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호주 함정들이 지난 7월 남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US Navy]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확대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걸쳐 있는 지역에서 법의 지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역내 항행의 자유 등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는 기존의 ‘아시아·태평양’을 ‘인도·태평양’이라는 명칭으로 바꿔 부르고, 태평양사령부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무엇보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와의 동맹과 연대를 통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봉쇄하는 것이다. 특히 이 전략은 인도가 2018년 11월 중국의 인도양 진출에 자극을 받으면서 적극 참여를 결정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4개국의 안보 협력 대화가 시작됐다. 이들 4개국은 2019년 9월엔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에서 처음으로 별도 외교장관 회의를 갖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실현하기 위해 쿼드 구축에 합의했다. 특히 미국은 쿼드를 공식기구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인도·태평양판 나토로 발전시키겠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8월 31일 미국·인도 전략적 파트너십 포럼에서 “쿼드를 나토처럼 집단안보동맹으로 만들 계획”이라면서 “차기 행정부에서라도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 3국까지 포함한 ‘쿼드 플러스(Quad Plus)’도 출범시킬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도 9월 16일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에서 연설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다자협력이 이뤄질수록 좋다”며 나토를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에스퍼 장관은 “나토는 동맹과 파트너 간 집단 안보·협력의 훌륭한 기준”이라며 “그 방향으로 움직여 갈수록 우리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쿼드를 축으로 인도·태평양판 나토를 만들려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질서를 주도하기 위해선 신냉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949년 4월 4일 창설된 나토는 냉전 시기(1946~1991년) 옛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국가들의 군사동맹 핵심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냉전 이후에는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의 핵심으로 활동해왔다. 나토는 현재 29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토를 처음 출범시킨 국가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등 12개국이었다. 나토는 이후 몸집을 불려나가면서 옛 소련의 군사력 팽창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다자안보체가 됐다. 미국은 나토처럼 쿼드도 쿼드 플러스로 단계적으로 확대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자안보협력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군사, 경제적 중요성에 양보 없는 게임판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월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국 정부의 요청에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주장하면서 쿼드 플러스에 동참을 외면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월 25일 미국 비영리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한국은 쿼드 플러스에 가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또 “우리는 특정 현안에 대한 대화에 관여할 의사가 있지만, 만약 그것이 ‘구조화한 동맹’이라면 우리의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밝혀 쿼드 플러스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쿼드 플러스에 동참할 경우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때처럼 경제보복 조치를 내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8월 22일 방한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회담에서 미국 편에 서지 말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북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려면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입장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0월 7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들 및 파트너 국가들과 반중 전선을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 5G 네트워크 및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축 등 ‘반중 전선’에 적극 동참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쿼드 플러스에 참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한 이후 일본에서 쿼드 4개국 외교장관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10월 깜짝 카드(옥토버 서프라이즈)
당초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대화를 통해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 깜짝 카드)를 연출하기 위한 계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북한군이 한국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체까지 훼손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런 기대를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또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시점이 북한의 최대 정치적 이벤트인 노동당 창건 75주년(10월 10일) 이전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 도발 행위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구기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반면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려는 계획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9월 22일)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을 연내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남북대화와 북미협상 모두 장기 교착에 빠져든 가운데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불씨를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9월 28~30일 워싱턴을 방문해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 관리들을 두루 만나 종전선언 설득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비건 부장관은 “한·미 양국이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고,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북한이 이 논의에 반드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종전선언을 포함한 대북 협상 전략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강 장관도 폼페이오 장관에게 남북 관계 개선과 종전선언 추진계획을 적극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10월중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왕 부장이 방한할 경우 문재인 정부에 미국의 쿼드 플러스에 동참하지 말 것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왕 부장은 “어떤 역외 세력(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협박해 자신의 편에 들게 하면서 신냉전을 조성하려고 한다”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판 나토 구축 계획을 강하게 비난해왔다. 중국의 입장에선 미국과 신냉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 국가들이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로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중국은 10월 25일 항미원조전쟁(6·25전쟁) 승전기념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해 북·중 우호관계를 과시할 수도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추석 연휴를 전후해 한반도를 놓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중 양국이 북한과 대화 물꼬를 트고 싶어 하는 한국을 끌어들여 줄세우기 게임을 벌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빅 이벤트 판에 끼든 끼지 않든 관계없이 한중의 줄세우기 물살에 휩쓸려 갈 수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