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스카치위스키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최소 3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하고 증류부터 숙성, 병입까지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마쳐야 하는 것 등이다. 또 알코올 도수는 최소 40도 이상이어야 한다.
당시 조지 총리의 명분은 간단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주말에 술을 마시면 그다음 주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데, 금주를 통해 이를 방지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반(反)위스키법’은 오히려 위스키 산업의 성장을 도왔다. 3년 넘게 오크통 속에 묵혀 있으면서 모든 스카치위스키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수분과 알코올이 회합해 목 넘김이 부드러워지고 알코올이 증발해 본연의 맛이 응축되면서 제대로 된 숙성 위스키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까지 위스키는 대부분 자금 회전을 위해 몇 개월간 짧게 숙성시키거나 증류 후 바로 판매됐다. 당연히 맛은 거칠었고 향미는 부족했다. 그래서 위스키에 다양한 허브를 넣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3년 저장’이라는 법이 스코틀랜드에 여느 유럽 국가들의 증류주와는 다른 프리미엄 스카치 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장으로 온 미군이 이런 숙성 위스키를 마셨고,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스카치위스키 시장은 날개를 달게 됐다.
조지 총리는 40도라는 스카치위스키 도수도 의도치 않게 법제화했다. 당시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4.6~48.6%였는데, 그는 1915년 위스키 도수를 35도로 낮춰서 판매하도록 법률을 개정하고, 이후 최대 28%까지 낮추는 법을 추진했다. 이유는 원가 절감이었다. 위스키 원료는 곡물, 맥아 등인데, 도수를 낮추면 물을 많이 넣어 남는 곡물을 군수품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스키 업체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도수를 이렇게 낮추면 맛과 향이 떨어져 위스키가 아니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정부와 위스키 업체들이 최종적으로 타협한 알코올 도수가 40도였다.
와인을 증류한 프랑스 코냑 등도 현재 ‘V.O(Very Old)’ ‘V.S.O.P(Very Superior Old Pale)’ ‘X.O(Extra Old)’ 등으로 구분해 숙성 표시를 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준이 정식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이다. 의도는 다르지만 정부 법제화 시기로만 따졌을 때 위스키가 짧게는 50년, 길게는 70년 빠른 셈이다.
참고로 40이라는 숫자는 서양 역사와 문화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40년간 광야에서 헤맸으며, 모세와 예수는 40일간 단식하면서 기도했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재위 기간이 40년이었던 것 등 기독교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숫자다. 흑사병이 창궐한 시기 동방에서 들어온 배를 40일 동안 하선하지 못하게 한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격리라는 뜻의 영단어 ‘quarantine’의 어원은 40일이라는 뜻이며, 당시 위스키는 흑사병의 소독 및 치료제로 사용됐다. 서양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완벽’, 사실상 ‘100’과 유사한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따져볼 때 스카치위스키는 뛰어난 맛과 품질뿐 아니라, 40도라는 도수로 서양에서 더 큰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스카치위스키로 불리기 위해서는 3년 이상 숙성 등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다. [GETTYIMAGES]
英 총리 “위스키 탓 노동 생산성 악화”
왜 이런 조건들이 생긴 걸까. 시작은 주세와 관련 있다. 술에 세금이 붙기 시작한 17~19세기 초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으로 숨어든 양조업자들은 위스키를 동굴에 몰래 저장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숙성 개념이 등장했는데, 중요한 것은 3년이라는 기간이다. 술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당시 영국 총리(재무대신)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 잠수함보다 위스키가 국민에게 더 해롭다면서 모든 위스키를 제조 후 3년간 팔지 말라는 법률을 제정했다.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조 후 3년간 위스키 판매를 금지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재무대신). [영국 국립 공문서관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반(反)위스키법’은 오히려 위스키 산업의 성장을 도왔다. 3년 넘게 오크통 속에 묵혀 있으면서 모든 스카치위스키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수분과 알코올이 회합해 목 넘김이 부드러워지고 알코올이 증발해 본연의 맛이 응축되면서 제대로 된 숙성 위스키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까지 위스키는 대부분 자금 회전을 위해 몇 개월간 짧게 숙성시키거나 증류 후 바로 판매됐다. 당연히 맛은 거칠었고 향미는 부족했다. 그래서 위스키에 다양한 허브를 넣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3년 저장’이라는 법이 스코틀랜드에 여느 유럽 국가들의 증류주와는 다른 프리미엄 스카치 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장으로 온 미군이 이런 숙성 위스키를 마셨고,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스카치위스키 시장은 날개를 달게 됐다.
조지 총리는 40도라는 스카치위스키 도수도 의도치 않게 법제화했다. 당시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4.6~48.6%였는데, 그는 1915년 위스키 도수를 35도로 낮춰서 판매하도록 법률을 개정하고, 이후 최대 28%까지 낮추는 법을 추진했다. 이유는 원가 절감이었다. 위스키 원료는 곡물, 맥아 등인데, 도수를 낮추면 물을 많이 넣어 남는 곡물을 군수품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스키 업체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도수를 이렇게 낮추면 맛과 향이 떨어져 위스키가 아니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정부와 위스키 업체들이 최종적으로 타협한 알코올 도수가 40도였다.
서양에서 숫자 ‘40’은 남다른 의미
이때 정해진 스카치위스키 알코올 도수는 훗날 상한선이 아닌 하한선이 됐다. 1988년 ‘스카치 위스키법(Scotch Whisky Act of 1988)’ 제정 당시 스카치위스키에 함유돼야 하는 알코올 도수가 최소 40%로 정해진 것이다. 원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스카치위스키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고자 한 전략이었다. 이후 스카치위스키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생산을 남발해 희소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 고급화를 꾀한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전 세계 위스키 수출 규모는 한 해에 약 10조 원 수준으로 올라섰고, 한 병에 35억 원이 넘는 엄청난 존재감의 위스키 제품도 등장했다.
와인을 증류한 프랑스 코냑 등도 현재 ‘V.O(Very Old)’ ‘V.S.O.P(Very Superior Old Pale)’ ‘X.O(Extra Old)’ 등으로 구분해 숙성 표시를 하고 있다. 다만 이런 기준이 정식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이다. 의도는 다르지만 정부 법제화 시기로만 따졌을 때 위스키가 짧게는 50년, 길게는 70년 빠른 셈이다.
참고로 40이라는 숫자는 서양 역사와 문화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40년간 광야에서 헤맸으며, 모세와 예수는 40일간 단식하면서 기도했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재위 기간이 40년이었던 것 등 기독교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숫자다. 흑사병이 창궐한 시기 동방에서 들어온 배를 40일 동안 하선하지 못하게 한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격리라는 뜻의 영단어 ‘quarantine’의 어원은 40일이라는 뜻이며, 당시 위스키는 흑사병의 소독 및 치료제로 사용됐다. 서양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완벽’, 사실상 ‘100’과 유사한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따져볼 때 스카치위스키는 뛰어난 맛과 품질뿐 아니라, 40도라는 도수로 서양에서 더 큰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