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5월 6일(이하 현지 시간) 지중해에서 작전 중이던 샤를 드골 항공모함 전단을 이란 앞바다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위키피디아
이란, 미국과 협상하며 중국·러시아와 밀착
미국과 이란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구조적 원인은 신냉전이다. 이란은 이번 전쟁 이전부터 중국, 러시아, 북한과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이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에 대량의 미사일과 드론을 공급해 장기전 수행을 도왔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싸우는 이란에 무기와 무기에 필요한 부품 및 재료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이란과 중국,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페트로 달러 체제를 공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란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 중국, 러시아와 함께 석유 위안화 및 루블화 결제를 확대하고 나섰다. 오늘날 미국이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를 지고도 파산하지 않는 핵심 배경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바로 달러로서 기축통화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런 점에서 페트로 달러 체제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은 미국 패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중국 베이징을 찾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왼쪽)이 5월 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란은 외무장관의 러시아·중국 방문 이후 새로운 중동 질서에 대한 언급을 늘리기 시작했다. 5월 6일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지낸 군부 실세 모흐센 레자이 라흐바르(이란 최고 지도자) 군사고문은 친이란 매체 알마야딘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개입을 배제하고 이란 중심의 중동 질서를 만들자”고 선언했다. 같은 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은 결국 전쟁에서 승리해 국제사회에서 더욱 영향력 있는 세계적 행위자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국제 정세를 볼 때 이번 전쟁은 단순히 이란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문제를 넘어 미국의 패권과 직결된 사안이 됐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30일 미국 수뇌부로부터 이란 체제를 끝장내기 위한 ‘최후의 일격’ 계획을 보고받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팔레비 왕조 시절 석유 산업 장악한 미·영·프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이란 전쟁에 줄곧 비판적 입장을 취하던 프랑스와 영국이 5월 초 중동 파병 등 군사 행동에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만약 미국의 추가 군사 조치로 이란 정권이 바뀔 경우 대규모 재건 사업이 벌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사업 이권에 대한 재조정도 이뤄질 테다. 이란은 세계 2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나라다. 영국은 전체 전력 생산의 40%, 프랑스는 20%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천연가스 최대 공국급이었던 러시아와의 관계가 파국을 맞자 이들 나라는 새 공급처를 찾고 있었다.영국과 프랑스는 1953년 이란 격변 상황 때도 ‘숟가락’을 얹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전례가 있다. 20세기 초 이란의 석유 이권은 영국이 틀어쥐고 있었다. 당시 이란은 연간 석유 산업 수익의 84%를 영국에 뜯겼다. 1951년 총선에서 의회 과반을 차지한 국민전선과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1953년 팔레비 국왕의 권한을 박탈하고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다. 이에 영국은 정보기관 MI6를 동원해 모사데크 총리 축출 공작을 벌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개입으로 팔레비 국왕은 파즐롤라 자헤디 장군을 중심으로 한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켜 모사데크 총리를 몰아냈다.

이란 사우스파르스 천연가스전. 뉴시스
먼저 움직인 것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초 샤를 드골 항공모함 전단을 출격시켰다. 동부 지중해에서 요르단과 이라크 주 프랑스군을 위한 방공 작전을 펴는 게 주된 임무였다. 다만 프랑스는 이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방어 목적으로만 항모전단을 운용해 왔다. 그런데 이란이 중동 질서 재편을 선언한 5월 6일, 프랑스는 이 항모전단을 이란 앞바다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을 중심으로 포르방급 방공 호위함 슈발리에, 아키텐급 대잠 호위함 프로방스, 대형 군수지원함 자크 슈발리에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 항모전단은 5월 6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5월 10일 오전 지부티 앞바다를 통과해 아덴만에 진입했다.
자국 선박 미사일 피격도 참은 프랑스가…
프랑스 엘리제궁과 국방부가 밝힌 공식적인 항모 파병 사유는 ‘호르무즈해협 항행의 자유 지원’이었다. 그러나 항모는 공세적 전략 자산이다. 이 정도 전력을 해상교통로 보호 임무로만 투입하는 것은 호르무즈해협의 군사적 위협 수준이나 마크롱 정부의 대이란 정책을 생각해 보면 지나친 측면이 있다. 마크롱 정부는 자국 선박들이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 3월 12일 이라크 주둔 프랑스군 기지에서 이란 샤히드 자폭 드론 공습으로 7명의 사상자가 나왔을 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5월 5일 자국 해운사 소유의 컨테이너선 CMA CGM 샌 안토니오가 이란 지대함 미사일에 얻어맞아 8명의 부상자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그런 프랑스가 이란 앞바다에 항모를 투입하겠다고 나선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도 이란 전쟁의 판도와 국제 정치적 의미가 바뀌었음을 인지한 것이다. 전쟁 막판에서라도 미국의 전쟁 수행을 도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질세라 영국도 항모를 움직였다. 영국은 프랑스가 중동에 항모를 투입하고 사흘 뒤인 5월 9일 키프로스에 있던 45형 방공구축함 드래곤을 중동에 급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드래곤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홍해에 진입했다. 그런데 사실 영국은 이에 앞서 항공모함을 움직였다. 영국 해군에 2척 있는 퀸엘라자베스급 항공모함 중 2번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5월 6일 스코틀랜드 글렌 말란 북부 탄약창에서 탄약 보급을 받고 작전 배치를 시작했다. 이 항모의 공식 임무는 ‘영국과 인접한 북해에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작전 지원’이다. 그런데 출항 당시 3만7000t급 군수지원함 타이드스프링스가 항모 전단에 배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이 이 항모전단을 원거리 원정에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배경이다.
지금 영국이 바다에 띄운 항모 2척과 구축함 2척은 가용한 해군력의 사실상 전부다. 영국 해군은 45형 방공구축함 6척, 23형 호위함 5척을 보유하고 있다. 45형 구축함은 드래곤과 던컨을 제외하면 모두 장기 수리 중이다. 23형 호위함도 현재 북해에서 러시아 군함들과 대치 중인 서머셋을 제외한 4척 중 2척(아이언 듀크·리치먼드)은 주요 장비와 무장이 제거된 채 퇴역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외 2척은 조선소에서 장기 수리를 받고 있다.
해군 주력함 대부분 투입한 영국

영국은 5월 9일 키프로스에 있던 45형 방공구축함 드래곤을 중동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위키피디아
프랑스와 영국이 보낸 함대는 호르무즈해협 해상교통로 보호 작전용으로는 과도한 전력이다. 하지만 함재기 탑재량이나 출격률, 지속 작전 능력 등을 고려하면 미국 항모처럼 이란 내륙을 제대로 공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말 그대로 생색용 전력인 셈이다. 이란 전쟁 발발 후 미국과 그토록 대립하며 각을 세웠던 프랑스와 영국조차 막대한 경제적 이익 창출의 기회 앞에서는 태도가 돌변했다. 국제 정치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계산기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