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드라마 '체르노빌' 사진제공 [왓차플레이]
기자는 그래서 5년 전부터 매년 12월말에 지난 1년간 봤던 책, 영화, 드라마, 공연 중에 베스트5를 선정해 주변 지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왔다. 물론 대표성 따위는 전혀 없다. 한 개인이 접한 작품의 숫자가 많아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뒤늦게 해당 작품을 보고 공감을 표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혼족’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래서 설 연휴를 알차게 보낼 영화와 드라마를 지면으로도 소개해본다.
두 마리 토끼 잡은 영화
영화 '토이스토리 4' 사진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례적으로 좋은 영화가 많은 관객을 사로잡는 현상이 벌어진 것인데 고무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어른들을 위한 리뷰’로 소개 못했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4’도 340만 관객(종합흥행 순위 16위)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겨울왕국2’(1300만) 다음의 성적이다.
토이스토리 연작들은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우주비행사 인형 버즈가 주인 어린이의 사랑 쟁탈전을 벌이다 언젠간 폐기될 장난감의 운명에 눈 뜨고 동병상련의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기본골격의 변주였다. 그러나 4편에선 우디 스스로 주인을 떠나 버려진 장난감들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주체적 존재로 거듭난다. 스스로 버려진 장난감이 되고 그럼으로써 우연히 자신을 발견할 그 누군가를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기엔 3중의 역설이 겹겹이 포진해 있다. 첫째는 헤겔이 말한 주노(主奴)의 역설이다. 고대사회에서 노예의 생사여탈권은 주인의 변덕에 달렸다. 하지만 주인이 노예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어느 순간 주인의 운명이 노예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초등학교 갓 입학한 주인이 플라스틱 포크와 철사로 얼기설기 만든 장난감 같지도 않은 장난감 포키를 찾아주려 애쓰던 우디는 가장 원초적 장난감이라 할 보 핍에 대한 주인의 애착을 보면서 이를 깨닫는다.
둘째는 한국에서 유행곡 제목으로 유명해진 니체의 ‘아모르 파티’의 역설이다. 주인의 관심이 떠나면 폐기될 장난감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주인으로부터 버려질 운명이라면 스스로의 선택으로 버려지겠다.’ 이는 세 번째 역설과도 연결되는데 바로 ‘주체적 전회’다. 주인과 장난감의 관계설정이 객체(주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자신을 필요로 할 주인을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주체적 선택으로 전환한 것이다. 우디의 선택이 더욱 돋보인 것은 주인에 대한 애착을 오랜 동료였던 여자인형 보 핍에게로 전환시킨 점에 있다. 장난감에겐 신이나 다름없는 주인이 아니라 같은 장난감 동료를 위해 ‘버려진 장난감’의 길을 택했기에 더욱 고귀한 것이다.
‘아이리시맨’ 만끽할 3개의 열쇠
영화 '아이리시맨' 사진제공 [IMdB]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지난해 11월 20일 국내 극장에도 걸린 이 영화의 국내관객수는 4만 명이 안 된다. 미국현대사에 대한 이해 없다면 3시간 반이나 되는 상영시간이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기대 없이 영화를 본 사람도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연출력과 최고의 연기력이 만난 작품이다.
영화이해에 도움이 될 3개의 열쇠가 있다. 첫 열쇠는 아이리시맨의 이중성이다. 하나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이탈리안 마피아의 행동대장 역할을 한 주인공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이다. 다른 하나는 마피아의 후원으로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됐지만 마피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아일랜드계 존 F 케네디와 그 동생 로버트 케네디다. 대척점에 선 두 그룹의 점점이 미국 노동운동계의 보스로 불렸던 지미 호파(알 파치노 분)다.
