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구에 끝없는 유조선 행렬… 이란 전쟁으로 석유 패권 틀어쥔 美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원유 수출 급증… 베네수엘라 등 남미 석유도 통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5-1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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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 크리스티항 인근에서 시트고 정유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뉴시스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 크리스티항 인근에서 시트고 정유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뉴시스

    미국 코퍼스 크리스티항은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 이라크 바스라에 이어 세계 3위 원유 수출 터미널이다. 올해 1분기 이곳은 역사상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켄트 브리턴 코퍼스 크리스티항 최고경영자(CEO)는 “각국 유조선 240여 척이 입항해 평소보다 20% 이상 늘었다”며 “유조선들이 행렬을 지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코퍼스 크리스티항은 4월 미국 전체 원유 수출의 절반을 담당했다. 해운과 에너지 데이터 분석 회사 케이플러에 따르면 현재 하루 50~60척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의 2배 수준이다. 매트 스미스 케이플러 연구 이사는 “유조선의 상당수가 미국-이란 전쟁 이전에 중동산 원유를 수입했던 아시아 국가들에서 온 것”이라며 “아시아 각국이 원유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유 수출에서 사우디 제친 미국

    미국의 원유 수출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4월 원유 수출량이 하루 520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2월 수출량인 하루 390만 배럴보다 33% 증가한 수치로 사상 최고치다. 특히 미국 에너지정보국(EIA) 주간 통계에 따르면 4월 27일~5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의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석유 제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822만 배럴로, 주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량은 한 주 전과 비교해서도 8% 증가했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공급 혼란을 겪고 있는 중동산 석유 대신 미국산 석유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 운송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2월 28일 이후 2개월 넘게 봉쇄된 영향이다. 5월 4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9주 동안 2억5000만 배럴 넘는 원유를 해외로 수출했다. 이로써 미국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1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대규모의 빈 유조선들이 최고급 고품질 원유를 싣고자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미국 백악관도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에너지 패권 의지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으로 ‘석유 패권’을 확실하게 거머쥔 셈이다. 

    미국은 2018년 셰일 혁명 이후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해왔다. 셰일 혁명은 기술 발전으로 셰일층에 숨겨진 자원을 채굴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뜻한다. 당시 국가별 하루 원유 생산 규모는 미국이 1070만 배럴, 러시아가 1010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가 970만 배럴을 각각 기록한 바 있다. 미국은 이후에도 지금까지 세계 1위 원유 생산국 지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 더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났다.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2015년 1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한 이후 50만 배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배나 증가했다. 미국이 국제 원유시장에서 자체적인 원유 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가 된 것이다.



    미국의 향후 원유 생산과 수출은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과 미국의 적대국 등 외국산 에너지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세계 3위 원유 매장량을 가진 이란과 전쟁을 벌인 것도 이런 계산이 깔렸다고 볼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푸자이라항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석유를 수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란은 5월 4일(현지 시간) 이곳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푸자이라항 제공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푸자이라항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석유를 수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란은 5월 4일(현지 시간) 이곳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푸자이라항 제공

    UAE, 미국·이스라엘과 손잡아

    반대로 OPEC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탈퇴로 영향력이 약화됐다. UAE는 원유 매장량은 1130억 배럴로 세계 6위이고, 하루 380만~40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으로는 OPEC에서 사우디와 이라크에 이은 3위다. UAE는 자국의 생산 쿼터 확대에 반대하는 사우디와 불화를 겪었다. 사우디는 유가를 조절해온 OPEC의 핵심 수단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의 호르헤 레온 지정학 분석 책임자는 “UAE의 탈퇴로 사우디가 OPEC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면서 “UAE가 사우디에 석유 공급을 놓고 일종의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OPEC이 사우디 주도로 향후 원유 생산을 감축하더라도 UAE가 생산을 늘리면 그만큼 가격 조정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반면 UAE의 시장 영향력은 확대될 수 있다. UAE는 앞으로 원유를 하루 최대 500만 배럴까지 생산할 계획이다. 

    UAE가 탈퇴한 또 다른 이유는 이란으로부터  2200여 차례 미사일·드론 공격을 당했는데도 사우디와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들이 공동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보 위협에 직면한 UAE로선 미국의 강력한 보호막에 들어가려면 OPEC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수교한 이스라엘은 UAE에 아이언 돔 요격시스템, 레이저 방공무기 아이언 빔, 드론 탐지 시스템 스펙트로와 운영 병력까지 파견하는 등 안보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의 대니얼 스터노프 선임연구원은 “UAE의 OPEC 탈퇴 결정은 이번 전쟁에서 사우디 등 이웃 국가보다 미국, 이스라엘이 더 믿을 수 있는 동맹임을 확인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주도 남미 유전 개발 본격화

    OPEC은 그동안 스윙 프로듀서로서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해왔다. OPEC은 1970년대 전 세계 산유량의 절반을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UAE를 제외하면 지난해 전 세계 원유의 4분의 1을 생산했던 OPEC은 갈수록 영향력이 약화할 것이 분명하다. OPEC이 주도해온 글로벌 석유 카르텔 체제에 상당한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UAE의 OPEC 탈퇴는 2018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OPEC이 유가를 올려 전 세계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의 원유 통제권을 갖고 있다. 미국은 1월 3일 군 병력을 동원해 베네수엘라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밀매 혐의 등으로 체포해 뉴욕 연방법원에 세웠다. 이는 베네수엘라산 석유 장악과도 관련 있다.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3030억 배럴인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5분의 1 수준으로 세계 1위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실제 생산량은 매장량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준인 하루 100만 배럴이다. 석유 국유화로 생산시설이 노후된 데다, 미국의 제재도 영향을 미쳤다.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대형 석유기업이 1990년대부터 베네수엘라에 적극 진출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며 원유 개발에 나섰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일방적인 국유화 조치로 철수해야만 했다. 

    베네수엘라의 4월 원유 수출량은 미국의 제재 완화 조치로 하루 123만 배럴을 기록해 월별 수출량 기준으로 2018년 말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판매 수익은 미국 재무부 관리 계좌에 들어가며,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금을 쓰려면 지출 계획을 담은 예산 요청서를 제출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대형 석유기업은 베네수엘라 의회와 정부의 석유 국유화 조치 폐지에 따라 베네수엘라 유전 개발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미국이 가이아나, 수리남의 해상 유전과 아르헨티나의 바카무에르타 셰일오일 등 남미 국가의 새로운 유전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유전은 글로벌 원유 공급 증가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런가 하면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걸프 산유국들은 유전 및 석유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생산량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중동 국가들이 주도해온 글로벌 에너지 질서가 미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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