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윤석열 초청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빈 강단을 바라 보고 있다. [최진렬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도전 선언을 하루 앞둔 6월 28일 자신을 당 부총재이자 자산운용사 대표로 소개한 이모 씨가 말했다. 이씨의 가짜 직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윤석열후원위원회 대표도 맡고 있다. 올해 초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무실도 열었다. 20대 대선을 맞아 한몫 챙기기 위해서다. 19대 대선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후원회를 조직해 사무총장을 맡은 적도 있다. 그는 기자에게 “지금은 적자지만 당시는 꽤 수익이 났다”고 말했다.
“아는 목사가 가자기에…”
이 대표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윤석열 초정 간담회’ 일주일 전 학계 원로 교수가 ‘한미 동맹 필요성 강연회’를 연다면서 한국프레스센터 세미나실을 대여했다. 이씨는 인터넷언론사 측과 인연이 있는 목사 A씨를 통해 해당 언론의 이름으로 공간을 대여했다. 이후 ‘윤석열 초청 간담회’로 해당 행사를 홍보하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한국프레스센터 측은 “주관사에서 윤석열 초청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행사 나흘 전에야 알았다”고 설명했다.150여 명 인파가 이 소식을 듣고 몰려왔지만, 이날 행사에는 윤 전 총장도, 해당 원로 교수도 오지 않았다. 사회자는 “강연자와 윤 전 총장은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다. 그 대신 참석자들에게 자유 발언 기회를 주겠다”며 화제를 돌렸다.
수상해 보였지만 상당수 참석자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 윤 전 검찰총장의 검사 선배인 전직 고검장과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 5선 의원 출신 정치인이 참석해 축사를 했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과 추억부터 정권 비판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축사를 마치자 이들과 명함을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복도가 붐비기도 했다.
다만 이들 역시 이씨를 아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 B씨는 “아는 목사가 한미 동맹 필요성에 대한 강연회를 여니 함께 가자고 해 들렀다. 왔더니 갑자기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해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검장 출신 C씨는 “과거 검사로 일할 때 윤 전 총장과 인연을 맺었다. 관련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는데, 주최 측에서 축사를 부탁해 급하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장 입구에는 모금함과 윤석열후원회 계좌번호가 적힌 이씨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모금함에는 5만 원과 다수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뒤늦게 행사 소식을 접한 윤 전 총장 측은 “해당 행사는 윤 전 총장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후 기자가 이씨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그는 “사실 윤 전 총장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며 “윤 전 총장을 도우려면 후원회를 조직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돈이 든다”고 변명했다.
6월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윤석열 초청 간담회’ 행사장 앞에 모금함이 놓여 있다. [최진렬 기자]
“개개인이 조심해야”
대선을 앞두고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6월 29일 윤 전 총장의 ‘국민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주변에도 지지자 10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여러 후원 모임이 각각 결집해 세를 과시했다. 개중에는 벌써 800여 명 가까운 가입자를 모은 곳도 있다. 이씨 역시 이날 모임에 참여했다. 후원회 가입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씨 같은 사람이 섞여 있을 수 있어 참석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전문가들은 개인이 주의하면서 후원회 활동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후원의 경우 자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를 별도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후원회 관계자가 후원을 목적으로 모금한 돈을 착복할 경우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다. 개개인이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며 주의를 요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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