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가 4월 3일 도립 진주의료원 휴업을 밀어붙였다. 1개월 휴업 후 폐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휴업 조치로 일부 진행하던 의료행위마저 전면 중단된 것은 물론, 관계자 외에는 병원 출입이 통제됐다. 윤성혜 경남도 보건복지국장은 “진주의료원은 서민을 위한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강성귀족노조의 병원이 돼 도민 혈세를 더는 계속 투입할 수 없다”며 이 같은 방침을 발표했다. 이날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의료법 위반 교사혐의로 고발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항의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1개월 휴업 조치를 발표하기 하루 전인 4월 2일, 이미 환자 3/4 정도가 인근 반도병원 등으로 후송 조치되거나 퇴원 수속을 밟은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환자들은 진주의료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장기입원 환자나 노인병동 환자였다. 다른 병원으로 간 환자는 대부분 경남도의 독촉 아닌 독촉을 수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한 병원이 어디 있나”
“어휴, 여러 차례 전화가 왔죠. 곧 문 닫는다고, 다른 병원 가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냥 있겠다고 했어요. 시설 이렇게 좋고 병원비도 싼데 뭐 하러 싸 짊어지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요.”
병원 복도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휠체어를 밀다 손사래 치며 말을 이었다.
“같이 입원해 있다 다른 병원으로 간 사람도 어제 전화로 불편해 못 있겠다더만. 도청에서 직원이라는 사람이 음료수 사들고 찾아왔대요. 어디 불편하신 데 없느냐고. 불편한 데가 왜 없겠어요. 여기 좀 둘러봐요. 공기 좋지, 병원 넓지, 시설 좋지, 간호사들 친절하지. 진주시내에 이만한 병원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딴 병원 가서 좋다는 사람 하나도 못 봤어요.”
침상만 덩그러니 남은 병실에서 홀로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짐을 꾸리는 서해석(66) 씨. 한눈에도 병색이 심각해 보이는 그는 자신을 고혈압과 당뇨, 간경화, 만성췌장염, 관절염 등을 앓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진주의료원 30년 단골(?)이다. 이번에는 관절이 급속히 나빠진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입원했다. 이미 의사들이 속속 빠져나가는 상황이라 진주의료원에서도 그를 받아주기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진주의료원 아니면 갈 데가 없다고 우겨 겨우겨우 입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휑하죠?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아무나 못 들어왔어요. 줄서서 대기표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들어왔는데, 진주의료원 장사 안 돼서 문 닫는다는 얘기 다 거짓부렁이여.”
최근 백내장으로 뿌옇게 변한 그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사실, 여기 불쌍한 사람들 모이는 데 아니오. 이 병원비 청구서 좀 보라고. 내가 12일 입원했는데 2만6000원, 식대밖에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치료받고 걸어서 다시 병원문 나설 수 있는 거지. 아마 최근 여기서 나가 다른 병원으로 간 사람들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거요. 홍준표 도지사가 그랬대지? 열차는 달리고 있다고. 왜 도민들 머리 위에 레일을 깔고 열차를 달려. 그 레일, 도청 위에도 깔아보라 그래.”
그는 최근 진주의료원 주변 땅값 시세가 많이 오른 것이 진주의료원 폐업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 생각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당한 재산가인 홍 도지사가 이런 노른자위 땅을 그냥 둘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진주의료원이 자그마치 103년 된 병원이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이렇게 운영했으면 진즉에 망했지. 원래 지방의료원이라는 게 비영리로 운영하는 건데, 그걸 똑같이 돈 벌어들이는 병원으로 만들려는 게 어불성설 아니겠소. 사실 예전에 있던 병원 자리도 좋았어. 근데 낡고 오래됐다고 5년 전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라고. 시설 좋게 지어놓고 나니 주변 땅값이 죄다 오르는 거지. 5년 사이 이 주변에 아파트 들어선 거 봐요. 그 전에는 여기 다 허허벌판이었어.”
그는 또다시 아프면 더는 갈 곳이 없을까 봐 불안해했다.
20여 년 동안 진주의료원을 다녔다는 이상갑(79) 씨. 집도 가족도 없이 홀로 긴 세월을 심장병과 싸워온 그에게 진주의료원은 집과 같은 곳이었다.
