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규 전 롯데 자이언츠 단장. [동아DB]
이 말은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나 2019년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저 표현은 ‘the Lotte Giants Baseball Team’을 줄인 말로 통한다. 그러면서 이 팀을 ‘승(勝)소수자’라 부른다.
사실이 그렇다. 롯데는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2140승 108무 2379패로 승률 0.473을 기록했다. 현재 남아 있는 팀 가운데 이보다 통산 승률이 낮은 건 막내 구단 kt 위즈(0.375)뿐이다. 올해도 7월 7일 현재 31승 2무 54패(승률 0.365)로 최하위다.
롯데에게 ‘영광의 시대’가 없던 건 아니다.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1984년 우승을 ‘최동원’이라는 세 글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1992년 우승을 설명할 때는 송정규 당시 단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문가보다 나았던 팬 출신 단장
송 전 단장은 원래 ‘마도로스’, 그러니까 선원(船員)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25회 동기로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배를 타기 시작해 선장 자리까지 올랐다. 2009년부터는 한국도선사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완전 ‘뱃사람’ 커리어다. 그런데 중간에 어떻게 롯데 단장을 지낸 걸까.책 덕분이었다. 송 전 단장은 1990년 자비로 ‘필승V전략 롯데자이언츠 : TOP SECRET’이라는 책을 펴냈다. 7월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베이스볼 비키니’, 채널A와 만난 송 전 단장은 “그 당시에 여러 루트를 통해 롯데의 문제점을 구단에 알렸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집대성해 알려주자는 뜻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1000부를 찍어 부산 시내 대형서점에 돌린 이 책은 결국 신준호 당시 롯데 구단주 대행의 손에까지 들어갔다. 신 대행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친동생. 그는 송 전 단장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 단장 겸 관리이사로 영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1991년부터 3년간 롯데 단장을 지내게 됐다.
이로부터 29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다시 롯데 팬들 사이에서 화제다. 책 내용이 현재 롯데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가 연속으로 최하위를 두 번 했으니까(실제로는 1989년 8위, 1990년 7위였다) 통계상으로 보면 더 심각했지만 체감상으로는 올해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리빌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는 희망이 크게 안 보입니다.”
송 전 단장이 올해 롯데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유로 제일 먼저 꼽은 건 구단의 우승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
“프런트에게 야구팀의 우승은 그다지 좋은 소식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러느냐. 야구팀이 우승을 1년, 2년, 3년 하면 선수단 목소리가 엄청 커집니다. 연봉도 2배, 3배로 업 되죠(올라가죠). 코칭스태프들, 또 감독의 요구사항과 기대 이런 게 참 높아지거든요. 그러면 구단 입장에서는 굉장히 괴로워집니다. 왜? 예산이 얼마 안 돼요.”
최고 연봉 이대호, 받은 만큼 책임져야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대호. [동아DB]
“롯데는 돈을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고 계속 아낍니다. 구단 사장이나 단장 이런 사람들이 속된 말로 알아서 기어요. 그러다 성적이 바닥이 되고 팬들이 ‘롯데 물러나라. 시민구단 만들겠다’며 나서야 위에다 ‘부산 민심이 안 좋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그러면 오너가 ‘왜 말 안 했느냐? 돈 써라’ 그래요. 그제야 뒤늦게 한꺼번에 200억~300억 원씩 뿌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적재적소에 돈을 못 써요.”
그가 최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건 메이저리그(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다 복귀한 자유계약선수(FA) 이대호(37)의 몸값으로 150억 원을 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대호에게 150억 원을 준 것보다 그 돈을 가지고 (롯데 퓨처스리그·2군 연습구장인) 상동야구장을 더 현대화하고, 더 훌륭한 외국인 코칭스태프를 데려와 지금 2군에서 썩고 있는 훌륭한 자원들을 키웠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호가 워낙 위대한 선수다 보니 ‘이대호는 해결사다. 시즌이 끝날 때가 되면 (타율) 3할 이상을 치는 확실한 선수다’ 이런 선입관이 너무 강했어요. 그러니 (이대호가 부진해도) 무조건 기다리는 신뢰의 야구를 하게 되는 거죠. 나는 선수에 대한 신뢰의 야구는 팬에 대한 배신의 야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송 전 단장이 고교 후배이기도 한 이대호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인 건 사실 그가 가장 아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대호가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 ‘내가 잘한 게 아니다. 야구는 9명이 하는 건데 그저 내 몫을 다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다른 선수는 그렇게 말해도 이대호는 그러면 안 됩니다. 이대호라면 ‘롯데의 부진은 제 책임입니다. 롯데를 이끌어야 하는 중심 타자로서 모든 부진의 원인은 저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결기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연봉도 ‘가성비’ 챙겨야
7월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키움이 5-2로 승리하며 시리즈 스위프를 달성했다. 경기 후 6연패에 빠진 롯데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롯데는 몇 점을 이기고 있다 해도 안심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까지 최고 계투진을 내세워야 해요. 그런데 7~8점 이기고 있다고 조금 부진한 계투진을 내세우다 보면 투수 두세 명으로 끝날 경기에 예닐곱 명이 나오게 되고, 결국 에이스급 마무리까지 무너지는 참사를 겪고 말아요.”
그렇다고 롯데가 선발진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선발진 평균 자책점도 5.29로 최하위. 이에 대해 투수뿐 아니라 포수가 문제라는 의견도 적잖다. 강민호(34)가 FA 자격을 얻어 총액 80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한 뒤로 롯데 포수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롯데 팬들 사이에서 강민호가 그립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 송 전 단장의 생각은 반대다.
“강민호가 실제로는 85억 원 넘는 돈에 계약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 돈을 주고 잡는 건 아니라고 봐요. 냉정하게 ‘가성비’를 따져야 해요. 롯데는 평균 연봉 1위라고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아닙니까. 과연 연봉 많이 받는 선수들이 3000만 원도 못 받는 강로한(27), 허일(27) 같은 선수보다 몇십 배 역할을 합니까.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1시간가량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에 응한 송 전 단장에게 마지막으로 “어쨌든, 롯데 사랑하시죠?”라고 물었다. 그는 먼 산을 바라보며 “뭐, 그렇게 봐야 안 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예”라고 답했다.
이어서 “카메라를 보고 ‘롯데 파이팅’ 한 번만 외쳐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그 말이 나오겠습니까”라며 거부했다. 재차 사정한 끝에야 겨우 “자, 앞으로 롯데 기사회생, 선전을 기약합니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송정규 전 롯데 자이언츠 단장의 인터뷰 영상은 채널A 유튜브 전용 콘텐츠 ‘숏토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