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서리가 내린 뒤의 배추를 뽑아 깨끗이 씻는다. ② 배추를 두 치 가량씩 썰어 뜨거운 솥에서 기름으로 볶은 후 식힌다. ③ 식초 간장 설탕을 섞고 팔팔 끓인 뒤 겨자 갠 것을 섞는다. ④ 식힌 배추를 단지에 담고 초겨자장을 부은 뒤 눌러서 단단히 봉해 두었다가 먹는다.
이 조리법대로 배추를 조리해 보자. 맛이 어떨까?
위에 소개한 요리의 이름은 ‘숭개법’이다. 1715년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나오는 조리법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배추를 ‘숭채’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불고기나 깍두기, 잡채 등을 먹었을까? 요리의 맛은 어땠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약간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전시회 ‘옛 음식책이 있는 풍경’전이 11월21일부터 한국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궁중음식연구원이 주최한 ‘옛 음식책이 있는 풍경’전에는 혜경궁 홍씨의 환갑상을 비롯한 궁중음식과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던 음식, 또 1950년대의 요리책에 소개된 사계절 상차림 등이 재현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산가요록’ ‘침주법’ ‘잡지’ ‘가기한중일월’ 같은 조선시대 요리책들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1459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산가요록’은 조선 초기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죽과 밥, 국수, 떡, 과자, 두부 등의 조리법 229가지를 기록한 저서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으로 인정된 ‘수운잡방’보다 50년 이상 먼저 쓰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산가요록’의 저자인 전순의는 세종, 문종, 세조의 세 임금을 모셨던 궁중의 의관(醫官)이었다.
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쓴 요리책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1611년에 쓰인 요리책 ‘도문대작’은 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각지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허균이 각 지방에서 먹었던 유명한 음식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적은 책이다. 여기에는 130여 종류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요리책들은 주로 남성이 저자며 대부분 한문으로 쓰였다. 그러나 1700년대 이후부터 한글 요리책, 또 여성들이 쓴 책들이 등장한다. 전자가 주로 중국 요리법을 옮긴 데 비해 후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먹은 요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1670년경 안동의 장씨부인이 쓴 ‘음식디미방’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이다. 장씨부인은 메밀만두, 석류탕, 화전, 밤설기, 조개탕, 꿩김치 등의 조리법을 기록한 이 책의 끝에 ‘가문의 여인들이 베껴 가되 원본은 훼손하지 말고 귀중하게 다룰 것’을 당부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라고 해서 지금과 특별히 다른 음식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음식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음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서민들은 육류보다 채소, 젓갈, 장 등을 주로 먹었습니다. 육류 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쇠고기, 돼지고기보다 개고기, 꿩고기, 참새, 오리 등을 즐겨 먹었고요. 또 반가에서는 집안 내력으로 전해지는 술을 담가 먹었습니다. 그래서 각 집마다 고유한 술과 장맛이 있었죠.” 궁중음식연구원의 이호영 연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여러 요리책들은 요리 못지않게 다양한 술 제조법을 기록하고 있다. 1752년에 쓰인 ‘민천집설’에는 작주본, 소곡주, 호산춘, 삼해주 등 38가지 술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은 어떤 맛이었을까? 아마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삶거나 찌는 요리법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름으로 튀기는 요리 등은 현재보다 수가 적었다. 조미료로는 소금 간장 꿀 등을 주로 썼다. 또 현재와 조리법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느름이’는 요즈음의 전유어에 해당하는 음식이다. 오늘날에는 튀김옷을 입혀 전을 굽는 반면, 조선시대의 느름이는 먼저 재료를 부치다가 곡물가루 즙을 중간에 끼얹었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요리 중에는 현재 완전히 사라진 음식도 적지 않다. 계증, 섭산삼, 난면 등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재료를 사용한 음식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다.
조선시대의 식생활은 17세기 중엽 고춧가루가 서민들의 밥상에 소개되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때까지의 음식들 중에서 고춧가루를 넣어 어울리는 것은 살아남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미진 연구원은 “고춧가루의 등장은 조선의 식생활에서 산업혁명에 비길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위에 소개한 숭개법 역시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김치의 일종이지만 오늘날의 식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먹을거리는 확실히 화려하거나 맛깔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집집마다 고유한 술과 장, 그리고 떡 만드는 법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유의 맛이 거의 사라졌다는 데 과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가 있을 듯했다.
