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건강의 신비로운 조력자 ‘별아교세포’

[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신경전달물질 주고받고, 학습과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입력2026-05-15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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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없애는 일을 한다고만 알려졌던 별아교세포가 학습과 기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제공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없애는 일을 한다고만 알려졌던 별아교세포가 학습과 기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제공

    일본 해부학자 요로 다케시는 ‘유뇌론(唯腦論)’이라는 뇌에 관한 독창적 시선으로 유명하다. 인간을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뇌에 있다는 이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쓴 책 ‘바보의 벽’은 2003년 출간돼 400만 부나 팔렸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경세포(뉴런)와 교세포(Glia)의 집합체에 혈관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뇌다. 신경세포는 혼자 살아갈 수 없어 교세포의 도움을 받는다. 교세포의 역할은 그게 다이다.

    뇌 기능은 뉴런의 활동에서 비롯되고 교세포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 공급과 노폐물 청소 등 보조적 역할만 맡는다는 설명이다. 책이 나오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면 이는 틀린 내용이다. 교세포 역할이 더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혈관에서 영양분 빼내 뉴런으로 공급

    1856년 독일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현미경으로 뇌 조직을 들여다보다가 뉴런과는 다르게 생긴 세포를 발견하고 ‘글리아(Glia)’라는 이름을 지었다. ‘붙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뉴런 주변에 있는 이들 세포가 뉴런 네트워크를 고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어로는 아교세포 혹은 교세포라고 번역된다. 아교란 동물 가죽에서 얻는 천연 접착제를 뜻한다.

    이후 신경계 연구를 통해 뉴런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뉴런 사이 틈인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신호가 전달된다는 게 밝혀졌다. 교세포는 전기신호를 내보내지 않으며 뉴런과 교세포의 개수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세포 1710억 개 가운데 뉴런은 860억 개, 교세포는 850억 개다.

    교세포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별아교세포는 교세포의 20~40%를 이룬다. 세포 몸통 주변으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밤하늘에서 불빛을 사방으로 내뿜는 별처럼 생겨 이런 이름을 얻었다. 별아교세포는 가지를 혈관과 뉴런, 다른 교세포에 연결한다. 혈관에서 영양분을 빼내 뉴런으로 공급하고 뉴런 시냅스 주변의 노폐물을 청소한다.



    2000년대 들어 별아교세포가 이러한 보조적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흔히 뉴런이 시냅스를 통해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고 신호를 전달한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시냅스의 상당수에는 별아교세포도 가지를 뻗치고 있다. 즉 시냅스는 뉴런뿐 아니라 별아교세포까지 함께 만나는 곳이다. 별아교세포도 신경전달물질을 받거나 아교전달물질을 분비해 뉴런 사이 신호를 조정한다.

    별아교세포는 시각계 발달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다. 별아교세포가 미성숙 상태라 억제 유전자의 발현이 낮을 때 적절한 시각 자극을 받아야만 시신경이 제대로 발달한다. 별아교세포가 이미 성숙하고 나면 시각 뉴런의 적응력이 사라져 자극을 줘도 뉴런이 잘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런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학습과 기억에서도 별아교세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전자 조작 또는 약물 처리로 별아교세포가 관여하지 못하게 했더니 기억 형성이나 기억 회상 뒤 재구축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인간 뇌의 복잡성과 놀라운 기억력이 별아교세포 덕분이라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왔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뇌세포를 비교했더니 유독 별아교세포의 크기와 형태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쥐와 비교하면 사람의 별아교세포는 크기가 수십 배이고 뻗은 가지 수도 10배나 많다. 사람 뇌에는 별아교세포가 많이 있을 뿐 아니라, 세포들끼리 연결도 더 많이 돼 있다. 그 덕에 뇌 네트워크의 복잡도가 훨씬 커졌다. 뉴런 간 연결만으로는 인간의 엄청난 기억 능력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별아교세포를 포함한 신경 네트워크 모델을 고려하면 인간의 기억 용량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인간 별아교세포가 유독 크고 복잡해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는 뉴런 네트워크와는 별개로 별아교세포 사이에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게재됐다. 생쥐의 뇌를 대상으로 한 결과이지만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별아교세포는 간극연접이라는 세포 사이 막 채널을 통해 신호분자를 주고받는다. 이 네트워크는 뇌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구성돼 있다.

    별아교세포 네트워크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뇌혈관이 파괴됐거나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뉴런이 죽어 특정 영역이 기능을 잃으면 반대쪽 뇌 반구의 해당 영역이 일을 떠맡는다. 특정 영역의 활동이 과도해지면 산화 손상 등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다. 별아교세포는 네트워크를 재구축해 일이 많아진 영역에 항산화물질 등을 더 공급하고 노폐물을 더 빨리 처리해 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한쪽 눈에 녹내장이 발생하면 반대쪽 눈 망막에 있는 별아교세포의 활성이 커진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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