“갑자기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지거나 그러긴 해도 여기 있는 분들처럼 몸을 못 쓰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괜찮을 때는 환자들 돕고 그렇게 지냈어요. 미안하고, 고맙고 하니까. 개인병원 가면 나 같은 사람은 입원해서 치료도 못 받아요. 돈도 없고….”
홍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 것은 2월 26일. 발표가 있기 전까지 진주의료원 내부적으로는 누구도 폐업 조짐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원 내부 당사자들과의 의견 조율은 물론, 폐업을 위해 밟아야 할 법적 절차조차 모두 생략한 채 홍 도지사가 취임한 직후 바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물론, 직원들도 폐업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측 분노는 여기서 시작됐다.
도청과 노조, 갈등의 골 심화
“우리를 강성노조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그냥 평범한 간호사, 평범한 의료인이었습니다. 만일 폐업 발표 전 우리에게 의료원 경영 부실에 대한 대책을 함께 논의할 여지를 주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았다면 아마 대부분 경남도의 뜻을 수용했을 겁니다. 도에선 진주의료원이 노조 배만 불리는 곳이라 선전하는데, 우리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8개월가량 임금체불을 감내하며 일했습니다. 토요일 무급 근무도 자진해서 하기로 했고요. 지금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으면 거리로 내몰리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여기 환자들 보세요. 루게릭병 환자도 있고, 질식 상태로 입원해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연명조차 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장기입원 환자의 경우 일반 병원에서 입원 자체를 거부합니다. 의료수가체계상 돈이 안 되거든요. 이런 분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지막 보루가 지방의료원입니다. 일반 병원과 똑같은 잣대로 돈을 벌어들이려면 이런 분들 다 내쫓고 과잉 진료를 해야죠.”
서수경 외래수간호사가 진주의료원에 입사한 것은 1988년. 그는 경남도의 폐업 발표 후 삭발을 감행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직장에서 일했는데, 살다 보니 이런 황망한 일도 생긴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주의료원의 부채 요인은 다양한데, 5년 전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늘어난 부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이 내놓은 ‘2012년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34개 지방의료원의 평균 건축 경과 연수는 19년이며, 건축 경과 연수가 21년 이상인 지방의료원이 전체 34개 가운데 15개로 44.1%를 차지했다. 건축 경과 연수가 30년을 초과한 지방의료원도 7개(20.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축 경과 연수가 10년 이하인 지방의료원은 12개(35.2%)에 불과했다. 진주의료원이 여기에 속한다.
노조 측은 5년 전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로 했을 때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의료원 내부적으로는 신축 건물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채 증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의료원장이 교체되는가 하면, 원장이 대부분 의료원 경영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정적인 운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진주의료원 노조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도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려고 지난해 10월 15년 이상 장기근무자 31명을 순차적으로 명예퇴직시켰고 연차수당 절반 삭감, 토요일 무급 근무, 병상 수에 따른 인력 비율 축소 등의 내용에 합의한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2011년 전국 최초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 개선으로 2011년 기준 환자 만족도가 평균 84점을 기록해, 다른 공공병원에 비해 높았다고 한다. 또 의료급여 환자 비중도 13.2%로, 도내 민간병원(7.4%)보다 높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홍 도지사가 독단으로 폐업 조치를 결정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새로운 의료시설 도입 모색
그렇다면 경남도의 주장은 어떨까. 경남도 복지노인정책과 발표에 따르면, 의사와 간호사 등 진주의료원 근로자 임금은 동일한 종합병원급 민간의료기관 의사와 간호사에 비해 훨씬 높다. 특히 장기근속자 연봉은 민간의료기관보다 1100만 원이나 많다는 것이 경남도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진주의료원의 누적부채 279억 원은 상당 부분 고임금자들의 인건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남도는 노조 측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한다. 2011년 임금총액 대비 5.5% 인상한 사례가 있으며, 2012년 임금체불과 관련해 지방노동청에 원장을 고발한 사실만 보더라도 고통분담을 자진 감수했다는 주장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토요일 무급 근무 역시 노조가 말로만 약속했을 뿐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남도는 부채를 해결하려고 16억 원을 지원하기까지 했다는 것. 공공성이라는 명목하에 지출이 해마다 증가하는데, 그중에서도 인건비 비중이 높아 홍 도지사가 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도민 혈세를 낭비할 수 없어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홍 도지사의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3월 20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폐업 결정에 앞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정상화 방안이 없는지 논의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도 홍 도지사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규환 경남도의원은 공론화와 내부 의견 수렴 과정을 생략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진주의료원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도 관계자에 따르면,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을 폐업한 후 매각하고 그 대신 새로운 형태의 의료시설을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폐업이 확정되려면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가 통과돼야 하는 등 법적 절차가 남아 있는 데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유지현)이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에 총력을 쏟겠다고 선언한 만큼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1개월 휴업 조치를 발표하기 하루 전인 4월 2일, 이미 환자 3/4 정도가 인근 반도병원 등으로 후송 조치되거나 퇴원 수속을 밟은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환자들은 진주의료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장기입원 환자나 노인병동 환자였다. 다른 병원으로 간 환자는 대부분 경남도의 독촉 아닌 독촉을 수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한 병원이 어디 있나”
“어휴, 여러 차례 전화가 왔죠. 곧 문 닫는다고, 다른 병원 가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냥 있겠다고 했어요. 시설 이렇게 좋고 병원비도 싼데 뭐 하러 싸 짊어지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요.”
