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8

..

삶이 행복한 땅콩집 짓기 소리 없는 파장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05-23 11: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삶이 행복한 땅콩집 짓기 소리 없는 파장
    건축기자 구본준과 건축설계사 이현준이 함께 집을 지었다. 땅 구입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6675만 원이 들었다. 입지가 좋은 224m²(약 68평)의 대지를 선택, 애초 목표액 3억 원을 다소 초과했지만 105m²(약 32평)에다 2층과 다락방까지 합해 실평수 158m²(약 48평)의 집을 짓고 120m²(약 36평)의 ‘넓은’ 마당을 공유했다.

    이들은 행복한 집의 필수조건은 거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한한 꿈과 상상을 안겨주는 마당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허세와 과시가 아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모든 생활을 부부 중심으로 하고, 집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지어주는 쪽이 교육에 훨씬 좋다면서 말이다. 단열이 잘되는 나무집이라는 멋진 콘셉트의 이 집은 ‘땅콩집’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오랫동안 논의를 했으며 설계에만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집짓기는 아이들 전학을 생각해 여름방학 기간 한 달 만에 뚝딱 해냈다. 그 덕분에 자금이나 임시 거주지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이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한 책이 ‘두 남자의 집짓기’(마티)다.

    건축가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전통 한옥에서 가장 작은 집인 초가삼간쯤 되는 아주 작은 집이라고 한다.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순례하다’(사이)는 20세기 건축계의 거장들이 지은, 작아서 위대한 9채의 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노부모를 위해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지은 ‘어머니의 집’은 60m²(약 18평)이고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세계적인 건축가의 별장인 ‘작은 별장’은 자갈길 위의 13m²(약 4평) 원룸이다. 필립 존슨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세운 ‘타운 하우스’는 마차의 차고로 이용했던 폭 7.5m의 일직선 공간에 중정을 배치해 동서양 정서를 동시에 담은 가느다란 단층집이다. 이 밖에 루이스 칸, 마리오 보타,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게리트 토머스 리트벨트 등의 삶을 담아내는 철학과 해법을 알려준다.



    바야흐로 아파트값 폭락 시대에 집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담은 책들이 잔잔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뉴타운’이 넘쳐나면서 미분양과 무분별한 재개발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집 가진 가난뱅이를 뜻하는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한 시대다. 이런 때 환금성 투자재인 아파트를 포기하고 삶을 즐기는 공간인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집에 대한 획기적인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두 남자의 집짓기’는 2월 말에 출간돼 1만5000부밖에 팔리지 않았음에도 한 필지에 두 집을 나란히 짓는 듀플렉스 홈, 일명 ‘땅콩집’이 벌써 시사용어에 등재될 정도이니 이 책의 파장을 알 수 있다. 땅콩집이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일반인에게도 몇 차례나 공개해야 했다. 지금도 주말에는 30여 명, 평일에도 10여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다.

    폐광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들여보내는 ‘카나리아’처럼 책은 한 사회의 변화 욕망을 가장 먼지 감지할 수 있는 잣대다. 지금껏 집과 건축에 대한 책이 인기를 끌기 어려웠던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런 책의 새삼스러운 인기는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삶이 행복한 땅콩집 짓기 소리 없는 파장
    책은 신조어 하나만 잘 창조하면 대박을 낼 수 있다. 블루오션, 88만원 세대, 디지로그, 알파걸, 워킹푸어 등 사례는 넘쳐난다. 이런 면에서 ‘두 남자의 집짓기’는 제목에 ‘땅콩집’이라는 단어가 분명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바야흐로 책 제목도 임팩트가 강한 이미지로 어필하는 시대니까 말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