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표적인 친미주의자 토크빌은 183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큰 충격을 받았다. 시민들이 자발적인 결사체를 만들고 다양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토크빌에게 비친 미국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델이었다.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주장했듯이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발전은 신뢰를 공유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시민사회 위축과 공동체 붕괴 우려가 종종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기우로 드러나고 있다. 기존 정치권을 심판한 지난해 4월 총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시위는 자발적 결사체와 건강한 공동체의 존재를 입증했다. 네트워크와 웹(web)으로 무장한 2040세대가 주인공이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분산돼 있지만 개방, 수평, 협력, 참여를 통해 집단지성을 표출한다. 웹은 수많은 틈새공간을 창조해 참여와 정치의 다원화를 촉진한다. 웹은 민주주의, 평등, 자유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다. 만약 토크빌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가상현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결사체와 공동체 문화의 확산을 보게 됐을 테니 말이다.
2040세대, 야(野) 후보 순위까지 결정
카카오톡, 텔레그램, 페이스북…. 2040세대는 네트워크와 웹, 메신저가 곧 일상이다. 지난해 말 1000만 명을 불러모은 촛불집회도 온라인 공동체로 연결된 2040세대의 자발적인 참여가 큰 원동력이었다.촛불정국을 거치면서 2040세대의 정권교체 욕구는 70~80%를 넘나든다. 여론조사에서 이 정도의 찬성은 만장일치를 의미한다. 야권 대통령선거(대선) 후보의 순위를 결정하는 것도 2040세대다. 이들의 힘은 설 연휴를 전후로 한 여론조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2월 6일 발표된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32.5%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순이었다(표1 참조). 야권 대선후보 순위는 2040세대의 지지율 순서와 같다. 2월 7일 KBS-연합뉴스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29.8%), 안희정(14.2%), 이재명·안철수(6.3%) 순이었다. 2040세대 지지율과 같은 순서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호남을 기반으로 안철수, 손학규, 정운찬 연대가 가시화하고 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안 지사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수도권에서는 이 시장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권의 비문(비문재인) 포위망이 완성된 것이다. 얼핏 문 전 대표의 위기다. 그러나 비문 포위망에는 결정적인 구멍이 있다. ‘그래도 문재인’을 고수하는 2040세대 때문이다. 2월 9일 발표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월 2주 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19~29세 39.0%, 30대 52.2%, 40대 42.4%를 얻어 누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샤이 박근혜’ 황교안으로 결집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긴 직책을 가진 이 남자의 지지율은 이중적이다. 황 대행 지지율에는 박 대통령 수호천사이기를 바라는 보수층의 희망과 여권 대선후보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황 대행 지지율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전부터 가파르게 상승했다. 1월 24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 황 대행은 지지율 7.9%를 얻어 이재명 성남시장(10.7%)에 이은 4위를 기록했다. 2월 1일 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8.3%까지 올랐다. 반 전 총장(13.1%)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반 전 총장의 하락세는 촛불정국에서 박 대통령, 새누리당과 차별화에 나선 탓도 크다. 귀국 후 1월 중순까지 20%대 초·중반이던 그의 지지율은 대선 불출마 선언 직전인 1월 말 10%대 초·중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반 전 총장에서 빠진 지지율은 황 대행에게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박 대통령 지지층은 성난 민심 때문에 드러내놓고 의사를 밝히지 못한다. 황 대행은 법조인 경력으로나 외모로나 박 대통령과 관계로 볼 때 ‘박 대통령 수호천사’를 자처할 만하다. 박 대통령 지지층이 볼 때 황 대행은 자신들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 지지층의 ‘거울’인 셈이다.
반 전 총장이 2월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황 대행 지지율은 10%를 훌쩍 뛰어넘었다. 2월 2일 발표한 YTN-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 황 대행은 11.8% 지지율을 보였다. 문 전 대표(33.1%), 안 지사(12.3%)에 이은 3위다. 범여권 대선주자로는 1위에 올랐다. 황 대행은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단 하루 만에 범여권 대표성을 확보한 것이다.
황 대행이 범여권 대선후보로 선두에 오른 이유는 대구·경북과 60세 이상의 결집 때문이다. 1월 24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 황 대행은 대구·경북과 60세 이상에서 각각 9.9%, 18.8%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실시된 YTN 여론조사에서는 대구·경북과 60세 이상 지지율이 각각 18.5%, 25.1%로 높아졌다.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전통 보수층이 황 대행 중심으로 결집한 것이다. 대구·경북과 60세 이상은 ‘샤이 박근혜’ 성향이 짙다. 이들은 여전히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황 대행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지만 여권후보 적합도에서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에게 큰 격차로 뒤지고 있다. 2월 2일 YTN-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 유 의원은 적합도 32.9%로 황 대행(19.2%)을 크게 앞섰다. 2월 7일 KBS-연합뉴스 여론조사에서도 유 의원은 20.5% 적합도로 황 대행(15.1%)보다 앞서 있다. 황 대행은 60세 이상에서 큰 격차로 유 의원을 따돌렸지만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대전·세종·충청에서 백중세를 보였다(표2 참조). 황 대행은 여야 대선후보 지지율에서는 유 의원을 크게 앞섰지만 여권후보 적합도에서는 뒤집힌 것이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황 대행의 지지율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현재 보수층은 여권 대선후보보다 박 대통령 수호천사 찾기가 우선인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흐름은 헌법재판소(헌재)가 탄핵결정을 하는 시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만약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한다면 보수층은 그때서야 비로소 여권 대선후보 찾기에 나설 테다. 대선 출마를 결행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황 대행 지지율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