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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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혁명, 네덜란드 약술 ‘진’ 영국으로 보내다

[명욱의 술기로운 세계사] 네덜란드 귀족 윌리엄 3세 영국 국왕 오른 게 계기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09-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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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Gin)은 토닉 등 탄산수에 섞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진토닉’으로 자주 마신다. [GETTYIMAGES]

    진(Gin)은 토닉 등 탄산수에 섞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진토닉’으로 자주 마신다. [GETTYIMAGES]

    한국의 대표 약술이라고 하면 아마 인삼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주에 인삼을 침출해 인삼의 여러 약용 효과가 술에 담기게 한 약술이다. 알코올이 몸에 빠르게 흡수되는 만큼 인삼주로 마셨을 때 인삼의 약용 효과도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런 약술 문화가 한국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 서양도 이미 로마시대부터 약술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가장 많이 상품화된 술이 바로 ‘진(Gin)’이다.

    시대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진은 해열 및 이뇨작용을 돕는 노간주나무 열매(주니퍼베리·Juniper Berry)를 사용한 약술이다. 중세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었고, 1660년대 네덜란드 의학자 실비우스에 의해 좀 더 체계화됐다. 그는 노간주나무 열매의 효능이 몸에 더 빨리 흡수되도록 맥주를 증류한 술에 열매를 넣었고, 초기에는 이를 약국에서 판매했다.

    재미있는 건 영국 명예혁명을 계기로 네덜란드 진이 영국으로 가게 됐다는 사실이다. 명예혁명 당시 의회와 대립하던 왕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을 가게 됐고, 뒤이어 네덜란드 귀족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 자리에 올랐다. 윌리엄 3세는 이전 왕인 제임스 2세가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기 때문에 프랑스 코냑(브랜디)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프랑스산 코냑 수입에도 제약을 걸었다.


    윌리엄 호가스의 목판화 ‘진 골목’. 진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영국인들 모습을 담았다. [위키피디아]

    윌리엄 호가스의 목판화 ‘진 골목’. 진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영국인들 모습을 담았다. [위키피디아]

    이후 새로운 술에 대한 수요가 영국에서 들끓자 네덜란드 진이 자연스럽게 영국으로 진출하게 됐다. 18세기 영국에서 진이 엄청나게 유행했다. 면허 없이도 생산이 가능했고, 이에 시중에는 조악한 제품도 많았다. 증류소가 수백 개 이상 생겨나 가격 경쟁을 하다 보니 가격도 계속해서 내려갔다. 당시 진 가격은 병당 1페니 정도로, 한화로 환산하면 3000~4000원 수준이다. 이 정도 가격에 도수 높은 증류주를 살 수 있었으니 대체 얼마나 많이 마셨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이때 영국인은 일주일 평균 1.2L의 진을 마셨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결국 진은 영국에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진과 관련해서는 “1페니면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18세기 전반까지 영국은 ‘진에 미쳐버린 시대’를 보냈고, 엄청난 사회적·의학적 문제가 야기됐다.

    결국 영국 정부는 진에 붙는 주세를 높였고 소매상에 붙이는 세금도 4배가량 올리려 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줬다 뺏는다’는 느낌이 강했고, 이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가 계속 불안정했다.

    이에 정부는 세금을 다시 내리되 허가받은 곳에서만 진을 팔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런던 드라이 진’이다. 진에는 노간주나무 열매와 함께 향료 또는 설탕이 첨가돼 술맛이 단맛에 많이 가려지는데, 주조 기술이 좋아지면서 단맛이 적고 깔끔한 런던 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티니가 런던 진으로 만든 대표적인 칵테일이다. 즉 런던 진은 만들어진 지역이 아닌, 공법에 붙은 이름이라 서울에서 만들어도 런던 진이 될 수 있다.

    런던 진, 진토닉 탄생시켜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는 진을 ‘예네버르(Jenever)’라고 불렀는데, 이는 주니퍼베리의 프랑스 말인 ‘주니에브르’에서 유래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진은 영국식 영어 발음인 ‘주네브’로 불렸다. 그런데 듣다 보니 스위스 도시 제네바(Geneva)와 이름이 비슷했다. 그래서 제네바의 앞 글자를 따 ‘젠’이라 불렀고, 이후 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진은 진토닉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것 또한 약술로 시작했다. 19세기 진은 영국 군인에게 주로 공급되는 주류였다. 당시 영국의 대표 식민지는 인도로, 말라리아가 극성인 곳이었다. 영국 군인에게 지급되던 말라리아 치료제는 ‘키니네’였는데, 그 맛이 너무 강해 키니네를 토닉 등 탄산수와 섞어 진에 넣어 마신 것이 바로 진토닉이 됐다. 즉 진토닉도 전염병 예방을 위해 마신 술인 것이다. 참고로 토닉은 ‘힘을 내게 하다’ ‘톤을 높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한국의 자양강장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영국에서 많이 마시고, 또 영국 군인의 술로도 활용되면서 진은 전 세계를 누볐다. 또 바(bar) 문화가 발전하면서 칵테일 베이스가 되는 술로도 많이 사용됐다. 무엇보다 독한 진을 그대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탄산수나 칵테일에 넣어 알코올 도수를 희석한 뒤 편하게 즐기게 한 것이 진의 세계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영국 사회에 폐해를 안기도 했던 진이지만 지나친 과음을 막았기에 그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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