병원 복도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휠체어를 밀다 손사래 치며 말을 이었다.
“같이 입원해 있다 다른 병원으로 간 사람도 어제 전화로 불편해 못 있겠다더만. 도청에서 직원이라는 사람이 음료수 사들고 찾아왔대요. 어디 불편하신 데 없느냐고. 불편한 데가 왜 없겠어요. 여기 좀 둘러봐요. 공기 좋지, 병원 넓지, 시설 좋지, 간호사들 친절하지. 진주시내에 이만한 병원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딴 병원 가서 좋다는 사람 하나도 못 봤어요.”
침상만 덩그러니 남은 병실에서 홀로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짐을 꾸리는 서해석(66) 씨. 한눈에도 병색이 심각해 보이는 그는 자신을 고혈압과 당뇨, 간경화, 만성췌장염, 관절염 등을 앓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진주의료원 30년 단골(?)이다. 이번에는 관절이 급속히 나빠진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입원했다. 이미 의사들이 속속 빠져나가는 상황이라 진주의료원에서도 그를 받아주기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진주의료원 아니면 갈 데가 없다고 우겨 겨우겨우 입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휑하죠?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아무나 못 들어왔어요. 줄서서 대기표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들어왔는데, 진주의료원 장사 안 돼서 문 닫는다는 얘기 다 거짓부렁이여.”
최근 백내장으로 뿌옇게 변한 그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사실, 여기 불쌍한 사람들 모이는 데 아니오. 이 병원비 청구서 좀 보라고. 내가 12일 입원했는데 2만6000원, 식대밖에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치료받고 걸어서 다시 병원문 나설 수 있는 거지. 아마 최근 여기서 나가 다른 병원으로 간 사람들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거요. 홍준표 도지사가 그랬대지? 열차는 달리고 있다고. 왜 도민들 머리 위에 레일을 깔고 열차를 달려. 그 레일, 도청 위에도 깔아보라 그래.”
그는 최근 진주의료원 주변 땅값 시세가 많이 오른 것이 진주의료원 폐업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 생각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당한 재산가인 홍 도지사가 이런 노른자위 땅을 그냥 둘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진주의료원이 자그마치 103년 된 병원이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이렇게 운영했으면 진즉에 망했지. 원래 지방의료원이라는 게 비영리로 운영하는 건데, 그걸 똑같이 돈 벌어들이는 병원으로 만들려는 게 어불성설 아니겠소. 사실 예전에 있던 병원 자리도 좋았어. 근데 낡고 오래됐다고 5년 전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라고. 시설 좋게 지어놓고 나니 주변 땅값이 죄다 오르는 거지. 5년 사이 이 주변에 아파트 들어선 거 봐요. 그 전에는 여기 다 허허벌판이었어.”
그는 또다시 아프면 더는 갈 곳이 없을까 봐 불안해했다.
20여 년 동안 진주의료원을 다녔다는 이상갑(79) 씨. 집도 가족도 없이 홀로 긴 세월을 심장병과 싸워온 그에게 진주의료원은 집과 같은 곳이었다.
“갑자기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지거나 그러긴 해도 여기 있는 분들처럼 몸을 못 쓰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괜찮을 때는 환자들 돕고 그렇게 지냈어요. 미안하고, 고맙고 하니까. 개인병원 가면 나 같은 사람은 입원해서 치료도 못 받아요. 돈도 없고….”