두 번째 열쇠는 어떤 인물이든 자기화하는 알 파치노의 연기와 자신을 지우고 철저히 그 안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드 니로의 연기를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다. 마지막 열쇠는 젊은 시절 드 니로의 갱스터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엔딩과 이 영화의 엔딩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얼핏 잔잔해 보이는 ‘아이리시맨’의 엔딩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통렬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더 와이프’와 ‘두 교황’ vs '벌새‘와 ’가버나움‘
'두 교황' 사진제공 [넷플릭스]
프라이스는 ‘더 와아프’에선 아내 조안(글렌 클로즈 분)의 헌신적 내조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되는 영광을 안지만 그 작품의 숨겨진 비밀을 쫓는 기자 때문에 불편한 조셉 케슬먼 역을 연기한다. 프라이스의 능청맞은 연기도 뛰어나지만 남편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려하면서도 언젠가 그것이 밝혀지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타이틀 롤을 맡아 2019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던 클로즈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두 교황’은 자진 사임으로 바티칸을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후계자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숨겨진 애증의 드라마를 포착한 영화다. 프라이스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난 뒤 더욱 진솔한 신앙인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아 독일 출신 원칙주의자로 개인적 거부감을 딛고 프란치스코의 진가를 인정하게 되는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와 환상의 호흡을 과시한다. 영화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프란치스코의 흑역사는 물론 베일에 싸인 교황 선출 과정을 생생하게 포착해 두 사람의 우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두 번째 그룹의 영화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와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이다.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 가족주의 이념의 허구성을 비판한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커다란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는 열네 살 소녀 은희(박지우 분)가 주인공이다. 1981년생인 김 감독은 서울 강남의 중산층 가정인 은희네 가정의 왜곡된 욕망과 은폐된 폭력을 드러내면서 성수대교 붕괴가 곧 물질적 성공에 취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붕괴와 궤를 같이함을 보여준다.
레바논을 대표하는 여배우인 라바키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가버나움’은 열두 살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 분)이 출생증명서도 없어 학교교육도 못 받고 가족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야했지만 어린 여동생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부모를 법정에 고발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다. 영화의 제목이 예수가 여러 기적을 행했음에도 주민들이 회개하지 않고 믿음을 거부해 멸망할 것이란 예언을 들은 성경 속 도시 이름임을 곱씹어보면 여운은 더욱 짙어진다.
‘체르노빌’과 ‘녹두꽃’
SBS 드라마 '녹두꽃' 사진제공 [SBS]
드라마는 욕망에 눈이 먼 인간들에 의해 진실이 어떻게 은폐되고 왜곡돼 가공할만한 재앙을 낳게 되는지를 절제된 연출력으로 재구성해냈다. 체르노빌이란 공간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사건 전후 그곳을 거쳐 간 무수한 인간군상의 공포 경악 무지 절망 좌절을 엮어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콜라주를 직조해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 어떻게 소름끼치는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분석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 중에는 SBS드라마 ‘녹두꽃’(극본 정현민·연출 신경수, 김승호)을 첫손가락에 꼽겠다. 동학혁명의 주역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사건의 주요무대인 전북 고부군 아전의 자식이자 배다른 형제인 백이강(조정석 분)과 백이현(윤시윤 분)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동학혁명의 의미를 명징하게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백가네 거시기’로 불릴 정도로 개차반 같이 살던 백이강은 전봉준을 만나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게 된다. 반면 옥골선풍의 지식인이었던 백이현은 ‘타락한 양반의 나라’ 조선의 위선적 현실과 ‘야만의 탈을 쓴 문명’ 일본의 꾐에 빠져 주화입마한다. 탄탄한 대본, 쫄깃한 연기앙상블 그리고 초반부의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감안하면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다음으론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극본 김영영·연출 이병헌, 김혜영)과 tvN‘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극본 권도은·연출 정지현, 권영일·이하 검블유)를 추천한다. 두 작품 모두 세 명의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사회의 꼰대문화를 풍자하거나 비판한 작품이다. 영화 ‘극한직업’의 감독 이병헌이 연출한 ‘멜로가 체질’의 주인공들은 방송제작 현장을 무대로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는 꼰대문화를 예측불허의 방식으로 풍자하고 조롱한다. 검블유는 포털 업계를 무대로 맹활약하는 30대 중후반 여성 3인방을 내세우면서 기성 드라마의 남녀역할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거울효과 만점인 드라마다. 마지막으로 웬툰 원작의 tvN의 ‘쌉니다 천미라마트’(각본 김솔지·연출 백승룡, 조은솔, 손용락)을 추천한다. 과거 MBC의 ‘안녕 프란체스카’ 이후 끊긴 기상천외한 ‘병맛 드라마’의 계보를 부활시킨 실험정신에 주목하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