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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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자연 살아 숨 쉬는 라오스 북부

[재이의 여행블루스] 산과 강, 폭포, 동굴이 빚어낸 절경… 제2도시 ‘루앙프라방’은 세계문화유적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4-03-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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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약 160㎞ 떨어진 ‘방비엥’은 한국 면 소재지 정도 크기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원래는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차로 4시간가량 소요돼 불편한 점이 많았다. 다행히 2020년 12월 두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개통됐고, 지금은 차로 9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라오스는 한국처럼 고속버스 운행이 원활하진 않지만 택시나 미니밴, 호텔 버스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합리적인 가격에 운영되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또한 고속도로 개통에 이어 2021년 12월에는 ‘라오스-중국 철도’까지 개통돼 비엔티안에서 방비엥, 루앙프라방, 우돔싸이, 루앙남타 등 라오스 북부 도시를 여행하기가 편해졌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1시간이면 가능하고, 10시간이 걸리던 루앙프라방까지는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고속도로,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 구간은 기차 이용을 추천한다.

    튜빙 즐길 수 있는 방비엥

    카르스트 지형이 이색적인 방비엥. [GettyImages]

    카르스트 지형이 이색적인 방비엥. [GettyImages]

    방비엥에 도착하면 푸른 녹음과 함께 메콩강 지류이자 방비엥 서쪽을 남북으로 시원하게 가르는 쏭강의 강줄기가 제일 먼저 여행객을 맞이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태곳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이 도시는 대개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을 오갈 때 들리곤 하는데, 소박한 자연에 이끌려 예정보다 항상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방비엥은 뾰족뾰족 솟은 ‘카르스트 지형’(석회암이 화학적으로 침식되면서 나타나는 지형)의 산봉우리들이 중국 구이린(桂林)을 닮아 소계림으로도 불린다. 굽이굽이 둘러싸인 산들과 쏭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언제 어디서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뿐 아니다.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여러 액티비티도 여행자의 하루를 흥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방비엥에 오면 거의 모든 여행자가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튜빙’(Tubing: 튜브를 타고 이동하는 액티비티)이다.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일 수 있지만, 금세 배와 한 몸이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유속이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계곡들을 병풍 삼아 유유자적 즐기다 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스르륵 강물에 떠내려간다. 고운 물결을 가르는 보트에 몸을 맡기다 보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중간 중간 강변에 자리한 펍에서 즐기는 시원한 비어라오 한 잔과 클러빙(clubbing)까지, 온갖 별세계가 펼쳐진다.

    어린아이처럼 튜브에 앉아 줄을 잡고 동굴을 탐험하는 액티비티도 방비엥을 즐기는 색다른 맛 중 하나다. 먼저 쏭강 지류에 있는 ‘탐남(Tham Nam) 동굴’은 수심이 깊지 않아 튜빙을 즐기기에 좋다. 암흑의 동굴에서 이마에 두른 헤드 랜턴으로 시야를 비추고, 튜브에 누운 채 줄에 의지해 석회석 종유 동굴의 신비한 모습을 감상하는 과정이 오싹하면서도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다만 옷이 물에 젖을 수 있으니 여벌옷을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면 찾아온다는 비밀스러운 ‘탐짱(Tham Chang) 동굴’도 가장 많이 찾는 동굴 중 하나다.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는데 입구를 중심으로 가운데에 좌불상, 오른쪽에는 와불상이 있고, 왼쪽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포탄이 걸려 있다. 이 동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코끼리상인데, 상아 형태까지 완전히 갖추고 있어 무척이나 신비롭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기이한 종유석과 석순 탐험을 마치고 나왔다면 왼쪽 길을 쭉 따라 전망대로 향하자. 이곳에서는 쏭강과 어우러진 방비엥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굴 탐험에서 스릴을 느꼈다면 래프팅이나 카야킹으로 동굴을 탐사하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자. 천연수영장 ‘블루라군(Blue Lagoon)’도 방비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방비엥에서 서쪽으로 8㎞가량 떨어진 블루라군은 사실 ‘탐푸캄(Tham Phu Kham) 동굴’ 입구를 흐르는 작은 물웅덩이다. 신비한 에메랄드빛의 물과 이국적인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어 수영과 다이빙, 튜빙 등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방비엥에서 이곳까지는 삼륜차 ‘툭툭’과 개조식 트럭 ‘썽태우’를 타고 갈 수 있는데, 비포장도로로 다소 고생스럽지만 물에 들어가는 순간 땀과 먼지, 피로까지 모두 한 방에 싹 날아간다.