홍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 것은 2월 26일. 발표가 있기 전까지 진주의료원 내부적으로는 누구도 폐업 조짐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원 내부 당사자들과의 의견 조율은 물론, 폐업을 위해 밟아야 할 법적 절차조차 모두 생략한 채 홍 도지사가 취임한 직후 바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물론, 직원들도 폐업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측 분노는 여기서 시작됐다.
도청과 노조, 갈등의 골 심화
“우리를 강성노조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그냥 평범한 간호사, 평범한 의료인이었습니다. 만일 폐업 발표 전 우리에게 의료원 경영 부실에 대한 대책을 함께 논의할 여지를 주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았다면 아마 대부분 경남도의 뜻을 수용했을 겁니다. 도에선 진주의료원이 노조 배만 불리는 곳이라 선전하는데, 우리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8개월가량 임금체불을 감내하며 일했습니다. 토요일 무급 근무도 자진해서 하기로 했고요. 지금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으면 거리로 내몰리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여기 환자들 보세요. 루게릭병 환자도 있고, 질식 상태로 입원해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연명조차 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장기입원 환자의 경우 일반 병원에서 입원 자체를 거부합니다. 의료수가체계상 돈이 안 되거든요. 이런 분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지막 보루가 지방의료원입니다. 일반 병원과 똑같은 잣대로 돈을 벌어들이려면 이런 분들 다 내쫓고 과잉 진료를 해야죠.”
서수경 외래수간호사가 진주의료원에 입사한 것은 1988년. 그는 경남도의 폐업 발표 후 삭발을 감행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직장에서 일했는데, 살다 보니 이런 황망한 일도 생긴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주의료원의 부채 요인은 다양한데, 5년 전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늘어난 부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이 내놓은 ‘2012년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34개 지방의료원의 평균 건축 경과 연수는 19년이며, 건축 경과 연수가 21년 이상인 지방의료원이 전체 34개 가운데 15개로 44.1%를 차지했다. 건축 경과 연수가 30년을 초과한 지방의료원도 7개(20.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축 경과 연수가 10년 이하인 지방의료원은 12개(35.2%)에 불과했다. 진주의료원이 여기에 속한다.
노조 측은 5년 전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로 했을 때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의료원 내부적으로는 신축 건물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채 증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의료원장이 교체되는가 하면, 원장이 대부분 의료원 경영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정적인 운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진주의료원 노조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도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려고 지난해 10월 15년 이상 장기근무자 31명을 순차적으로 명예퇴직시켰고 연차수당 절반 삭감, 토요일 무급 근무, 병상 수에 따른 인력 비율 축소 등의 내용에 합의한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2011년 전국 최초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 개선으로 2011년 기준 환자 만족도가 평균 84점을 기록해, 다른 공공병원에 비해 높았다고 한다. 또 의료급여 환자 비중도 13.2%로, 도내 민간병원(7.4%)보다 높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홍 도지사가 독단으로 폐업 조치를 결정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새로운 의료시설 도입 모색
진주의료원 로비를 닦는 한 청소원 뒤로 노조의 폐업 철회 구호가 보인다.
그리고 경남도는 노조 측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한다. 2011년 임금총액 대비 5.5% 인상한 사례가 있으며, 2012년 임금체불과 관련해 지방노동청에 원장을 고발한 사실만 보더라도 고통분담을 자진 감수했다는 주장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토요일 무급 근무 역시 노조가 말로만 약속했을 뿐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남도는 부채를 해결하려고 16억 원을 지원하기까지 했다는 것. 공공성이라는 명목하에 지출이 해마다 증가하는데, 그중에서도 인건비 비중이 높아 홍 도지사가 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도민 혈세를 낭비할 수 없어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홍 도지사의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3월 20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폐업 결정에 앞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정상화 방안이 없는지 논의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도 홍 도지사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규환 경남도의원은 공론화와 내부 의견 수렴 과정을 생략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진주의료원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도 관계자에 따르면,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을 폐업한 후 매각하고 그 대신 새로운 형태의 의료시설을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폐업이 확정되려면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가 통과돼야 하는 등 법적 절차가 남아 있는 데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유지현)이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에 총력을 쏟겠다고 선언한 만큼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