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 지음/ 시공사/ 284쪽/ 1만4000원
“너울이 아니었다. 해일이었다. 지진이었다. 끝도 알 수 없는 터널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상이 고속도처럼 쫙 펼쳐지기 시작했다. 겪어본 일의 한계를 한참 벗어난 풍경이 날마다 심화되며 반복되는, 지독한 세상의 입구에 그때 막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입구’일 따름이었다.”(149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자영업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긴 싸움이다. 편의점업계는 코로나19 사태발(發) 불경기를 피했다는 시각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봐도 국내 편의점 매출은 4.6% 성장세를 보였다(5월 기준).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저자 봉달호(필명) 씨처럼 매출이 “은유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반 토막” 나고 “나중엔 ‘0% 매출’마저 겪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코로나19 유행 초기)는 미처 몰랐다”(157쪽)며 쓴웃음을 짓는 편의점주도 적잖다. 편의점 카운터에 늘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 혹은 않는다. 이 책은 편의점을 지키는 사람의 세상 사는 이야기다.
저자의 ‘본캐’는 편의점주, ‘부캐’는 작가다. 2018년 ‘매일 갑니다, 편의점’을 출간해 편의점주로서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바 있다. 하루 14시간 근무하는 생활전선 편의점은 ‘본진’, 집필 활동하는 책상은 ‘멀티’인 셈이다. ‘신동아’의 ‘봉달호 편의점 칼럼’ 등 언론사 기고에서 날카로운 세태 비판이 돋보였다면, 이 책에선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일상 속 감정이 공감된다.
1~4부로 구성된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3부 ‘우리, 지킴’이다. 편의점주가 겪은 코로나19 불황을 ‘코로나 일기’ 형태로 담아냈다. 여기서 코로나19는 인건비 압박 탓에 동업자이자 친구, 직원인 이에게 몽니를 부리게 만들고(167~176쪽 ‘깨끗한 것들이 시들어간다’), 아동급식카드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오는 아이들이 유난히 눈에 밟히는(199~205쪽 ‘따뜻한 바이러스’) 위기의 순간이다.
그럼에도 편의점주는 가게를 지킨다. 유모차에 앉아 가게를 처음 찾은 손님이 초등학생이 돼 여자친구 자랑을 참깨 볶듯이 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본다(271쪽). 이웃 회사 과장이 차장이 되고, 부장이 상무가 되는 인생 오르막길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한다(272쪽). 포스(POS: 판매정보관리시스템)기에는 입력할 수 없는 인생 맛이 때론 달게, 때론 짜게 읽히는 책.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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