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잠재성 깨워준 고마운 선생님들
그동안 탱이를 도와준 여러 선생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첫 인연은 ‘짱뚱이’ 시리즈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만화가 선생님. 탱이가 열다섯 살 때 그분을 처음 만났다. 당시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탱이도 거기 참여했다가 선생님을 만났고, 따뜻한 도움말을 들었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라.”
그러고도 1년쯤 지나서야 탱이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고, 짱뚱이 선생님이 떠올라 연락했다. 경기도 강화에 사시던 선생님은 흔쾌히 아이를 받아주고, 그림에 대해 좋은 도움말을 주셨다.
하지만 탱이가 그림을 계속 그린 것은 아니다. 특별히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림 실력이 조금 늘다가 주춤하는 게 여느 아이와 같았다. 그러다가 또 다른 자극이 된 건 미술 교사를 하다 귀농한 이웃과의 만남이다. 이분과는 이웃으로 자주 만나다 보니 아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어느 정도 쌓이면 한 번씩 찾아가서 도움말을 듣고 왔다. 그때 이웃은 탱이가 틀에 박힌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자기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혼자서 계속 그림 공부를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니 꾸준히 하지를 못했다.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으면 얼마간 하다가 진전이 없으면 손을 놓았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아이를 탓하거나 보채지는 않았다. 화가가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요, 그림 역시 글처럼 삶 속에서 즐기듯 하면 좋을 거라 믿기에.
부모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아이 자신이 잘 안다. 그림으로든 음악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게 마련. 탱이도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그 욕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한동안 여기 마을 사람들과 그림 모임을 함께 했고, 또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푸른꿈 고등학교 미술실을 찾아가 그려보기도 했다. 어린이 그림책에 관심이 생기면, 마침 알게 된 어린이 그림책 화가도 찾아가보고.
아이가 학교 다닐 때 만난 선생님들은 양면성이 있었다. 고마움도 있지만 솔직히 그건 건성이기 쉽다. 잘 가르쳐주는 건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부모 처지에서는 불만이다. 그러나 지금 탱이가 제 발로 찾아가서 배우는 사람들한테는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하기 어렵고, 세월이 지나도 그분들 이름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대가 없이 가르쳐주고, 부모가 못하는 교육을 대신해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아주 귀한 손님이 우리 집에 왔다. ‘강아지똥’을 그린 화가분이다. 우리 부부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며 한 번쯤 우리 집에 와보겠다고 벼르기만 하시던 그분이 탱이가 그림 공부를 한다는 걸 듣고는 한달음에 오셨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안방 벽에 붙여놓은 탱이 그림을 본 첫 소감.
“그리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구나!”
<b>1</b> 탱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온 기념으로 벽에 남기고 간 손바닥 그림. <br> <b>2</b> 집에 오는 손님에게서 배울 게 있다면 아이들은 기꺼이 배운다.<br><b>3</b> 이웃이 고흐 그림 따라 그리기를 시범으로 보여준다. “초보자일 때는 좋은 그림을 많이 따라 그려보는 게 좋아.” <br> <b>4</b> 탱이가 열아홉 살에 그린 그림. <br><b>5</b> 탱이가 친구와 함께 그린 여러 친구의 캐리커처.
“그림을 그리는 건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한 거야. 그리고 싶은 걸 생각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 돼. 자꾸 그려봐야 자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거지. 뭔가가 떠오르는 걸 바로 그려야 해. 시간이 없으면 간단히 스케치와 메모라도 해둬라.”
그분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는 미술을 ‘입시미술’이라고 했다. 오늘의 자신이 있었던 건 입시미술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그림 공부를 한 덕분이란다. 내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당시 선생님 한 분이 알아봐주셨단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탱이가 과외나 학원에서 돈 들여 그림을 배웠다면, 부모인 내게는 그 선생들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탱이가 스스로 찾아가 만난 분들은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부모 같은 정성으로 가르쳐주었다. 또한 가르치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끼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만일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가르쳐주는 분도 적지 않게 부담이 됐을 것이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아이가 제 발로 찾아가니 그분들은 더 흔쾌히 가르쳐준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분들을 보며 ‘사회적 부모’를 느낀다. 피를 나눈 자식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자식처럼 기꺼이 가르쳐주는 어른들. 아이 마음속에 담긴 가능성마저 일깨워주고, 진심으로 용기를 북돋우는 선생님들.
요즘 나는 ‘아이는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말이 옳음을 절실히 느낀다. 나는 얼마나 제대로 사회적 부모 노릇을 하는가. 자식이 성장하는 덕에 내가 감당할 사회적 부모 노릇을 다시 돌아본다. 내게 배울 게 있어 아이들이 찾는다면 이보다 더한 영광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