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2004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과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LG카드 처리과정에서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한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의 뚝심이 화제다. 김행장은 LG카드 처리과정에서 리딩뱅크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관치라는 딱지를 붙이며 철두철미하게 시장논리를 지킨 것.
김행장은 ‘LG카드 공동관리’에 동참하라는 정부측의 압력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김행장이 끝까지 버팀으로써 LG카드 사태는 결국 산업은행이 ‘1대 주주’라는 실속 없는 감투를 쓰고 향후 추가부실에 따른 분담금을 떠안는 조건으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정부와 LG그룹에 대해 가장 먼저 강공을 취한 사람은 김정태 행장이 아니라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이었다. 11월21일 8개 채권은행장과 LG측 협상에서 김승유 행장은 ‘사사건건 따지고 붙으며 끝까지 다 받아낸다’는 강경 원칙을 고수했다. 반면 이날 김정태 행장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무언의 시위였다고도 볼 수 있으나 LG카드 문제가 금융계 전체를 뒤흔들 핵폭탄이었음을 고려하면 리딩뱅크 수장으로서 다소 무책임한 처사였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인 김승유 행장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추가부담을 안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되자 김정태 행장은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산업·우리 은행, 농협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LG카드를 이끄는 방안에 대해 강하게 비토하고 나선 것.
이후 LG카드 사태의 막판 협상을 좌우한 주체는 정부가 아닌 김행장이었다. 김행장은 정부와 LG그룹의 추가부담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공동관리 구상을 결국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김행장이 추가부실 부담을 피하려 했던 이유는 LG카드에 추가로 필요한 돈이 수조원대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등은행의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치에 맞선 김행장은 요즘 ‘시장의 수호자’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때서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 김행장의 태도는 ‘냉혹한 장사꾼’에 가까워 보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