    이색적인 새벽 승려 탁발

    승려들의 탁발 행렬로 하루를 시작하는 루앙프라방. [GettyImages]

    승려들의 탁발 행렬로 하루를 시작하는 루앙프라방. [GettyImages]

    방비엥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된 라오스 제2도시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루앙프라방은 해발 700m 고지대로, 라오스 북서부 메콩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비포장이거나 도로가 파인 구간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니 기차로 이동하는 편이 낫다. 루앙은 ‘큰, 위대한’, 프라방은 ‘황금 불상’이라는 뜻이다. 1353년 라오스 첫 왕조인 ‘란쌍(Lan Xang) 왕국’의 수도가 된 이후 18세기까지 라오스 수도였던 이 도시는 라오스 전통 유산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 문화가 어우러져 느긋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왕궁박물관’ 앞에 있는 ‘푸씨산’(Mount Phousi: 328개 계단을 밟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산)에 올라 도시 전체를 조망하다 보면 왜 이 도시가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손꼽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대 왕국의 우아함과 유럽의 고풍스러운 감성을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올드타운’(여행자 거리)을 걸어보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루앙프라방의 하루는 새벽 시간 승려들의 탁발 행렬로 시작된다. ‘탁발’(Tak Bat·탁밧)은 승려들이 지켜야 하는 규율 중 하나로 음식을 공양받아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종교의식이다. 또한 탁발은 불교의식을 넘어 라오스인들의 생활이자 경건한 풍습이기도 하다. 어둠이 가시는 새벽 6시가 되면 주홍색 장삼을 걸친 맨발의 승려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무릎을 꿇고 열을 맞춰 앉은 신도들은 승려들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공양한다. 탁발은 행렬 끝자락에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의 바구니에 승려들이 공양받은 음식을 나눠주면 끝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모습을 보려고 전 세계 여행객이 루앙프라방을 방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자도 참여 또는 참관할 수 있는데, 다만 조용한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분주한 일상에 치여 사는 여행자들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가장 라오스다운 나눔의 숨결을 체험하며 평생 잊지 못할 경건함을 느낀다.



    아름다운 사원이 많은 것도 루앙프라방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시 곳곳에 80여 개 사원이 있는데, 그중 꼭 가봐야 할 사원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곳이 바로 ‘왓 씨엥통(Wat Xieng Thong)’이다. 메콩강과 남칸강(메콩강 지류)이 만나는 여행자 거리 북쪽에 자리한 왓 씨엥통 사원은 루앙프라방의 화려했던 옛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16세기 라오스 건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왓 씨엥통 사원은 ‘생명의 나무’로 불리는 붉은색 벽면의 정교한 유리 모자이크가 보는 각도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더욱 유명하다.

    천연 풀장 꽝씨폭포

    계단식으로 물이 흐르는 에메랄드빛 꽝씨폭포. [GettyImages]

    계단식으로 물이 흐르는 에메랄드빛 꽝씨폭포. [GettyImages]

    온종일 평온하고 조용한 풍경 때문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졌다면 ‘꽝씨폭포(Tat Kuang Si)’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올드타운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1시간가량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데, 에메랄드빛 폭포가 층층이 흐르는 모습이 신비롭고 이색적이다. 오랜 세월 침식 작용으로 생긴 천연 풀장으로, 느긋하게 물놀이를 즐기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간다.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하면 루앙프라방의 명물 ‘몽족 야시장’으로 향하자. 야시장에는 라오스 최대 소수 민족인 ‘몽족인’의 독특한 수공예품과 현지 먹거리가 가득하다. 잘만 고르면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건질 수 있다. 동남아 제일의 맥주 비어라오와 함께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즐겨보자.
    복잡한 도심이 아닌 태곳적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고 싶지 않은가. 그런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면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선사하는 평화로운 나라, 라오스로 지금 바로 떠나보면 어떨까.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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