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2월6일 처음 전파를 탄 ‘내 인생의 스페셜’(박경수 극본·이재원 연출)은 11%대로 시청률이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상미가 빼어나고 스토리 전개가 탄력 있으며 김승우·명세빈·성지루 등 출연 연기자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는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12부작으로 100% 사전 제작됐으며 이를 다시 8부작으로 재편집한 것으로 편집, 반전 배치, 캐릭터 구축과 조화 등에서 기존의 드라마들과 차별화됐다는 평이다.
‘늑대’의 방송 중단 사태와 ‘내 인생의 스페셜’에 대한 호평은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월22일 ‘늑대’는 스턴트맨의 실수로 에릭과 한지민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촬영과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불의의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하고 있는 지금의 드라마 제작 환경이 이 같은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 인생의 스페셜’
최근 미니시리즈들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원래 70분에서 10분가량 늘어난 ‘80분 편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몰린 제작진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한 미니시리즈의 스크립터는 과로와 스트레스 등이 겹쳐 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연 연기자들은 드라마 촬영 중에는 하루 2∼3시간의 ‘쪽잠’으로 버티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100% 사전 제작으로 방송 중인 ‘내 인생의 스페셜’은 여러모로 눈여겨볼 만하다. 드라마 사전 제작은 그동안 지적돼온 제작상의 병폐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청률 지상주의에 따른 고무줄 편성을 없앨 수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도 시청률이 낮으면 조기 종영되고 시청률이 높으면 끝도 없이 질질 끄는 늘이기 작전을 막을 수 있다. 일부 누리꾼의 입김에 따라 주인공이 살았다 죽었다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한 방송 도중 작가 혹은 연출자가 교체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올해 들어 사전 제작 드라마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이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자회사인 청암 엔터테인먼트가 3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배용준 주연의 팬터지 사극 ‘태왕사신기’를 비롯해 윤석호 PD의 로맨틱 멜로드라마 ‘봄의 왈츠’, 감우성·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 등이 100%는 아니더라도 제작을 일부 완성한 뒤 지상파 방송사에 납품을 계획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전 제작 시스템이 성공을 거둘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프로그램 편성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가 아직은 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전 제작한 작품의 ‘납품’을 거절할 수 있다. 사실 ‘내 인생의 스페셜’도 ‘늑대’가 갑자기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언제 방송될지 미지수였던 드라마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의 ‘쪽 대본’ 관행과 ‘초치기’ 촬영, 스타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방송 관계자 모두 동의한다. ‘내 인생의 스페셜’은 다시 한번 드라마 사전 제작 시스템의 논의에 불을 붙이는 드라마로 방송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