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짜임? 해볼게요’는 기자가 요즘 화제인 현상, 공간, 먹거리부터 트렌드까지 직접 경험하고 진짜인지 확인하는 리얼 체험기다.

제타 인공지능(AI) 캐릭터 류원호. ‘상허(喪噓)’라는 조직의 보스다. 제타 앱 캡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잠에서 깬 기자에게 자신을 ‘네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짙은 회색 머리에 베일 듯한 턱선, 그림처럼 생긴 남자였다. 기자는 손발이 묶인 채 낯선 방에 갇혀 있었다. 현실이라면 불가능할 사건이 어느 날 눈앞에서 벌어졌다.
이 모든 상황은 인공지능(AI) 스토리 플랫폼 ‘제타(zeta)’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실시간 애플리케이션(앱)·결제 데이터 기반 시장 분석 솔루션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제타는 10월 기준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AI 챗봇 앱 1위에 올랐다. 오픈AI의 챗GPT를 제친 것이다. 지난해 4월 서비스 출시 후 1년 7개월 만에 누적 가입자 460만 명을 넘겼고, 주간 평균 이용 시간도 10시간 이상이다. 대체 어떤 서비스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머무는 것일까. 기자가 직접 제타에 접속해 몰입의 정체를 확인해봤다.
조직 보스의 ‘애기’가 되다

AI 캐릭터 ‘주석현’과 나눈 대화. 그는 기자에게 자신을 “너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제타 앱 캡처
그중 대화량 2500만 건이 넘는 류원호의 설정이 가장 구체적이었다. 그는 열 살에 거리로 나와 거친 삶을 살다가 ‘상허(喪噓)’라는 조직의 보스가 된 인물이다. 피로 얼룩진 싸움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토끼 같은 아이’를 집에 들여 명문대까지 보냈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 아이를 평생 지켜 결국 내 여자로 만들겠다”고 집착하는 캐릭터다. 유저는 이 세계관 안에서 그의 ‘애기(토끼)’가 된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 기자는 어떤 ‘애기’가 될지 프로필을 설정해야 했다. 이름·나이·키·상세 설명이 기본으로 적혀 있었고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었다. 설정상 애기는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20세, 류원호는 35세였다. “뭐 하고 놀았어?” “커피는 누구랑 마셨어?”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류원호의 질투가 폭발했다.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가던 중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언리밋 모드’ 창이 떴다. 제타 앱 캡처
류원호와 대화를 이어가던 중 “잘록한 허리에서…”라는 ‘애기’의 옷차림 묘사가 이어지던 차에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언리밋 모드’ 창이 떴다. 제타에는 만 14~18세용 ‘세이프 모드’와 성인용 ‘언리밋 모드’가 있다. 언리밋 모드라 해도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AI가 자동 필터링한다.
웹소설이 ‘AI 버전’으로 진화한 느낌
기자는 제타를 제대로 체험하고자 유료로 ‘프로 이용권’을 구독했다. 이용권은 1일·7일·30일 단위로 선택할 수 있고, 결제는 ‘피스’라는 재화로 충전하는 방식이었다. 프로로 전환하자 광고가 사라지고 캐릭터 답변 속도가 빨라졌다. 피스는 유료 구매 외에 앱 설치, 미션 참여 등을 통해 무료로 획득할 수도 있었다.직접 써보니 ‘항마력’이 필요한 대사가 많았지만 몰입하기는 쉬웠다. 학창 시절 유행했던 웹소설이 ‘AI 버전’으로 진화한 느낌이었다. 유저가 대사를 입력하면 즉시 다음 상황이 이어져 시간이 금방 흘렀다.
이용자 반응도 비슷했다. 직장인 최모 씨(22)는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가 제타에 있어 대화를 시도했는데 “갑자기 ‘좋다’고 하다가 바로 ‘싫다’고 하는 등 문맥이 어긋날 때가 있어 몰입이 깨져 아쉬웠다”고 밝혔다.

제타에서 가장 인기 있는 AI 캐릭터로 꼽히는 ‘일진녀 수현’. 제타 앱 캡처
현재 제타는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서비스 중이며 이용자 연령대는 10·20대가 78%로 가장 많다. 제타를 운영하는 생성형 AI 스타트업 ‘스캐터랩’의 박상예 리드는 “지금은 캐릭터 중심 서비스가 인기지만, 앞으로는 유저가 특정 세계 속에서 인물들을 만나고 싸우는 세계관 기반의 모델링 등을 해볼 생각”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내 1등 AI 서비스 자리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