, 등장인물 등을 적어넣는 독서달력 만들기도 재미있다. 이것은 부모에게는 자녀의 독서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자녀에게는 자신의 독서량을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녀의 방에 독서 마라톤 코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활동을 하려면 먼저 자녀와 올 한 해(또는 한 학기)에 몇 권의 책을 읽을지 정해야 한다. 만일 100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면 마라톤의 종착점에는 100권이라고 적는다. 또 20권, 50권, 70권 등 코스 중간 중간에 자녀가 좋아하는 이벤트를 마련해둔다. 정해진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온 가족이 모여 축하 행사를 열자. 이때 자녀가 좋아하는 친척들에게 이런 소식을 알려 그들이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격려하게 하면 더욱 효과가 크다.
초등학교 고학년
4학년 이상이 되면 같은 책을 읽은 친구나 가족과 독서토론을 할 수 있다. 토론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남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는 좋은 독후 활동이다.
책표지를 만드는 활동도 좋다. 책표지를 만들려면 그 책의 내용을 대표할 만한 제목을 써넣고 그림을 그리고, 뒷면에 추천의 글이나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책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도 스스로 쓰게 하면, 아이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글로 쓰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독서신문을 만드는 것도 권할 만하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만들 수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할 수도 있다. 신문의 기법을 활용해 읽은 책에 대한 소개, 서평, 만화나 만평, 작가 소개, 광고 등을 고루 담으면 책의 내용을 적용하고 분석해 또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는 기쁨까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쓸 때는 한 번 쓰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본 뒤 내용이 부족한 부분이나 틀린 곳을 수정하고, 친구나 부모, 교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 번 수정한 뒤 완성된 글을 정서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다. 이것을 모아 자신만의 독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간다면 ‘읽기 능력’이 크게 향상됨은 말할 것도 없고 포트폴리오 또한 커다란 재산이 될 것이다.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인 요로 박사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뭔가를 ‘안다’는 건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암 선고와 같은 것”이라는 특이한 말을 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는 세상이 그 이전과 달라 보이듯 “안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뜻하며,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교육목표 중에는 ‘하버드대 학생들은 인류 최대 문화유산인 책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녀에게 읽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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