조선시대 음식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면? 궁중음식연구원은 전시회장에서 음식 시연뿐만 아니라 ‘음식디미방’ 등 새로 편찬한 옛 요리책들을 판매하고 있다. 알느름이나 약지히처럼 잊힌 음식들을 오늘 저녁 식탁에 한번 재현해 보는 것도 각별한 재미가 아닐까(2002년 1월7일까지, 문의:02-3673-1122).
이 조리법대로 배추를 조리해 보자. 맛이 어떨까?
위에 소개한 요리의 이름은 ‘숭개법’이다. 1715년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나오는 조리법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배추를 ‘숭채’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불고기나 깍두기, 잡채 등을 먹었을까? 요리의 맛은 어땠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약간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전시회 ‘옛 음식책이 있는 풍경’전이 11월21일부터 한국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궁중음식연구원이 주최한 ‘옛 음식책이 있는 풍경’전에는 혜경궁 홍씨의 환갑상을 비롯한 궁중음식과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던 음식, 또 1950년대의 요리책에 소개된 사계절 상차림 등이 재현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산가요록’ ‘침주법’ ‘잡지’ ‘가기한중일월’ 같은 조선시대 요리책들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1459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산가요록’은 조선 초기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죽과 밥, 국수, 떡, 과자, 두부 등의 조리법 229가지를 기록한 저서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으로 인정된 ‘수운잡방’보다 50년 이상 먼저 쓰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산가요록’의 저자인 전순의는 세종, 문종, 세조의 세 임금을 모셨던 궁중의 의관(醫官)이었다.
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쓴 요리책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1611년에 쓰인 요리책 ‘도문대작’은 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각지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허균이 각 지방에서 먹었던 유명한 음식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적은 책이다. 여기에는 130여 종류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요리책들은 주로 남성이 저자며 대부분 한문으로 쓰였다. 그러나 1700년대 이후부터 한글 요리책, 또 여성들이 쓴 책들이 등장한다. 전자가 주로 중국 요리법을 옮긴 데 비해 후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먹은 요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1670년경 안동의 장씨부인이 쓴 ‘음식디미방’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이다. 장씨부인은 메밀만두, 석류탕, 화전, 밤설기, 조개탕, 꿩김치 등의 조리법을 기록한 이 책의 끝에 ‘가문의 여인들이 베껴 가되 원본은 훼손하지 말고 귀중하게 다룰 것’을 당부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라고 해서 지금과 특별히 다른 음식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음식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음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서민들은 육류보다 채소, 젓갈, 장 등을 주로 먹었습니다. 육류 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쇠고기, 돼지고기보다 개고기, 꿩고기, 참새, 오리 등을 즐겨 먹었고요. 또 반가에서는 집안 내력으로 전해지는 술을 담가 먹었습니다. 그래서 각 집마다 고유한 술과 장맛이 있었죠.” 궁중음식연구원의 이호영 연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여러 요리책들은 요리 못지않게 다양한 술 제조법을 기록하고 있다. 1752년에 쓰인 ‘민천집설’에는 작주본, 소곡주, 호산춘, 삼해주 등 38가지 술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은 어떤 맛이었을까? 아마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삶거나 찌는 요리법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름으로 튀기는 요리 등은 현재보다 수가 적었다. 조미료로는 소금 간장 꿀 등을 주로 썼다. 또 현재와 조리법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느름이’는 요즈음의 전유어에 해당하는 음식이다. 오늘날에는 튀김옷을 입혀 전을 굽는 반면, 조선시대의 느름이는 먼저 재료를 부치다가 곡물가루 즙을 중간에 끼얹었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요리 중에는 현재 완전히 사라진 음식도 적지 않다. 계증, 섭산삼, 난면 등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재료를 사용한 음식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다.
조선시대의 식생활은 17세기 중엽 고춧가루가 서민들의 밥상에 소개되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때까지의 음식들 중에서 고춧가루를 넣어 어울리는 것은 살아남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미진 연구원은 “고춧가루의 등장은 조선의 식생활에서 산업혁명에 비길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위에 소개한 숭개법 역시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김치의 일종이지만 오늘날의 식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먹을거리는 확실히 화려하거나 맛깔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집집마다 고유한 술과 장, 그리고 떡 만드는 법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유의 맛이 거의 사라졌다는 데 과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가 있을 듯했다.
조선시대 음식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면? 궁중음식연구원은 전시회장에서 음식 시연뿐만 아니라 ‘음식디미방’ 등 새로 편찬한 옛 요리책들을 판매하고 있다. 알느름이나 약지히처럼 잊힌 음식들을 오늘 저녁 식탁에 한번 재현해 보는 것도 각별한 재미가 아닐까(2002년 1월7일까지, 문의:02-367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